이주노동자들이 근로감독관을 찾은 까닭은?

불신의 골이 깊어 생긴 진정 이야기

등록 2004.10.02 12:41수정 2004.10.0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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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에 수원지방 노동사무소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과 근무처 변경 문제로 노동부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제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사정을 전해달라며 대뜸 근로감독관을 바꿔준 것입니다.


평택에 있는 사출업체에서 근무하던 중국인들과 인도네시아인들인 그들은 자신들이 일하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폐쇄되고, 회사가 약속한 날짜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자, 노동부 진정을 위해 근로감독관을 찾아갔다고 말했습니다.

원칙적으로 근무처 변경은 노동부 근로감독관 소관이 아니라 고용안정센터 일이지만, 관련 규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용감하게도 자신들의 사정을 감독관에게 따지듯 설명하고, 일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전화상으로 몇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나서 받은 첫 느낌은 이들이 지나치게 성급하게 근로감독관을 찾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이들이 근무한 평택공장이 폐쇄됐다고는 하지만 서울에 본사가 있는 회사이고, 급여 약속 일자도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업체 측도 공장 이전 문제로 급여 지급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보름 후에 준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근무처 변경이었는데, 업체 측에서 '근무처 변경 사실 확인서'를 발급해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큰 문제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업체가 본사를 두고 있을 만큼의 규모 있는 회사라, 공장폐쇄 사실을 고용안정센터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업체 측의 동의 없이도 근무처 변경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외국인이주노동자에게 자세히 설명했지만, 전화를 해 왔던 이들은 전화를 돌려가며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예전에도 월급을 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월급도 조금씩 깎아서 지급했던 회사다."
"돈을 준다고 약속했지만 서울에 와서 받으라고 한다. 우리는 회사가 서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근무처 변경 사실 확인서를 만들어 달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내일, 내일 말만 하고 해 주지 않았다."

저는 볼멘소리를 하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원성을 들으면서 '그간의 사정도 모르면서 지나치게 업체 측의 입장에서 설명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평상시 이들에게 신뢰를 쌓지 못했던 회사 측이 해고 일순위로 외국인이주노동자를 정해 놓고도, 그들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소규모 제조업체에서 선적이 밀리고, 수금이 늦어지다 보면 급여지급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회사가 어렵고 힘들다는 사실을 왜 모르겠습니까? 더욱이 해외이전으로 경황이 없는 가운데 급여 지급이 며칠 늦어질 수 있다는 사실쯤이야 왜 이해를 못하겠습니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도 노동부를 찾아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이 정작 원망스러워하는 것은 며칠 늦어진 월급이 아닙니다. 회사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졸지에 실직하게 된 자신들, 이제껏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했던 자신들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전혀 배려하지 않았던 회사 측의 태도였습니다.

그동안 떼인 월급은 놔두고라도, 멀쩡히 취업 비자가 남아 있는 자신들이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회사 측이 도와줬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서로가 어려운데 조금만 양보했으면 좋았을 일인데, 평소 불신의 골이 깊다보니 공권력을 빌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회사 측의 설명대로 급여를 보름 후에 준다는 약속과 근무처 변경 허락은 본사가 서울에 있으니 믿어볼 만도 한데, 굳이 노동부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평소에 잘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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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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