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붓고 손잡이 움직이니 흙물이 "콸콸콸"

[70년대 사람과 삶 2] 운 좋게 예정대로 바위를 깨고 우물 완성, 물 걱정 끝

등록 2005.01.05 10:23수정 2005.01.0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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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모자를 쓰고 일하던 손을 씻고 있는 모습
새마을 모자를 쓰고 일하던 손을 씻고 있는 모습신안군
우물 파는 둘째 날, 더 쌀쌀해져 아침부터 모닥불을 피웠다. 오늘은 불이라도 따뜻하게 피워 놓아야 견디지,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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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길 물속보다 힘든 게 샘 파기여!”

마당은 흙과 모래, 자갈, 돌멩이로 발 디딜 틈이 자꾸 줄어들었다. 연장이 다시 나오고 하얀 서리가 낀 거적을 벗겨낸다. 어제 그리 애먹였던 바위를 깨려면 뭔가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머리가 좋은 박샌이 1차 공격을 했다.

안에선 사람이 내뿜는 열기와 심한 기온 차이로 땅 속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북한군이 땅굴을 뚫고 우리 마을까지 내려온 거야? 이거 큰일인데.' 아차 싶었다.

"엄마, 엄마 연갈(연기)이 허벌나게 나부요. 북한 괴뢰도당이 땅굴 파고 내려왔는갑소."

53년까지 빨치산과 국군의 밀고 밀리는 최후 보루요, 요새였던 그곳에서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나였다. 사람들은 깔깔깔 웃었지만 나는 여전히 심각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어려웠던 6·25 전쟁을 다 안다. 피난이다 뭐다 마을을 내줬을 뿐만 아니라 낮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밤에는 공화국 인민으로 살아봤던 사람들이다. 눈치도 남달리 빨랐다. 우리 마을에선 동네를 빙 둘러 대나무를 세워 모르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게 바리케이드를 이중으로 쳤다고 한다.


이런 펌프샘을 작두샘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몇 곳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어도 자꾸 품어주지 않아 물이 오염됐습니다.
이런 펌프샘을 작두샘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몇 곳 남아있지 않습니다. 남아 있어도 자꾸 품어주지 않아 물이 오염됐습니다.김규환
2년 동안은 돌아가며 출입구 두 곳에 불침번까지 세웠다. 한동네 사람들끼리는 밀고하고 까발려서 원수지간이 된 적은 없었지만 그 보람도 그때 그때 산사람과 국군이 지른 세 번의 불로 세 번이나 전소(全燒)되는 비운을 맛봤던 사람들이다.

"아제, 큰일 났당께라우. 보싯쇼. 연갈이 저만치 나올라믄 이북에서 내려온 게 틀림없당께요." 재차 이야기했음에도 어른들은 하던 일과 이야기만 할 뿐 묵묵부답이었다.


내가 놀라자빠질 듯 호들갑을 떨고 있는 사이 김이 싹 걷혔다. 이틀째 우물파기가 본격 시작되었다.

"어이 위에? 정 좀 바꿔줘 봐. 내문 것으로!"

날카로운 것을 찾는 모양이다. 바지런히 움직여 돌을 깨서 치우려면 날카롭고 모난 새 연장 하나가 필요하다. 한 곳만 집중 공략해 나가면 언젠가는 두어평쯤 되는 바위도 사람에게 항복하고 두 손을 들 것이다.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며 연신 망치질을 해대는 사이 스물서넛 넘은 청년들이 집으로 몰려왔다. 혼기가 찬 누나가 있었기에 밤새 소문을 듣고 거들려고 온 꿍꿍이속은 내가 모른다. 단지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잊지 않고 나타나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아제, 잘 돼가요?"
"아따매 심들구만. 숫제 깨져야 말여. 누가 난포 뚫은 기계라도 구해 각고 올 사람 없는가? 십리만 내려가면 바윗덩어리는 그걸로 쪼개분다드만."
"그 기계만 있으먼 뭣 한다요. 전기가 있어야 한번 써먹어 보제. 사람 힘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어라우."

마을 공동 우물을 가리는 집을 양철로 만들었습니다.
마을 공동 우물을 가리는 집을 양철로 만들었습니다.신안군
10리 밖 원리까지는 전기가 들어온 지 몇 해 되었다고 했다. 우리 마을엔 언제나 전기가 들어와 우물 하나 쉽게 파서 집집마다 물 걱정하지 않고 살날이 올까. 당장 전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 하나 하려면 사람 손과 발, 몸이 고생하니 더 간절했으리라.

겨울엔 길이 미끄럽고, 여름 큰물이라도 지면 흙탕물이 공동 우물을 뒤덮어 먹을 물 한번 길러 오려면 며칠은 기다려 소제를 하고서야 맑은 물 먹으니 불편함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어미 삽가리(삽)로 좀 치우자고."
"살살 긁어야제. 굴러 떨어지면 다친당께."

젊은 사람 몇 명이서 주위를 정리했다. 명절 때 빼고는 돼지고기 맛을 구경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구수한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건, 평소 고기 떨어뜨리는 일이 없는 아버지가 처마 밑에 도둑고양이가 닿지 않도록 걸어서 말려둔 것을 오늘 한 덩어리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연기를 풀풀 내며 덜 마른 통나무가 타는 중에도 한쪽엔 이글거리는 불-잉그락 덩어리가 생겼다. 도마 위에 칼이 놓여 있고 꾸들꾸들 말라 비틀어진 고기가 올려져 있다. 적사(석쇠)를 걸치고 고기를 도톰하고 큼지막하게, 그리고 길게 썰어 올리고 굵은 소금을 뿌리자 "타닥 탁 톡!" 얼굴에 튈 듯 거세게 반응한다. 노릇노릇 꼬스름하게 익어간다.

"어이, 가서 술잔 좀 가져오게."
"막둥아, 가서 술잔하고 김치 쬐까 가져오니라."
"이 사람허고는…."
"왜라우? 심바람(심부름)은 애기들이 더 잘 한당께요."

석쇠에 이글거리는 모닥불에 고기를 구으면 주위 대류현상에 의해 훨씬 맛있습니다. 그 시절 고기를 굽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요.
석쇠에 이글거리는 모닥불에 고기를 구으면 주위 대류현상에 의해 훨씬 맛있습니다. 그 시절 고기를 굽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요.김규환
놀면 뭐하는가. 순순히 챙겨드리고 한 점이라도 더 얻어 먹는 게 남는 장사다.

일은 별 진전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성환이형이 당숙(堂叔)이 애쓰는 걸 지켜 보다가 젊은 힘 하나 믿고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고 나섰다.

무슨 일이든 초보자, 신참이 있다. 가끔은 이 신출내기가 일을 낼 때가 있다. 요모조모 재고 따지고 어루만지고 행여 낭패를 볼까 두려워하는 대목장이보다 앞뒤 돌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덤벼들면 사물이 깜짝 놀라 자빠지는 건가.

10분여 실랑이를 벌이더니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됐어라우. 됐어!”
“이 사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고 있네. 하노고(한없이) 해봐. 고것이 깨진가? 근디 지금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냔 말이여.”
“아제, 그게 아니고 한쪽이 금이 제대로 갔단 말이요.”

시간이 해결해 준 건가. 치고 또 쳐대니 버틸 재간이 없었을까. 무턱대고 치다 보니 결을 잘 잡은 걸까. 수백 수천 년간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어제 오늘 갑자기 공기와 찬 기운에 노출되다 보니 산화되었을 수도 있고 적응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이도 아니라면 밤새 거적을 씌워 놓으니 주변 수분이 바위 쪽으로만 몰려와 약한 고리를 형성했을까 모르겠다.

밖은 웅성웅성 시끄럽다.

“시방 괴기(고기)라도 더 꿔서 한잔해야 되는 거 아니요?”

운악산 기슭 한 집에서 만난 펌프가 녹이 슬고 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운악산 기슭 한 집에서 만난 펌프가 녹이 슬고 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김규환
어머니께서 급히 불렀다.

“후딱 집에 댕겨 오니라.”
“왜라우?”
“장단지에 돼지고기 파묻어 놓았을 있을 것이여.”
“뭣이라고라우?”
“귀먹었냐? 소금 단지에 괴기 들었당께. 뚜껑 조심허고 꺼내오니라.”

그땐 그랬다. 처마에만 고기가 있지 않았다. 껍질과 비계는 소금에 간고등어 절이듯 박아 두어 아무 때고 급할 때 국을 끓이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했다. 국물에 기름기 동동 뜨면 고깃국이고, 껍질인들 껍데기인들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다.

그걸 구워 먹으면 어찌나 쫄깃쫄깃 꼬들꼬들 맛있었던가. 기름기가 자글자글 뽀글거리다가 겉은 굳은 것 같지만 씹으면 속은 야들야들 보드랍기 그지없다.

“인자 다 한 폭이여.”
“하먼이라우. 힘센 이샌이 들어가서 난도질허먼 낼 오후면 얼추 끝나겠지라?”
“자네가 거들면 한갓지게 끝나불제. 얼렁 끝내고 회평(민물고기 회)이나 먹음세.”
“좋십니다.”

일하다 보면 쉬는 게 절반이다. 편히 잘 쉬어야 일할 맛이 난다. 쉬었다가도 주인 눈치 보이지 않게 일꾼들은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게 몸에 배였다. 힘이 난 건지 “쩡쩡” “콕콕” 돌을 쪼는 소리가 훨씬 힘차다.

“어이, 거시기 뭔가 바케스를 두 개 내려 봐. 쇠죽 바가치(바가지)랑.”

일사천리다. 돌 깬 고무 양동이가 두 번 올라오면 물 퍼서 담은 통이 한 번씩 올라오니 위에서 받아 거치적거리지 않는 곳에 붓고 다시 내리니 양동이가 한 벌은 더 있어야 할 듯하다.

여름철에는 섬과 뭍을 가리지 않고 물이 부족했습니다. 농사를 위한 관정을 판 것은 8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천수답이라는 말엔 우리네 애환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섬과 뭍을 가리지 않고 물이 부족했습니다. 농사를 위한 관정을 판 것은 8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천수답이라는 말엔 우리네 애환이 다 들어 있습니다.신안군
그렇게 하루가 또 가는가 보다. 다음날 오전을 넘기고 오후 무렵엔 보통 사람 세 길은 너끈하게 깊게 파들어 갔다. 돌을 걷어내자 물이 곳곳에서 차올라 퍼내느라 정신 없다. 펌프가 있었더라면 밖으로 빼내면서 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20여분을 넘기지 못하고 다리춤에 차오른다.

땅 속에서 나오는 물은 따뜻하지만 흥건히 적시는 건 둘째 치고 물이 튀어 작업하기가 곤란하다. 하는 수 없이 물을 양동이째 몇 동이 퍼내고 자갈과 흙을 파서 담아내는 고된 노동이다.

“여보쇼들? 이 봐.”

몇 번 불러도 옆에서 붙어서 들어도 울리는 소리에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다.

“뭐시라고라우?”
“뮈사냐 거시기 어디 남은 호스 없을까. 호스.”
“호스 찾아볼텡께. 지달려 보쇼.”

작은 관이 있으면 기압 차이를 활용하여 입으로 빨아서 빼 볼 생각인가 보다. 행여 되기라도 하면 이런 고생은 사서 하지 않아도 되니 궁하면 통한다는 말에 딱 맞았다. 그날은 구해온 호스가 짧아 써먹어 보지 못했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흙과 돌무더기 질컥거리던 마당이 하루 일을 마감할 때인지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애초 끝내기로 한 마지막 날이다. 사흘째 되던 날엔 내부를 가다듬는다. 주위에서 떨어져 바닥에 깔린 잔돌과 흙을 모두 꺼내느라 양동이가 오르락내리락 쉴 새 없이 바빴다.

“오가리 좀 띠꾸리에 잘 묶어 내릿쇼.”

어느 정도 흙탕물 앙금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볼이 널찍하여 물깨나 모을 항아리를 하나 내린다. 빙그르르 돌아도 서서히 지게 짐 묶는 끈을 늦춰 주자 아래서 받아 물을 한번 채워 한가운데에 앉혔다. 옆에 뒀던 자잘한 돌을 괸다.

위로 올라갔던 돌을 내려 차곡차곡 쌓는다. 돌탑을 쌓듯 항아리 입만 빼곤 죄다 채웠다. 2개를 연결한 쇠파이프가 내려온다. 항아리 입에 넣고 공기가 통하도록 한다. 그 뒤론 돌과 자갈, 흙을 메워 파들어 갔던 입구를 막는 동안 위에선 파이프 길이를 적당한 높이로 맞춰 자르고 작두에 해당하는 기루를 끼운다. 대충 큰일은 끝나가는 듯하다.

부녀가 으스름한 밤에 펌프질-작두질로 물을 뽑아내고 있다.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와 오랜 친구를 만난듯 반가워하는 아저씨가 보기 좋았다. 과천에서 지난 여름.
부녀가 으스름한 밤에 펌프질-작두질로 물을 뽑아내고 있다. 마냥 신기해하는 아이와 오랜 친구를 만난듯 반가워하는 아저씨가 보기 좋았다. 과천에서 지난 여름.김규환
아버지는 완전히 다져지기 전에 고무 패킹을 끼워 물 한 바가지 붓고 작두질을 해 보았다. 김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부었던 물이 쫙 빠지고 그 틈에 자꾸 움직여 주자 쿨쿨 돼지 울음소리를 내더니, “콸콸콸” 흙탕물이 “촬촬촬” 쏟아졌다.

“할매, 작두샴 물이 잘 나오요.”
“긍께. 참말로 좋구먼.”

물이 다 빠지면 또 품어내고 쉬었다가 다시 뽑아내기를 거듭했다. 위에 깔린 비닐을 따라 갯산(골을 탄 물줄기)을 쳐놓으니 고이지 않고 수채를 따라 흘러간다. 나는 하도 신기하여 기다란 막대를 잡고 어른들이 저녁밥을 드시는 동안 쉬지 않고 품어댔다.

그렇게 오랜 작업 끝에 흐린 물이 죄다 빠지도록 멈추지 않았다. 펌프샘 주변은 약간 도톰하게 올라와 있다. 내일 아침 땅이 가라앉아 꺼질 높이까지 계산한 것이다. 어른들은 밥을 드시고 몇 번 더 물을 뿜어내고는 샘이 얼지도 모른다며 패킹을 들어올려 위에 있던 물을 빼버리신다.

큰집 누나는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두 손으로 예쁘게 잡고 작두질을 하며 가라앉은 흙물과 돌가루를 빼내느라 열심이었다. 마침 날이 좋아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콘크리트를 칠했다. 그 뒤로 큰집에선 사시사철 물 걱정 하지 않고 풍족하게 지냈다.

옆집이었던 우리는 눈치 보느니 개울가에 있던 공동 우물로 물동이와 물지게를 지고 다녔다. 작두 샘 한번 가져 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몇 년 후 뒷동산에서 같은 골목 사람들끼리 상수도를 연결할 때까지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다.

여름철 등목하기 참 좋은 샘, 작두샘이 그립다. 여름철엔 어찌나 시원하고 겨울엔 얼마나 미지근하고 따스했던가. 녹물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다.

공동우물 가는 길을 청소하고 있는 섬마을 사람들. 섬은 제한 급수가 아니라 배로 어쩌다 한번 실어다 주는 터에 4~5일 쉬 넘겼다고 한다.
공동우물 가는 길을 청소하고 있는 섬마을 사람들. 섬은 제한 급수가 아니라 배로 어쩌다 한번 실어다 주는 터에 4~5일 쉬 넘겼다고 한다.신안군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2년 남짓 써왔던 고향이야기 600여 편 중 몇 개를 묶어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다. 고향의 맛을 찾는데 열심이다.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며 올해 말에 전남 화순 백아산으로 귀향하여 <산채원(山菜園)>을 만들 작은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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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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