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모자를 쓰고 일하던 손을 씻고 있는 모습신안군
우물 파는 둘째 날, 더 쌀쌀해져 아침부터 모닥불을 피웠다. 오늘은 불이라도 따뜻하게 피워 놓아야 견디지,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마당은 흙과 모래, 자갈, 돌멩이로 발 디딜 틈이 자꾸 줄어들었다. 연장이 다시 나오고 하얀 서리가 낀 거적을 벗겨낸다. 어제 그리 애먹였던 바위를 깨려면 뭔가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머리가 좋은 박샌이 1차 공격을 했다.
안에선 사람이 내뿜는 열기와 심한 기온 차이로 땅 속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북한군이 땅굴을 뚫고 우리 마을까지 내려온 거야? 이거 큰일인데.' 아차 싶었다.
"엄마, 엄마 연갈(연기)이 허벌나게 나부요. 북한 괴뢰도당이 땅굴 파고 내려왔는갑소."
53년까지 빨치산과 국군의 밀고 밀리는 최후 보루요, 요새였던 그곳에서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나였다. 사람들은 깔깔깔 웃었지만 나는 여전히 심각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 어려웠던 6·25 전쟁을 다 안다. 피난이다 뭐다 마을을 내줬을 뿐만 아니라 낮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밤에는 공화국 인민으로 살아봤던 사람들이다. 눈치도 남달리 빨랐다. 우리 마을에선 동네를 빙 둘러 대나무를 세워 모르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게 바리케이드를 이중으로 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