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19회(4부 : 캠퍼스 연가 1)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1.08 09:18수정 2005.01.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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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그 사건 이후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우리 둘의 관계를 만천하에 공개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누가 뭐라고 쑥덕거리든 말든,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서로 만나 밥도 같이 먹고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커피도 마셨다. 그녀는 밀크 커피에 정사각형 모양의 에이스 크래커를 살짝 찍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강의가 없는 시간에는 음악감상실에 자주 들렀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 '대학축전 서곡'… 등 주로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클래식 음악을 신청해서 감상했고, 때때로 우리 음악인 '보리밭', '별', '그네', '그 집 앞'… 그리고 외국 곡인 '봄의 메누에토', '등대지기'… 등도 들었다.


영탑지와 그 옆에 장승처럼 서 있는 솔밭도 우리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학교 앞 서점과 찻집 '차와 음악이 있는 풍경'도 우리가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었는데, 그녀는 문학소녀답게 여전히 시와 소설 등 문학서적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서서히 사회과학서적에 눈을 떠가고 있었다.

찻집에서 우리는 커피를 시켜 놓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DJ에게 신청하여 들었다.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오면 그녀가 내 것까지 직접 타주었다. 보통 커피 두 스푼에, 프림 하나 반 내지 둘, 그리고 설탕은 하나 정도만 넣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거기에 그녀는 가방 속에서 무엇인가 꺼내더니 조금 넣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묻자, '뭐 같아요?' 하면서 되물었다.

"색깔이 하얀 것으로 보아 설마 독약은 아니겠고, 그럼 이게 뭐지? 혹시 약물가루?"

"뭐예요? 호호호--- 정말 모르겠어요? 그럼 한 번 직접 맛을 보세요?"

"아니, 이건 소금이잖아요?"


"맞아요. 소금이에요."

"그런데 소금을 왜 여기에 넣어요? 맛이 짤 텐데."


"그건요, 소금을 약간 넣어주면 설탕을 조금 넣고도 커피를 훨씬 달게 먹을 수가 있거든요. 이를테면 우리의 혀를 혼란시키는 거죠."

"그래요, 이거 새로운 발견인데요. 놀랍습니다. 그런데 초희씨는 어떻게 그것을 알아냈어요?"

"알아내기는요. 다 저희 엄마가 하는 것 보고 배운 거지요. 사실 인스턴트 커피를 더 맛있게 먹으려면, 잔을 미리 데워놓고, 끓는 물을 93∼95도 정도 식혀서 컵에 부어요. 이때 물을 끓이는 주전자는 철, 주석, 알루미늄, 구리로 만든 것은 피하는 것이 좋아요."

"그건 왜죠?"

"금속냄새가 나니까 가급적 피하는 게 좋대요. 커피에는 설탕을 먼저 넣고 녹이고 난 후 온도가 85도 이하로 내려가면 프림과 가루 크림을 넣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액상 크림은 넣는데 액상 크림은 사실 원두 커피용이거든요.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데는 60∼65도가 가장 적당하대요. 이렇게 마시면 그냥 마시는 것보다 한껏 맛과 향이 좋거든요."

"듣고 보니 커피에도 도(道)가 있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저는 아무렇게나 마셨으니… 그럼 원두커피의 경우에도 크림 빼놓고는 마찬가지인가요?"

"물론 같은 점도 있지만, 원두커피의 경우는 유의할 점이 많아요. 원두커피를 맛있게 먹으려면, 먼저 커피를 탄 채 끓이지 말 것. 커피를 탄 채 끓이면 쓴 맛이 나거든요.

다음으로 데워먹지 말고 그때 그때 마실 만큼만 만들 것. 커피는 찌개가 아니거든요. 셋째 깨끗하고 차가운 물만 사용할 것, 그 외에도 한 번 걸러낸 원두는 쓴 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게 좋구요.

또 원두를 너무 곱게 갈면 쓴 맛이 강해지고 너무 굵게 갈면 커피가 묽어져 제 맛을 즐길 수 없거든요. 마지막으로 물과 커피의 배합은 180ml에 커피 2큰술 정도가 가장 이상적이래요. 언제 저희 집에 오게 되면 그렇게 한 번 끓여 드릴 게요."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그녀는 뭔가 묘한 매력이 풍기는 향기 있는 여성이라고 여겨졌다. 정말 그녀에게는 범상한 듯 하면서도 결코 범상치 않은 그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초희씨 얘기를 듣고 있자니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이 생각나네요."

"김현승 시인은 왜요?"

"네. 그분도 커피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거든요. 오죽했으면 호를 다형이라고 했겠어요."

"궁금해요. 들려주세요."

"저도 책을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그분은 기독교인이라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대신 커피를 어지간히 즐기셨던 모양이에요. 커피를 타는 것과 맛보는 것 그 어느 것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대요. 스스로 커피에 관한 한 1인자라고 자부했대요. 그분 생전에는 유명한 찻집에서 그분이 한 번 다녀가시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다지요. 이 정도면 호를 다형이라고 할 만하지 않아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저희 집 식구들은 모두 커피를 즐기지만 특히 엄마는 카페인 중독수준이에요. 늘 커피를 달고 사시거든요. 어 이 음악은…."

그러고 보니 색다른 음악이 실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커피의 맛은 얼마나 달콤한가! 천 번의 키스보다도 더 사랑스러우며 마스카트 술보다도 달콤하다네! 커피. 커피.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이 음악은 1732년 요한 세바츠찬 바하가 작곡한 '커피 칸타타'예요. 바하도 어지간히 커피광이었던 모양이에요. 이 아리아를 비롯해 바하의 음악이면 우리 엄마는 그래서 무조건 좋아하죠."

"이 찻집 DJ도 대단히 센스 있는 사람인걸요. 어떻게 우리가 커피얘기를 하는 줄 알고 '커피 칸타타'를 다 들려주고, 이러니 우리가 여기에 자주 안 올래야 안 올 수 있냐 말이에요."

"하하하"

"호호호"

사랑일기 1

너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쳐들어오는 행복감

아마 그 날 내 얼굴은 해바라기만 했을 것이고
내 입은 나팔꽃처럼 벙그러져 다물 줄을 몰랐을 것이다.
하늘 위에 높이 뜬 꼬리연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내 마음

그때 누가 이유 없이 내 뺨을 때렸더라도
그냥 씩 웃고 말았을 것이다
온통 세상이 내 것이었으니까

사랑일기 2

너는 사랑의 늪이다
거기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

'즐거운 비명'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사랑일기 4

사랑한다는 말이 혀끝까지 맴도는 것을
간신히 추스려 입천장에 매달아 두었다
너무 남발하면 혹시 부도수표가 되어 날아 올까봐

사랑하는 이여,
사랑을 위해 가끔은 사랑을 아껴두자

* 20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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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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