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18회(4부 : 캠퍼스 연가 1)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1.07 08:00수정 2005.01.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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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인기 화백
그림 김인기 화백


4. 캠퍼스 연가 1


그렇게 오월 한 달이 가고 있었다. 라일락 꽃향기도 찬비를 맞더니 시들해졌다.

6월 들어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우리 사이에도 하나 둘 마장(魔障)이 일기 시작했다. 우리 과 남학생들 중에 그녀를 마음에 두고 치근대는 녀석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서클 선배 한 둘이 은근히 그녀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둘째 주였던가? 1학년 우리 학과 전체가 오랜만에 교외 농장으로 야유회를 간 적이 있었다. 그 날 보니 나와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종화가 그녀의 곁을 물방개처럼 맴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종화가 우연히 나와 얘기하는 중에 자기가 초희에게 마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내가 그녀와 사귀고 있다고 털어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녀석에게 조언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그냥

"그 애 사귀는 사람이 있는 것 같던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비슷한 일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남학생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거나 얘기를 나누는 자리면 으레 여자들 얘기가 빠지지 않았는데, 그 중에는 초희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그녀가 오징어, 땅콩 신세로 전락하여 남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속이 뒤틀릴 정도로 거북했지만 딱히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거들 수도 더더욱 없고 참으로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용케 잘 참아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남학생들만 모여 있는 자리에서 병관이라는 녀석이 그녀에 대해 아주 나쁘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도도하네, 잘난 척하네, 인물값 하겠네, 상판을 보니 여러 남자 홀리겠네, 걷는 폼이 처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그녀를 위해서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걔, 누구 사귀냐?"

병관이가 그렇게 툭 던지듯 말했다.

"야, 얼굴과 몸매가 그 정도인데 설마 없겠냐? 이미 임자 있을 꺼다. 꿈 깨라."
누군가 그렇게 대답했다.

"걔하고 사귀는 놈팽이는 어떤 놈일까?"

다시 병관이의 말이다.

"뭐 보나마나 돈 많거나 빽 있는 집 아들 아니겠어. 안 그래?"

이번에는 재수하고 들어온 수창의 말이다.

"심심한데, 내가 한번 건드려 볼까나?"

"아서라, 임자 있을 거라니까. 자, 술이나 먹어."

이렇게 병관과 수창이 말을 주고받자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뭐,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나."
그 말을 들은 병관이

"그 말도 맞긴 맞는데 걔가 그 말을 들으면 아마 이렇게 말할 걸, 한두 골 먹었다고 골키퍼가 바뀌냐? 하하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말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 앞에 소주 대신 놓인 물 컵의 사이다를 그 녀석의 얼굴에 확 끼얹어 버렸다. 그러면서 말했다.

"야, 말조심해! 남의 말이라고 그렇게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거 아니다. 그러면서 지성인임을 자처 하냐?"

나의 기습에 어이없어 당한 병관이 벌떡 일어나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이 자식이 술도 안쳐먹고 취했나? 야 인마, 내가 걔에 대해서 뭐하고 하든 네깟 놈이 무슨 상관이야, 네가 걔 기둥서방이라도 되냐, 인마!"

같이 자리한 학우들이 재빨리 말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싸움이 될 뻔했다. 종화가 얼른 나를 일으켜 나가자고 밀쳤다.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샌님같이 생겨 가지고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여기까지 따라와 지랄이야 지랄이‥‥‥. 에이 재수 없어!"

그 녀석의 욕지거리를 뒤로 하며 나는 종화의 팔에 이끌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 열흘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서클룸으로 가던 중 학생회관 로비에서 그녀가 서예반 선배로 보이는 사람과 실랑이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잠깐이면 돼 얘기 좀 더 하자니까!"
"무슨 얘기를 더 해요? 분명히 제 입장을 밝혔잖아요. 싫다고 말씀드렸으면 되었지…, 저 바빠요. 그만 가볼게요."

그녀가 돌아서서 가려하자, 그 사람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얘가 왜 이래 버릇없게 시리. 너 자꾸 이럴래, 그럼 너 정말 재미없다."
그러는 것이었다. 나는 달려가 끼어들까 하다가 좀 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선배님, 이러지 마세요."

그녀가 뿌리치며 가려하자 그 사람은
"이리 와 보라니까."
그러면서 우악스럽게 초희의 팔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보고 있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달려가 끼어들었다.

"죄송하지만, 이 손 놓고 말씀하시지요?"
"넌 뭐야 인마, 상관하지 말고 빨리 꺼져, 꺼지지 못해!"
"철민씨!"
그 때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사람이

"철민씨? 네가 사귀는 애가 이 녀석이냐? 야 수준 좀 높여라. 남자가 그래 그렇게 없어서 이런 시건방진 애송이들하고 어울리냐?"
이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조심하십시오."

내가 이렇게 대거리를 하자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건데, 왜 한 대 치기라도 할래? 쳐봐, 어디 쳐볼 테면 쳐봐?"
"선배님이면 선배님답게 품위를 지키십시오. "
"뭐야 이 자식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사람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강타했다. 순간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나도 그 사람에게 한 방 날렸다. 그의 코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이 자식 봐라, 너 오늘 잘 걸렸다!"
그는 일방적으로 나를 때려눕히고 짓이겼다. 초희의 비명에 주위사람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리자, 그 사람은
"너 이 자식, 오늘 운 되게 좋은 줄 알어, 다음에 걸리면 아주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악다구니를 하며 꼬리를 감추는 것이었다. 그치한테 얼마나 맞았는지 나는 제대로 일어나 앉을 수가 없었다.


* 19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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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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