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님께 진상했던 화살은 어디 갔나?

옥산총죽으로 유명한 신우대 화살을 찾아서

등록 2005.01.18 20:27수정 2005.01.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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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玉)으로 산의 이름을 삼았으니 화살대 기르기 좋을시고
총총 빽빽하게 들어섰으니 이웃집들 바람막이되어
속은 비었어도 마디마디 튼튼하니 화살 만들기 그 아니 좋을 손가
해마다 나랏님께 바칠 때에는 깃털을 화살촉에 달아 꾸몄다네.



운정(雲亭) 정일표(丁日杓) 선생이 노래한 낙안팔경 중 옥산총죽 대목이다.

낙안읍성의 남쪽, 걸어서 1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옥산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산 하나가 있다. 옥산 주변에는 신우대라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옛날에는 화살을, 근래에는 조리대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특이한 것은 조선시대 때 이곳의 신우대로 화살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했다는 점이다.

a 옥산 지천에 널려있는 신우대

옥산 지천에 널려있는 신우대 ⓒ 서정일

남부지방에서 대나무는 쉽게 볼 수 있다. 대나무의 일종인 신우대 또한 마찬가지인데 유독 옥산 주변 신우대로 만든 화살을 임금께 진상한 이유가 궁금했다.

주민들은 곧고 단단함을 그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가 전부였을까? 아무리 품질이 좋은 재료라 해도 그것을 다듬어 화살로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장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자는 장인을 찾아 나섰다.

"글쎄… 들어본 적 없는데."


인근 부락민들은 선친 중에 화살을 만든 사람이 있거나 얘기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같은 대답만 되풀이 했다. 심지어 옥산총죽이라는 말을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옥산 주위 3개 부락을 돌며 확인해 보았지만 결국 장인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신우대가 임금에게 진상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화살을 만든 장인은 후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a 장인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장인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고개를 가로 젓는다. ⓒ 서정일

“낙안 옥산 신우대로 만든 화살이옵니다''. ”참으로 명품이로고“. 조선시대 어느 날 조정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만든 것인고?“라는 물음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이는 없다.

물론 임금께 진상된 신우대 화살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이곳 낙안읍성 내에서 김도형씨가 화살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2년 전 그의 죽음으로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성안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남창민(27)씨에게 선물로 남긴 액자만이 그가 재현하려는 신우대 화살의 흔적을 엿 볼 수 있을 뿐이다.

a 남창민씨의 가게에 걸려있는 액자

남창민씨의 가게에 걸려있는 액자 ⓒ 서정일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그 후 여러 방면으로 화살을 만드는 분을 영입하려 했지만 생계보장을 해주기 어려워 기능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재정지원의 한계로 기능인 확보가 어려웠다는 낙안읍성 관리소측의 말이다. 단순한 사명감만으로 이 일을 맡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a 전시관내엔 김도형씨가 만든 활만이 남아있다.

전시관내엔 김도형씨가 만든 활만이 남아있다. ⓒ 서정일

낙안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곽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곳 옥산주변에서 생장하고 있는 신우대로 화살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낙안읍성 신우대 화살의 맥이 끊겨 사장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시, 도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돈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역사의 숨결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http://blog.naver.com/penfriends

덧붙이는 글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http://blog.naver.com/pen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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