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03회

등록 2005.01.21 07:53수정 2005.01.2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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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7 장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철혈쌍비라 불리운 두 명의 남녀 얼굴에 당혹과 불신, 그리고 당황함이 가득차 있었다. 지광계와 마봉옥은 이미 점혈이 되었고 단전도 파괴된 상태인데다 철혈보의 은사에 묶여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은 누군가 데려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곁에는 철혈쌍비가 있었고, 움직임이 있었다면 분명 그들 뿐 아니라 철혈대도 감지했을 것이다.


“죽여주십시오. 대주!”

그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외치며 부복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미 핏기가 사라져 하얗게 변해 있었다.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은 지광계 부부를 감시했었다. 분명 그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허나 그들은 사라진 것이다.

“그대들 잘못만은 아니다.”

철혈대주 독고좌의 이빨 사이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는 노기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는 기색이 역력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짓한 느낌을 들게 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금빛기류가 흘러나오며 그의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극도로 분노한 모습이었으나 인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죽을 뻔 했군.”
“죽을 뻔 했군.”


고요한 가운데 낭씨형제가 노기에 찬 음성을 터트렸다. 그들의 팔과 다리에는 한대씩의 철폭비가 박혀 있었다. 그들은 철혈대를 싸늘히 훑어보며 혈폭비를 모두 보란 듯이 뽑아냈다.그들의 모습은 철혈보를 곤란하게 만들기 족했다. 오룡번에 대한 철혈보의 계획을 저지한 낭씨쌍쌀을 죽이려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반송이라는 노인이 좌중에게 내놓으라 했던 금적수사 부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금적수사 부부는 철혈보의 수중에 있었다. 헌데 연기가 피어오르고 다시 시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반각도 걸리지 않은 사이에 사라졌다. 더구나 독고좌는 좌중을 향해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고, 움직이는 인물들을 향해 혈폭비가 쏘아졌다.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었던 자들은 철혈보의 인물들 밖에 없었다.


“어떤 자들이… 무슨 연유로…”

독고좌는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음성은 한자 한자 부러지듯 내뱉어 졌다.

“본보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지는 몰라도 곧 밝혀낼 것이다. 그 때는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릴 것을 약속하지.”

말을 하는 독고좌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금색의 기류가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금빛 안개 속에 휩싸여 있는 모습은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아름답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기세에 좌중은 따지려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만약 철혈보가 금적수사 부부를 빼 돌렸다면 저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고좌가 저런 행동을 보였다면 그는 세상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독고좌란 인물은 허튼 소리를 하거나 남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순간 그의 전신을 감돌던 금색기류가 사라지면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동시에 그는 좌중을 향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이 안에 단혼연(斷魂煙)을 피우고 금적수사 부부를 빼 돌린 자들과 한패인 자들이 있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은 참겠소. 여러분들의 심기를 어지럽힌 점 사과드리오.”

그와 동시에 그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계속 추적한다.”

그 말에 이곳에 있는 육십사명의 철혈대원과 철혈쌍비는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존----명---!”

마치 한 사람이 외치듯 똑같았다.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철저한 훈련을 거친 인물들인지, 또한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서늘한 한기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지광계 부부가 있었던 자리의 마루 바닥에 미세한 틈이 벌어지며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정도의 마루 바닥이 한자 정도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것으로 잘라 놓은 것인데 철혈대의 일치된 음성이 장안루 내부를 흔드는 순간 내려앉은 것 같았다.

“깨끗하게 당했군!”

독고좌는 물론 좌중의 인물들은 지광계 부부가 어떻게 빠져 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 철혈대는 사방은 물론 천정까지 점하고 있었지만 바닥은 아니었다. 사실 누가 바닥까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독고좌는 벌어진 구멍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의 말대로 깨끗하게 당한 것이다. 철혈쌍비가 독고좌를 따르고 그 뒤로 구석에 있던 철혈대의 인물들이 먼저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육십사명이 그곳을 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한순간이었다.

두두두---두---

말자국소리가 들리는 듯 싶더니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이곳을 들어 왔다가 머문 시간은 채 차 한잔 마실 시간[一茶頃]도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나 긴장했던지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좌중의 인물들 중 세 명의 남녀가 지광계 부부가 사라진 구멍에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구멍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한자 깊이의 구멍 외에는 흙으로 모두 막혀 있어 어떻게 빠져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수백개의 이목을 흐리고 이토록 감쪽같이 금적수사 부부를 빼돌릴 수 있을까? 정말 탄복할만한 솜씨이군.”

삼십대 초반의 청의를 입고 있는 인물이 감탄하듯 입을 열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이십대 후반의 여인이 말을 받았다.

“그럴 솜씨를 가진 자는 이 중원에 오직 한 명뿐이죠. 하지만 그가 철혈보의 신경을 긁을 만큼 간담이 크다고 생각할 수는 없군요. 헌데 철혈대주가 찢어 없앤 오룡번이 정말 진짜였을까요?”
“아닐 가능성이 높지. 그렇다면 굳이 금적수사 부부를 데려갈 필요가 있었을까?”

그들의 말에 좌중 역시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룡번을 없앤 마당에 철혈보에 대해 정면도전이랄 수 있는 사건을 벌이며 그들을 데려갈 이유는 하등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장안루에서의 잔치는 끝났어. 움직여 보자구….”

세 사람은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장안루를 나서고 있었다. 그들을 본 좌중에서도 이미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들의 말대로 장안루에서 있었던 잔치는 끝난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어딘가에서 잔치는 벌어질 것이다. 그들은 그 잔치에 참석해야 했다. 줄줄이 빠져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구양휘가 중얼거렸다.

“단혼연이라… 그것이 이곳에서 다시 모습을 보이다니….”

그 말에 손가장에 있었던 세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송하령과 서가화를 기습했던 한미령이 사용했던 것이 단혼연이다. 하지만 정작 의혹이 꼬리를 물고 머리를 혼란해 하고 있는 사람은 정작 담천의였다.

우연히 흑의인을 쫒아 들어갔던 관왕묘에 있었던 인물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그들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급히 낭씨형제가 있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언제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 이 장안루 안에는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구효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성하검 섭장천이란 인물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겠소?”

그의 물음에 구효기는 담천의가 묻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담공자는 그를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이 말하는구려.”

“며칠 전 그를 만나보았소.”

담천의의 말에 구효기의 얼굴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무슨 이유일까? 허나 그는 금세 얼굴색을 회복하며 입을 열었다.

“그는 한때 천하제일검으로 명성을 얻었던 인물이오. 그러나 무림에 알려진 바로는 그는 삼십년 전 홀연히 무림에서 갑자기 사라졌소.”

“거사께서도 그가 사라진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오?”

“아니 알고 있소. 그는 친구 때문에 한 팔이 잘리고 무림에서 사라져야만 했소.”

구효기는 이유를 말했지만 누구로 인하여 어떤 연유로 섭장천이 무림을 떠나야 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어떻게 섭장천이 자신을 알고 있는지 어떠한 단서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구효기가 애써 대답을 피하고 있음을 알았다. 더 이상 깊이 파고드는 것은 무리다.

“소생은 며칠 전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소. 그때는 몰랐지만 오늘 이 자리에 있다보니 그것이 재미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었소.”

그의 말은 모호했지만 구효기는 금세 알아들었다. 담천의는 분명 조금 전 벌어진 오룡번에 관련된 일의 이면에 있는 일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구효기는 나직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는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담천의와 같이 있었으니 모두 알고 있냐는 의미였지만 일행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 자리는 그런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오.”

그는 담천의의 말에서 오룡번의 일이 성하검 섭장천과 관계가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담천의는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줄 단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점에서 구효기는 더 이상 대화를 진행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다른 것을 묻겠소? 나는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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