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의 정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곳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73) 이제는 지방화 시대다 4 -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

등록 2005.01.25 16:59수정 2005.01.26 09: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건강하게 살려면 체중부터 줄이세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나 친구들은 나에게 그 새 얼굴이 맑아졌다고 덕담을 한다. 아마도 하루 한 갑 반 이상 태우던 담배를 2002년 3월 2일 개학날부터 '뚝' 끊은 지 3년이 다 돼 가니 온몸에 배었던 니코틴의 독한 진이 이제는 거의 몸에서 빠져나간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지난해 4월 안흥으로 내려온 뒤부터는 채식 위주로 밥상 반찬이 바뀐 탓일 게다.

아내는 소식에다가 채식주의자다. 오래 전부터 하루 두 끼만 그것도 밥 한 공기를 넘기는 일이 없었다. 제삿날 당신이 온종일 제물(제사에 쓰는 음식)을 장만하고도 제사가 끝난 뒤 음복할 때도 입에 대지 않을 만큼 아내는 먹는 데 초연했다.

a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두부 전골. ⓒ 박도

사실 오늘날 성인병의 대부분은 자신의 소모 열량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게다. 지난해 미국에 가봤더니 네댓 사람에 한 사람 이상이 이상비만자로 자기 몸도 주체하지 못했다.

이런 이상비만은 이제 우리 나라에도 점차 번지고 있다. 세상 고르지 못한 것은 한쪽에서 굶어죽는다고 야단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상비만 체중을 줄인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온통 난리다.

어린 시절 나는 야윈 체질로 어른들은 늘 체중이 불어나기를 바랐다. 그 시절에는 너나없이 모두 가난하여 살찌는 것을 부의 상징으로 부러워했던 때였다. 하지만 체질도 변하는지 중년 이후에는 체중이 불어나서 지금은 70킬로그램을 오르내리고 있다.

노년을 건강하게 지내려면 체중부터 줄이라고 아내로부터 숱한 잔소리를 들으면서 요즘은 채식 위주로 음식의 양도 조절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장모님은 사위가 영양실조라도 걸릴까 하여, 이따금 전화로 "걔 모르게 어디 가서 고기라도 좀 사서 자시게" 하신다.

하지만 아내 몰래 그런 적은 없었고, 손님 대접이나 시원한 국물이 생각난다고 말하면, 아내는 이곳에 내려 와서 알게 된 횡성농민회원인 이웃마을 우천면 정금초등학교 앞 '큰터 손두부 집'으로 안내한다. 큰터란 이 마을 이름이라고 했다.

농가 수입 극대화 방안

a

"열여섯 살 때부터 입때까지 두부를 만들고 있다"는 김정숙(65) '큰터 손두부' 할머니 ⓒ 박도

이 집 주인 김동근(40)씨는 횡성농업경영인(농업인 후계자)으로 아주 부지런한 농사꾼이다. 그는 8남매의 맏이로 정금초등학교와 우천중, 원주 진광고를 졸업하고 곧장 전문 농사꾼이 되었다.

그는 고향 땅을 지키면서 해 보지 않은 작물이 없을 정도로 별별 농사를 다 지었다. 벼, 고추, 감자, 옥수수, 콩, 양채류(적채, 브로콜리, 양배추, 양상추, 피망, 도마도, 들깨, 참께, 참외 수박…) 등을 농사지어 시장에다 내다 팔았다.

뼈 빠지게 일해도 식구들이 살 수가 없었다. 결혼조차 할 수 없었던 터에 마침 지역구 국회의원(당시 박경수 의원)이 주선해 줘서 멀리 연변 룡정 아가씨를 신부로 맞아들였다.

그 뒤 고향을 지키고자 더욱 몸부림을 쳤다. 농가수입을 극대화하고자 길가에다 농막을 지어놓고 자기가 지은 농산물을 직접 팔았다. 수입은 조금 나아졌지만 일년 내내 판매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어머니가 여름철에는 농막에다 이 지방 별미인 올갱이 국수를 만들어 팔았는데, 그게 '무허가'라고 판매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이 참에 정식으로 음식점을 허가내기로 하였다. 어머니가 평생을 손수 만든 두부찌개를 개발하면 성공하리라는 기대로 가게 문을 열었다.

자기가 애써 지은 우리 콩으로 가게 옆에다 가마솥을 걸어놓고 어머니가 평생 만들어온 솜씨로 두부를 만들었다. 그러면 그 두부로 아들과 며느리가 조리를 하여 팔고 있으니, 그야말로 '원 스톱 시스템'으로 농가 수입 극대화 방안의 한 모델을 보이고 있다.

늘 먹었지만 이 집 두부전골의 맛은 구수하고 산뜻, 깨끔하다. 그 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그것은 어머니의 손맛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콩으로 옛 방식대로 만든 두부를 들기름이나 산초기름에다 노릿노릿 구워내는 두부구이도 별미였다.

어린시절에 본 적이 있는 두부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던 차, 마침 지난 주말에 들렀더니, 막 맷돌에 콩을 갈고 있었다. 맷돌로 간 콩물을 가마솥에다가 넣고 끓인 뒤 자루에 넣어 찌꺼기를 걸러냈다. 그런 다음 다시 가마솥에다가 걸러낸 콩물을 넣어 가열하면서 간수를 조금씩 넣자 콩물이 덩어리처럼 응고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그대로 요리해서 먹으면 '순두부'라고 했다.

그 응고된 덩어리를 바가지로 떠서 천을 깐 틀에다 넣고 그 위에 다시 천을 덮고는 10여 분 누른 다음, 칼로 네모나게 썰어 물동이에다 담갔다. 마침내 두부가 다 되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만든 두부

가마솥에서 두부를 만들고 있는 어머니 김정숙(65)씨에게 물었다.

a

행복한 가족 일동의 모습, 갓난아이가 빠졌다. 요즘 시골에는 이런 장면을 보기가 힘들다. 오른쪽이 아들 김동근(40), 며느리 최명화(33) 부부. ⓒ 박도

- 언제부터 두부를 만들었습니까?
"열여섯 살에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만들기 시작한 게 오늘 입때껏 만들고 있어요."

- 이 집 두부의 맛의 비결은 어디에 있나요?
"내가 해 먹는 대로 만들어 팔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 콩 농사는 얼마나 짓나요?
"4천 평에 25가마니 정도 수확했어요(아들의 답). 그전에는 모두 장에다가 팔든지 농막에서 팔았는데, 요즘은 모두 두부를 만들어서 팔고 있어요. 우리 집 콩만으로는 부족해서 딸네 집 콩도, 이웃 집 콩도 사다가 쓰고 있어요."

콩은 신이 사람들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로, 우리의 신체기능을 가장 자연적인 상태로 돌려 줄 수 있는 식품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할 만큼 고단백질 식품이다. 또 콩은 인체 내의 항암력을 증대시키고 각종 성인병 예방과 건강한 삶을 위하여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식품이라고 한다.

두부는 맛뿐만 아니라, 영양 면에서 더할 수 없이 훌륭한 식품이다. 두부는 과도한 육류 섭취로 인한 콜레스테롤 증가로 합병증이 우려되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매우 좋고, 두부의 원료가 되는 콩 속의 성분 덕분에 항암, 골다공증 예방, 고혈압 예방, 콜레스테롤 감소 등의 효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뛰어난 소화흡수율임에도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다고 곁에 있던 김동근씨가 콩과 두부, 그리고 들기름과 산초기름의 효능에 대해서 자랑했다.

"저희 어머님은 집안의 보물단지예요"

김정숙 할머니는 8남매를 키우느라 하도 일을 많이 해서 벌써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지난날 8남매가 한창 자랄 때는 늘 방이 가득 찼고 어떻게나 먹성들이 좋은지 양식이 모자라서 별 것을 다 해먹였다고 했다. 이날따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까닭은 맏며느리가 7년만에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도무지 힘이 안 든다고 했다. 마침 외양간에서 소를 돌보던 영감님이 오셨다.

- 맏며느리 자랑 좀 해 주세요.
"우리 며느리 우리 나라에서 제일이에요. 연하고 싹싹하고 똑똑하고 예쁘고…."

시아버지의 며느리 자랑은 끝이 없다. 아들과 며느리는 부모 자랑으로 화답했다.

"저희 어머님은 집안의 보물단지예요."
"저희 아버님은 집안의 기둥이예요."

- 아들과 며느리와 사시는 데 기분이 어떠세요.
"아, 좋지요. 손녀 손자 보는 그 재미가 말할 수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걔들부터 먼저 보고 일해요. 사는 맛이 나요. 그런데 도시사람들이 촌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 같아서 속상해 죽겠어요."

- 아닙니다. 할머니, 이제는 곧 도시사람들이 시골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좋은 시절이 올 겁니다.
"정말 그런 세월이 올까요. 우선 우리 집 장사가 잘돼서 조합(농협) 빚이나 갚았으면 좋겠어요."

- 조합 빚이라니요?
"촌에 사는 사람들 거의 다 조합 빚을 졌을 거예요. 조합에서 영농 자금 빌려 쓰려면 이웃끼리 서로 연대 보증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느 한 집이 부도를 내면 마을 전체가 빚을 지게 마련이에요. 우리 영감은 조합 빚 때문에 속병을 앓고 있어요."

이 집 식구들과 함께 친지처럼 한 밥상에서 함께 점심을 나누고 일어서면서 밥값을 밥상 위에 놓고 나오자, 오늘만은 그냥 가라고 하는 걸 끝내 도로 받지 않고 차에 올랐다. 그러자 아들이 잽싸게 조금 전에 만든 두부 두 모를 비닐주머니에 담아 승용차 뒷좌석에 실었다. 그마저도 거부하면 인정을 저버릴 것 같던 터에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묘안을 들려줬다.

"서울 가는 길에 디카에 든 가족사진이나 크게 잘 뽑아서 갖다 주세요."

두부 만드는 과정

a

두부를 만들고자 물에 불린 콩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맷돌에 갈고 있다. ⓒ 박도


a

맷돌로 간 콩물을 가마솥에다가 넣고 끓인다 ⓒ 박도


a

끓인 콩물을 자루에다 넣고 짜낸다. 이때 자루에 남는 게 콩 비지다 ⓒ 박도


a

다시 가마솥에 넣고 가열한다. 이때 간수를 조금씩 넣으면서 주걱으로 저어 준다. 그러면 콩물이 마침내 덩어리로 응고한다. 이대로 요리하면 순두부가 된다 ⓒ 박도


a

천을 깐 틀에다 응고된 덩어리를 넣고 10여 분 눌린 다음 천을 펼치고는 칼로 두부모를 잘라낸다 ⓒ 박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5. 5 [단독] 신응석 남부지검장, '대통령 장모' 의혹 저축은행과 혼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