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은빈이가 송곳니를 뺐습니다"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의 사랑이야기(26)

등록 2005.03.10 09:40수정 2005.03.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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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철

오늘 아침, 우리집 은빈이가 송곳니를 하나 뺐습니다. 이 하나를 뺀 것을 가지고 뭐 그리 유난을 떠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애비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은빈이는 겁이 많은 아이입니다. 전 같았으면 이를 빼기 전부터 울고불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을 텐데 이번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도 울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를 빼고 나서는 활짝 웃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굵은 실을 흔들리는 은빈이의 송곳니에 매듭을 지어 단단히 걸었습니다. 은빈이가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하나, 둘, 셋!"


아내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모두 이런 방법으로 아이들의 이를 뽑았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충치로 고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은빈이의 송곳니가 실매듭에 대롱대롱 걸려 나왔습니다. 은빈이의 송곳니가 반짝거립니다. 은빈이는 자기 스스로도 대견한 모양입니다.

"은빈아, 아프지 않았니?"
"아뇨,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야, 너 전에는 이 뽑을 때마다 엉엉 울고 그랬잖아!"
"아빠는 제가 어린 앤 줄 아세요. 저도 이젠 많이 컸어요."
"그래, 우리 은빈이가 많이 컸구나."
"그런데 아빠, 이를 지붕에 던져야 예쁜 새 이가 나올 텐데, 우리집은 슬래브 지붕이니 옥상에 올라가 바닥에 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하죠?"

"그렇구나! 그럼 아빠 책상서랍에 보관해 두자. 아빠가 작은 병에 담아 잘 놔둘게. 이 담에 은빈이가 어른이 된 다음에 꺼내보자. 그러면 재밌겠다."
"좋아요. 그런데 이를 지붕에 던져 놓지 않아서 새 이가 안 나오면 어떻게 하죠?"
"그건 걱정 마, 예쁜 새 이가 나올 거야. 아빠가 책임질게."


a 더 예쁘고 튼튼한 이가 나오길.

더 예쁘고 튼튼한 이가 나오길. ⓒ 박철

은빈이가 활짝 웃습니다. 이가 빠진 모습이 더 예쁩니다. 은빈이 말대로 우리집 은빈이는 많이 컸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은빈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오마이뉴스>에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의 사랑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늙은 아빠의 마음을 살펴주는 살갑고 애교 많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 뽑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 은빈이는 학교 갈 준비에 정신이 없습니다. 아침밥을 후다닥 먹어 치우곤 옷을 입습니다. 요즘은 아내가 골라주는 옷을 입지 않고 자기가 옷을 골라 입습니다.

"엄마, 학교 늦었어요."
"천천히 해라. 아직 시간이 충분해. 빠트린 건 없니?"
"엄마, 저 오늘 당번이란 말이에요. 엄마는 당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세요."


옷을 다 입자마자 책가방을 메고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섭니다. 집에는 아내와 나, 둘만 덜렁 남았습니다. 방에는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들이 여기 저기 파편처럼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옷을 보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바로 저것이 행복이구나!'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밖에서는 계란 장사가 좋은 계란이 왔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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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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