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에 '동여도'는 있어야 한다

고지도 필사작업을 하는 최현길의 지난 1년

등록 2005.03.19 01:01수정 2005.03.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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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했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높이 7미터 폭 6미터, 7만여 자나 되는 깨알 같은 글씨 그리고 산과 강을 그린 무수히 많은 섬세한 선들, 아직 채색 하는 일등이 남았지만 7개월 동안 붓 하나로 그린 고지도 필사작업의 대가 최현길의 동여도다.


a 채색등의 작업이 남아있지만 7개월동안의 작업으로 동여도라는 필사본을 만든 최현길씨 한장 한장 정성스레 펼쳐 보이고 있다.

채색등의 작업이 남아있지만 7개월동안의 작업으로 동여도라는 필사본을 만든 최현길씨 한장 한장 정성스레 펼쳐 보이고 있다. ⓒ 서정일

최현길, 그는 누구인가? 왜 낙안읍성에 살고 있노라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대의 역작인 고지도 필사본을 싸들고 왜 다시 서울행 열차를 타려 하는 것일까? 아무 말 없이 방안 가득 펼쳐놓았던 24장으로 구성된 동여도는 그의 손에 의해 또다시 차곡차곡 접힌다.

1년 전, 미술을 전공하고 고지도 작업을 10년씩 한 그가 붓 한 자루와 한지 몇 장만을 들고 낙안읍성을 찾았다. 필생의 작업인 고지도의 마지막 점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낙안읍성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밤낮없이 고지도 그리는 일만 했다. 머릿속은 온통 작품에 대한 구상뿐이었고 대작을 만들어 낙안읍성에 걸고 싶은 욕심 하나였다.

a 길이 7미터 폭 6미터의 대작으로 1:1 실사는 최초라고 한다. 7만여 자나 되는 깨알같은 글씨를 손수 하나 하나 적었다고 하니 고지도 필사작업이 보통의 정성으로는 힘든 작업임을 느끼게 된다.

길이 7미터 폭 6미터의 대작으로 1:1 실사는 최초라고 한다. 7만여 자나 되는 깨알같은 글씨를 손수 하나 하나 적었다고 하니 고지도 필사작업이 보통의 정성으로는 힘든 작업임을 느끼게 된다. ⓒ 서정일

마구간에 별 하나가 떨어지고 그곳에서 놀라운 탄생이 있게 된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혀 새로운 분야, 사람들에겐 생소함으로 다가왔고 그의 작품은 단숨에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낙안읍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온통 그의 작품 얘기로 들썩였다. 그가 그린 고지도가 낙안읍성의 그것과 너무나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10년간 그려서 모아놓은 40여점의 고지도와 함께 동문 밖으로 내몰렸다. 의외의 일이였다. 고지도 필사본을 하는 이가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그가 그려놓은 고지도 40여점이 낙안읍성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음에도 불구하고 순천시에서 조차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a 나머지 40여점을 꺼내 보이면서 설명을 하는 최현길씨 옛 지도에서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대마도도 우리땅이라고 그려진 지도가 있다고 말한다

나머지 40여점을 꺼내 보이면서 설명을 하는 최현길씨 옛 지도에서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대마도도 우리땅이라고 그려진 지도가 있다고 말한다 ⓒ 서정일

"낙안읍성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는 못내 아쉬운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할 말은 많지만 진정 낙안읍성을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낙안읍성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만 말할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그동안 취재를 해 오면서 낙안읍성내에서 민속시연을 하는 기능인들과 현주민들 간의 사소한 불협화음을 종종 목격한 기자로서도 낙안읍성의 재진단이 필요함을 느끼던 차에 그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고지도 필사작업을 하는 최현길, 그가 품은 꿈은 낙안읍성에 자그마한 고지도 박물관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낙안읍성을 찾는 이들에게 그저 전통과 어울리는 하나의 볼거리 정도만 되어도 흡족하다고 스스로는 늘 다짐하곤 했다.


a 작품 얘기할땐 신바람나서 설명하던 최현길씨, 낙안읍성 꼼꼼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작품 얘기할땐 신바람나서 설명하던 최현길씨, 낙안읍성 꼼꼼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 서정일

그런 그가 낙안읍성을 떠나려하고 있다. 사실 순천시가 아니라도 그의 작품을 탐내는 타 시도는 많다. 그만큼 그의 작품을 전시할 경우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교육적 가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민속마을만큼 어울리는 곳은 없다고 감히 단언하고 싶다. 관과 현주민 모두는 낙안읍성의 미래를 위해 그의 거취에 관해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바라보고 함께 만들어가자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덧붙이는 글 함께 바라보고 함께 만들어가자 낙안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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