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52회)

등록 2005.03.21 12:46수정 2005.03.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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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녕대학교는 전에 채유정을 만나기 위해 온 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았지만 교정이 워낙 넓어 길을 제대로 찾기 힘들었다. 요녕대학교의 건물들은 낡고 퇴락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을 무게를 이기면서 고색창연한 모습을 자아내는 느낌도 들었다.

교정 안은 대체로 조용했다. 여름 방학인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 출입하는 사람이 적었다. 간간이 보이는 학생들과 건물 보수공사를 하는 몇몇의 인부만 보일 뿐이었다. 교정 건물은 그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넓어 보였다.


건물 앞 벽에는 각종 플래카드와 벽보, 현수막 같은 선전물로 차 있어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걸 붙여 놓은 지 오래된데다, 마침 내리기 시작한 빗물로 글씨가 번져나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서 보기 흉하게 찢겨져 있었다.

김 경장은 여기에 오기 전에 채유정에게 부탁하여 박물관장에게 연락을 해 놓은 상태였다. 자신을 한국에서 온 교수로 속이고 여기에 보관된 유물을 보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물론 대학 측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중요 유물을 외국인에게 보이길 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장과 함께 유적 탐사를 했던 채유정의 간곡한 부탁으로 잠깐 동안 유물을 보는 것을 허락 받을 수 있었다.

이 대학에서는 기원전 3500년께의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기원전 3500년이라면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연대와 거의 비슷했다. 여기의 유적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피라미드 속에 숨겨진 유물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을 거란 게 김 경장의 생각이었다.

요녕대학교의 박물관에는 우하량 유적지와 동산취 유적지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우하량 유적지는 길이 160m에 너비 50m 규모로 거대한 적석총 다섯개와 돌로 쌓은 제단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였다. 각 적석총에는 십여개의 석관묘와 함께 옥으로 만든 용과 빗살무늬 토기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하량 유적지 뿐만 아니라 거기서 50km 정도 떨어진 커주어의 동산취 유적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기원전 3500년께로 추정되는 이 유적에는 원형 제단터와 사각형 돌 무덤, 인물 소상과 각종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물론 김 경장은 여기 심양에 도착해서 두 유적지에 관한 발굴조사 보고서를 모두 읽고 면밀하게 살펴 보았다. 5차에 걸친 발굴작업은 모두 5권의 책으로 발간되었는데, 그 방대한 양을 참고해 보더라도 실물 그대로의 유물을 한번 보는 것에 못 미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주위에서 발견된 유물을 직접 눈으로 살펴보면 안 박사가 숨겨 놓은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대학 측에서는 아직 김 경장의 수배 여부를 모르고 있는 듯했다. 교정으로 들어오기 전에 전화를 했는데, 박물관장 대신 조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걸으면서 박물관의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를 살폈지만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길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노라니 마침 재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하나가 우산을 쓰고 언덕길을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학생은 두툼한 책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가죽 책가방을 들고 있었다. 얼른 그에게 다가서 물었다.

"박물관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러자 학생이 위쪽의 사잇길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길을 따라 주욱 내려가십시오. 가다보면 길 오른편에 박물관이 있습니다."

학생의 말대로 언덕길을 넘어가니 오른편에 박물관이 있었다. 키가 낮은 단층 건물이었는데, 가파른 경사를 이용하여 지은 건물이어서 낮은 경사 쪽으로는 2층을 이루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돌로 만든 석인이 나란히 서서 이곳이 박물관 건물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조명이 어둡고 창문이 없는 복도가 펼쳐졌다. 빛이 들어오지 않아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1층의 박물관장실 옆 방에 '연구실'이라는 팻말이 내걸려 있었다. 연구실 앞에 이르러 방문을 두드리자 조교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김 경장을 알아보고는 얼른 복도로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 경장이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했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같은 역사학자로서 우리 중국의 귀한 유물을 보시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조교가 앞장서 걸었다.

"유물을 보관해 두는 창고는 지하에 있습니다."

일단 밖으로 다시 나와 한층 아래 인 지하실로 들어가자 두꺼운 철장이 보였다. 박물관의 유물을 보관해 두고 있는 창고이니만큼 경비가 철저했다. 조교가 미리 가지고 온 열쇠로 자물쇠로 채워진 철창을 열었다. 그러자 똑같이 자물쇠로 채워진 방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그 방들은 자물쇠 뿐 아니라 도장이 찍힌 봉인들로 폐쇄되어 있었다.

조교는 그중 한 방 앞에 서서 서류에 무슨 글자를 적어놓더니 그 봉인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열쇠를 밀어 넣어 방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벽에 붙은 스위치를 올리자 껌벅껌벅하고 형광등이 켜졌다. 항 하나 없는 사면이 벽으로 이루어진 밀실 안은 온통 유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제대로 분류를 해놓지 않아 아무렇게 놓아진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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