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50회 (8부 : 푸른 낙엽)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5.10 11:44수정 2005.05.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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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조화 / 그림 제공 : 이정남 화백
극락조화 / 그림 제공 : 이정남 화백김형태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내 방에서 나와 우산 하나만을 치켜든 채 그녀의 하숙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를 가고 있었을까? 그녀는 우산 속에서 나의 허리를 꼭 잡고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여행을 한 번 다녀오자고 했다.

"여행?"


하고 내가 물었더니,

"그래요 여행,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요. 지지난 겨울에 갔던 천수만 어때요? 거길 한 번만 더 가보고 싶어요. 철민씨와 함께. 그때는 바쁜 일정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했잖아요. 바다를 배경으로 해지는 노을과 철새들의 비상! 다시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안 되겠지요?"

나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건강한 모습이….

보고픔 1

너를 생각하면 저저로 목이 메인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아, 이 보고픔은 차라리 고통이다

보고픔 2


보고픈 애절함이 목젖을 넘어올 때
이를 악물고 꿀꺽 삼켜버린다
보고 싶다 말하고 나면
정말 보고 싶어 못 견딜 것 같아

보고픔 3


몸이 떨어져 있으면
자연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순리이건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서로를 그리는 마음이 불처럼 타올라
잠을 못 이루고 온밤을 하얗게 색칠하는 너와 나

참사랑

서로를 위해서라면
아니, 상대를 위해서라면
헤어질 수도 있는 마음의 준비가
바로 참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위해서만 박동하는 것이니까요

이룰 수 없는 사랑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우리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러나
여기서 그만 헤어집시다

그것이 서로를 정말 위하는
참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최선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현실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역설 아닌 역설을
오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청안(靑眼)!


병원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가란다. 이제 많이 사셔야 2개월 내지 3개월. 그러니 잡수시고 싶은 거나 마음껏 잡수시도록 해드리고 경치 좋은 곳으로 한 번쯤 바람을 쐬어 드리란다. 그러나 병원에서 아버지를 포기했다고 해서 우리 식구들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족회의 결과 암을 잘 낫게 하기로 소문난 경기도 포천의 H기도원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가기로 했다. 기적을 일어나길 기대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결정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떻게 유교적 가풍을 자랑하는 한 집안의 종손이 기도원에 갈 수 있느냐며 친척들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기도원 행이 좌절되는가 싶었다.

"그럼 당신들이 내 아들을 살려내기라도 할 겁니까? 낫기만 한다면야 기도원 아니라 더한 곳인들 못 가겠소."

이렇게 할머니께서 나서시는 바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와 누나와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정말로 넓고 큰 기도원이었다. 보통 산 속에 기도원이 있게 마련인데 그 기도원은 특이하게도 평야지대에 있었다. 그것도 대로(大路)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기도원은 방마다 천막마다 암환자와 그 보호자들로 인해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배가 있었다. 특별히 오후 2시와 저녁 7시에는 그곳 원장으로 있는 여자 전도사가 직접 예배를 인도했다.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실상은 신유 집회였다.

원장이 인도하는 예배는 그야말로 수많은 인파로 인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자기도 암에 걸려 지옥문 앞까지 갔다 왔다는 그 여자 원장은 특이한 방법으로 안수를 하였다.

사람들을 하나씩 나오라고 하고는 등의 한가운데 부분을 손톱으로 긁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도원 터에서 샘솟는 생수를 발라주고 있었다.

분명 손톱으로 깊게 긁어 상처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안수를 받으면 암세포가 그 상처를 통해 쏟아져 나간다는 것이 원장의 말이었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암이 나았다며 간증을 하는 사람들로 예배 분위기가 뜨거웠다.

그러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도 저렇게 나와서 간증하는 사람들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정말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였다.

일주일 후 나는 기말고사 관계로 혼자서 대전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학생들의 시험 거부로 인해 기말고사는 늦어지고 있었다. 계엄령이 선포되지 않는 한, 돌아가는 정국으로 보아 금방 기말고사가 시행되기는 어려울 듯 보였다. 그래서 혹시 기말고사가 실시되면 연락하라고 기도원 전화번호를 노진에게 적어주고는 도로 왔다.

20일쯤 다시 경기도 포천의 H기도원으로 내가 돌아오자 누나는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걱정된다며 내려갔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 나는 대로 성경말씀을 읽어드렸다. 그리고 가져온 녹음기를 이용하여 복음성가와 찬송가를 틀어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는 듯 했으나 이대로 눈을 감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며 내가 하라는 대로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들으셨다. 그러자 아버지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는 듯 했다. 나는 아버지께서 주무실 때면 생수터 옆에 있는 기도굴에 들어가 아버지의 병을 제발 낫게 해 달라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덧붙이는 글 |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51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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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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