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입맛 흥부국수에 맡기세요

<음식사냥 맛사냥 24>후루룩 쩝쩝 절로 술술 넘어가는 '국수'

등록 2005.05.30 14:58수정 2005.05.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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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입맛 없을 때 후루룩 쩝쩝 국수 한그릇 드세요

입맛 없을 때 후루룩 쩝쩝 국수 한그릇 드세요 ⓒ 이종찬

오월 끝자락, 갑자기 날씨가 무더워졌다. 이제 막 초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긴 하지만 날씨가 너무 무덥다. 벌써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조금만 움직여도 이마와 목덜미에서 땀이 삐질삐질 난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의 기운이 절로 쑤욱 쑥 빠져나가면서 식사 때가 되어도 무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끼니를 그냥 거를 수도 없다. 뭔가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진종일 얼음물을 너무 자주 마셔서 그런지 입안이 깔깔한 게 통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밥 대신 뭔가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울 만한 그런 음식은 없을까. 입에 넣으면 아무런 부담 없이 그저 술술 넘어가는 그런 음식이 없을까.


있다. 국수다. 국수는 초여름 입맛이 없을 때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기에 참 좋은 음식이다. 국수는 물국수든 비빔국수든 밥처럼 위에 부담을 주는 그런 음식도 아니다. 그저 혀끝에 쫄깃하게 감기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면발을 씹으며 몇 번 후루룩거리다보면 금세 한 그릇 뚝딱 사라지는 음식이 국수가 아니던가.

a 김해시 흥동 임호산 자락 아래 자리잡은 흥부국수

김해시 흥동 임호산 자락 아래 자리잡은 흥부국수 ⓒ 이종찬


a 멸치 다싯물로 4시간 동안 삶아낸 계란맛도 일품이다

멸치 다싯물로 4시간 동안 삶아낸 계란맛도 일품이다 ⓒ 이종찬

예로부터 국수는 긴 면발 때문에 장수를 상징하는 음식이다. 돌잔치나 결혼식을 할 때 손님들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유두 절식의 하나로 햇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 같은 모양의 유두국수를 만들어 오색으로 물들이고, 3개씩 포개어 색실에 꿰어 몸에 차거나 문짝에 매다는 것도 여름철 무더위와 액막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디 그뿐이랴. 국수는 산모가 젖이 부족할 때도 일종의 부적처럼 쓰였다. 이 때에는 병 속에 국수를 넣고 우물가로 가서 두레박으로 금방 퍼올린 우물물을 병에 넣은 뒤 산모의 목에 걸고 병 속에 든 물을 쏟았다. 그렇게 하면 산모의 젖이 풍부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수의 길이와 물의 생산력이 합쳐진 일종의 주술이었다.

"사실 국수란 건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겠어요. 제 아무리 조리를 잘한다고 해도 국수는 국수지요. 저희 집 국수맛의 비결은 멸치 다싯물에 있어요. 보통 일반 국수집에서는 다싯물을 낼 때 멸치와 다시마, 무, 파, 명태 대가리 등을 넣고 오래 우려내지만 저희는 멸치 한 가지만 넣고 5시간을 우려내요."

경남 김해시 흥동 906-2번지, 천년 고찰 흥부암이 자리 잡고 있는 임호산 자락 아래 국수 가락처럼 길게 드러누운 '흥부국수'. 지난 해 12월에 문을 열었다는 '흥부국수'는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전유성 최유나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와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에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진 국수전문점이다.


a 이 집 물국수의 비법은 5시간 동안 우려낸 구수하고 시원한 멸치 다싯물이다

이 집 물국수의 비법은 5시간 동안 우려낸 구수하고 시원한 멸치 다싯물이다 ⓒ 이종찬


a 물국수와 함께 따라나오는 송송 썬 매운 고추

물국수와 함께 따라나오는 송송 썬 매운 고추 ⓒ 이종찬

29일(일) 오후 1시. 김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달려 도착한 '흥부국수'. 60~70년대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인 벽이 돋보이는 '흥부국수' 집에 들어서자 식탁마다 바구니에 먹음직스럽게 담겨진 여남은 개의 삶은 계란(3개 1000원)과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이 눈에 띈다.

그 스테인리스 국그릇 안엔 자그마한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하나 더 들어 있다. 아마 스테인리스 국그릇에는 계란껍질을 담고, 스테인리스 밥그릇에는 계란을 찍어 먹을 소금을 담으라는 것임에 틀림없다. 근데, 바구니 안에 담겨진 삶은 계란은 그냥 계란이 아니다. 멸치국물에 4시간 동안 삶은 계란이다.


어디 하나 먹어볼까. 삶은 계란의 껍질을 벗기자 계란 속이 하얗지가 않고 옅은 갈빛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갈빛 계란을 소금에 찍어 한입 물자 독특한 맛이 혀끝을 농락한다. 삶은 계란 특유의 비릿한 맛은 온데간데없고 입 안에 구수한 맛이 맴돌면서 뒷맛이 아주 깔끔하다.

"물국수를 드실랍니까? 아니모 비빔국수로 드실랍니까?"
"날씨도 덥고 하니, 물국수가 낫지 않겠어요?"
"그럼 먼저 물국수를 드신 뒤, 입가심으로 비빔국수도 조금 드셔보십시오. 막걸리 안주도 할 겸."


a 구수하고 담백하면서도 속풀이까지 되는 흥부 물국수

구수하고 담백하면서도 속풀이까지 되는 흥부 물국수 ⓒ 이종찬


a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비빔국수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비빔국수 ⓒ 이종찬

그렇게 멸치 다싯물로 삶은 독특한 맛의 계란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두어 잔 마시고 있을 때였을까.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수북이 담긴 맛깔스런 물국수(2500원)가 잘게 송송 썬 매운 고추 한 종지와 함께 나온다. 밑반찬은 꼭 한 가지, 발그스름한 깍두기 한 그릇뿐. 하긴 갖가지 채소가 담긴 물국수를 먹는데 다른 반찬이 뭐가 필요하랴.

삶은 부추와 물에 오래 불려 단맛을 뺀 단무지, 잘 볶아 으깬 고소한 깨소금과 양배추, 오이, 상추 등이 수북하게 올려진 물국수를 바라보자 입에 침이 절로 고인다. 특히 진한 갈빛으로 잘 우러난 멸치 다싯물을 바라보자 이내 코끝에 구수한 내음이 맴돌면서 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각종 채소가 올려진 물국수를 진한 갈빛 멸치 다싯물에 말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자 쫄깃한 면발이 잠시 씹히는가 싶더니 몇 번 씹을 새도 없이 그냥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가 버린다. 물국수가 순식간에 사라진 개운한 입 안에는 고소하고도 담백한 멸치 다싯물의 향기가 그득하다.

'후루룩~ 후루룩~ 쩝쩝!' 숨 쉴 틈 없이 물국수를 건져먹는 사이사이 슝늉처럼 쭈욱 들이키는 구수하고도 개운한 국물맛도 끝내준다. 그렇게 서너 번 후루룩 쩝쩝거리고 나자 이내 물국수 한 그릇이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없다. 물국수 한 그릇이 속 풀이까지 후련하게 시켜주면서 이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있다니.

a 이 집 비빔국수는 여러가지 과일과 채소를 채썰어 넣고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깨소금, 참기름을 듬뿍 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집 비빔국수는 여러가지 과일과 채소를 채썰어 넣고 집에서 담근 고추장과 깨소금, 참기름을 듬뿍 치는 것이 특징이다 ⓒ 이종찬


a 60~70년대 신문으로 덕지덕지 바른 독특한 느낌의 벽

60~70년대 신문으로 덕지덕지 바른 독특한 느낌의 벽 ⓒ 이종찬

잠시 뒤 막걸리 안주도 할 겸 입가심으로 한번 먹어보라며 나온 비빔국수(3000원)의 새콤달콤한 맛도 정말 끝내준다. 이 집 비빔국수의 특징은 새콤달콤한 맛 뒤에 오는 혀끝을 톡톡 쏘는 매콤한 맛이다. 게다가 비빔국수를 먹으며 동그란 파가 동동 떠다니는 진한 멸치 다싯물을 떠먹는 그 맛도 아주 깔끔하면서도 개운하다.

"그동안 전국 곳곳의 유명하다는 국수집은 다 뒤지고 다녔어요. 그때 국수와 관련된 자료도 많이 구했고, 저만의 노하우를 쌓으며 국수의 달인이 되려고 엄청 노력했지요. 그렇게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결국 국수의 제 맛을 내는 것은 다싯물이라는 것을 깨치게 되었지요."

그동안 맥도날드 등 음식과 관련된 회사에서 오래 일을 하다 요즈음은 조용히 국수를 삶으며 살고 있다는 흥부국수 주인 조규필(40)씨. 조씨는 "국수는 쫄깃하면서도 미끄럼을 타듯이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가는 그 맛이 일품"이라며, 비빔국수는 집에서 담근 고추장에 여러 가지 과일과 채소를 채 썰어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얹어야 제 맛이 난다고 말한다.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국수를 삶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조씨. 조씨는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흥부국수 한 그릇 후룩룩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으면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개운해지면서 기분까지 좋아진다"고 말할 때가 가장 뿌듯하고 즐겁다고 한다.

a 예로부터 국수는 수명장수와 액운을 막는 음식으로 사용되었다

예로부터 국수는 수명장수와 액운을 막는 음식으로 사용되었다 ⓒ 이종찬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국수, 하면 참으로 먹는 머슴 음식쯤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같은 때는 손님이 거의 없어요. 그런 특별한 날에 국수 같은 헐값의 음식을 어찌 먹을 수 있느냐는 거죠.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수명장수를 상징하고 액을 막아준다는 우리 고유의 음식인 국수를 더 많이 먹었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1.서울-경부고속도로-부산, 마산 나들목-김해-김해시외버스터미널-흥동 불교문화원-흥부국수(055-339-9414)

덧붙이는 글 ☞1.서울-경부고속도로-부산, 마산 나들목-김해-김해시외버스터미널-흥동 불교문화원-흥부국수(055-339-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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