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인사 원칙과 실제는 '그때 그때 달라요'

[取중眞담] 공기업 '낙하산 인사' 논란

등록 2005.06.23 16:55수정 2005.06.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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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11시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2층에서는 난데없이 '낙하산 인사' 논쟁이 벌어졌다.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이 이날 몇몇 조간신문에서 문제삼은 '낙하산 인사' 보도를 계기로 기자 간담회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김 수석은 먼저 "지금 우리 정부에는 낙하산 인사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수석은 또 "늘 언론에서 낙하산 인사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마 20, 30년 동안 권위주의 체제에서 인사가 밀실에서 이루어졌을 때 횡행했던 단어라고 본다"면서 "지금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소위 낙하산 식의 인사는 있을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 수석은 이어 "과거 정부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전제하고 전 정부와 수치를 비교해서 그보다 적다는 자료를 내왔는데 우리 정부는 다르다"며 "도대체 무엇을 두고 낙하산 인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공기업 인사는 '정부 인사'이지 민간기업 인사가 아니다?

낙하산 인사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김수석이 제기한 논리는 '정부 인사' 논리이다. 언론에서 문제 삼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 인사는 대통령이나 각 부처 장관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정부 인사'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기업 인사가 아닌 '정부 인사'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논리다.

공기업 및 산하기관 인사는 곧 '정부 인사'라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김 수석이 제시한 논거는 이렇다.

"원래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단체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정부 예산을 들여 위임하거나 위탁해서 처리하는 곳이다. 또 국민이 낸 혈세를 가지고 정부 안에서 처리할 일을 융통성 있게 수익사업도 해볼 수 있고 공공 서비스를 더 잘할 수 있는 체제로 만들려다 보니까 공기업이 생겨나고 소위 정부의 업무를 위탁·위임받은 정부 산하단체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안의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을 소위 반관반민 단체에 넘겨주기도 하고, 51% 이상 정부가 지분투자를 해서 운영을 하는 공기업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도 이게 정부 인사가 아니겠나."


김 수석은 이어 "그런데 왜 낙하산이라고 하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김 수석은 "이것은 소위 구시대적인 고정관념, 선입견이다"고 자문 자답했다. 즉 공기업이나 산하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부사장, 사장이 되면 '낙하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오면 '낙하산'이라고 하는데 소위 관료 출신, 정치인, 민간 CEO를 다 '외부'로 보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은 엽관제가 정착된 나라여서 대통령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3500개의 자리가 바뀐다. 우리는 미국처럼 하루아침에 3500개를 전부 물갈이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때 정당·정치권에서 잘 훈련된 사람을 재배치해서 활용하는 것이 정부 인사가 아니겠나.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에서 간 인사를 낙하산으로 치부하는 것은 인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거나 과거 밀실인사 행태에 대한 고정관념 탓이 아닌가 싶다."

공기업 인사의 세 가지 강조 기준과 네 가지 고려 요소

김 수석은 또한 정부 산하단체나 공기업 인사에 대해서는 ▲공공성과 공익성 ▲효율성과 수익성 ▲개혁성과 적응성의 세 가지 강조 기준으로 기관을 분류해 인사를 한다고 밝히고 각각의 유형에 맞는 인선 기준을 이렇게 얘기했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강조할 때는 대국민 서비스 측면이 강하기에 관리형 기관장이 적임이다. 효율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공기업이라면 민간기관과 경쟁해야 하므로 전문성이 강조되는 인사가 제격이다. 반면에 개혁성이 강조되는 기관은, 예를 들어 조직이 흐트러진 몇 개의 산하단체에는 외부에서 정치력과 결단력 그리고 조직 장악력이 있는 인사를 배치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기관을 분류해서 전제를 해두고 인선을 해오고 있다."

김 수석은 이어 공기업의 기관장이나 감사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통합적인 관리능력 ▲도덕성 ▲전문성 ▲참신성이라는 네 가지 고려 요소를 순차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오늘 아침에 모 신문이 공모절차는 구색 맞추기다, 이미 공모절차가 이행되기 전에 인선해야 할 대상이 확정되었다, 인사추천회의는 요식행위이다, 대통령께 단수로 추천됐다고 썼는데 모두가 사실이 아니다"면서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엄중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식으로 오보대응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일부 기자는 "공기업 인사 기준으로 공공성, 수익성, 개혁성의 세 가지를 강조하는데 사후적으로 설명을 하니 꿰어맞추는 듯한 인상이 있다"면서 "차제에 어떤 기업이 공공성이 강한 기업인지, 또 어떤 때는 수익성에 치중을 하는 것인지 공기업의 특성을 분명하게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수석은 아까와는 달리 "어떤 기관이 원래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지금 현재 처해 있는 여러 가지 여건에 비추어서 개혁성이나 공공성에 역점을 두고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수익을 추구하는 기관일망정 개혁성이나 공익성이 강점으로 보이는 사람을 인선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것은 공공성이 강한 기관이다, 이것은 수익성이 강한 기관이다, 이것은 개혁성이 강한 기관이다, 이렇게 분류를 해놓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한 마디로 말해, 해당 기관에 대한 ▲공공성과 공익성 ▲효율성과 수익성 ▲개혁성과 적응성의 세 가지 강조 기준과, 해당 인사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능력 ▲도덕성 ▲전문성 ▲참신성의 네 가지 고려 요소를 가지고 인선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실제 적용은 '그때 그때 달라요'라는 얘기다.

'낙하산 인사' 비판여론은 '공모꾼'들의 불평불만 탓?

이어 구체적으로 논란이 된 ▲이철 철도공사 사장 내정자 ▲이해성 조폐공사 사장 내정자 ▲한이헌 기술신용보증 이사장 내정자 3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앞에 언급하신 세 분은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도 있지만, 또한 세 분이 다 공교롭게도 노 대통령하고 같은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분들이다. 그래서 이 분들이 발탁된 데에 대해서 일종의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 수석은 이에 대해 "공모제를 통해서 분명히 심사를 받고 평가·검증을 받아서 인선이 되었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다"면서 "그렇지만 '배려 케이스'라고 한다하더라도 이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인사수석으로서 인식이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정당정치이고 정당정치의 요체는 책임정치라는 논리다.

"그래서 과거에 정치권에서 당을 같이 했다거나 선거에 나갔다가 패배를 한 분들에 대해서 능력이 있고 또 그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또 우리 정부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발탁해서 쓰는 것이 소위 정당정치요, 책임정치의 근간이 되는 것 아니냐. 적절한 사람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배치됐다고 하면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서 능력 있고 품성이나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배려'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 아닌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은 아니고, 김완기 인사수석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무리가 없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늘 설명하신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이해성 전 홍보수석의 경우 ▲통합적인 관리능력 ▲도덕성 ▲전문성 ▲참신성의 네 가지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되는지 궁금하다. 혹시 매일 청와대 안에서 청와대에 있는 분들끼리만 토론을 하니까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이런 논리가 나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김 수석은 한이헌 기술신보 이사장에 대해 노조에서 영입 환영성명을 낸 점과 이철 철도공사 사장에 대해서도 내부의 평이 좋다는 점을 들어 적극 옹호했다. 그러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공기업 사장 공모가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 응모하고 다니는 '공모꾼'들의 불평불만 탓으로 돌렸다.

방송사 경제부 기자 출신의 이해성 조폐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해서는 "조폐공사에 근무를 안했다는 것 뿐이지 경제 분야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정치를 했다가 다시 자기의 적성에 맞는 기관으로 배치되는 것을 '낙하산이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면서 "청와대에 있었다가 나가면 모든 공적 활동을 접어버리고 자영업이나 하거나 아니면 등산이나 하면서 놀아야 한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과연 국민 일반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이해성 조폐공사 사장 내정자 본인조차도 '낙하산 인사'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하산 인사' 발언이 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김 수석의 발언이 자영업자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일화나 미담을 후일담 형식으로 쓰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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