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냐 마을 어느 집 벽 장식.김남희
걷기 시작한 지 네 시간 만에 작은 마을에서 섰다.
무릎 통증이 너무 심해져 한 발을 떼는 것도 힘들어졌다. 덜컥 겁이 난다. 작년에 네팔에서 무거운 배낭 메고 트레킹하면서 오른쪽 무릎이 조금씩 아프곤 했는데, 이렇게 심각하게 아파보긴 처음이다. 여기서 중단하고 파리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되고, 속이 상한다.
이탈리아에서 온 소냐와 마리안느의 도움으로 알약을 얻어 복용했다. 약이라면 질색을 하는 내가 마다않고 알약을 삼키는 걸 보니 아프긴 많이 아픈가보다. 까를로스는 나 때문에 계속 멈추거나 쉬면서 느린 행군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 팜플로냐까지 가기는 틀린 것 같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출발한 사람들 중에 꼴찌다.
"우리 오늘 꼴찌야."
"그게 마음에 걸려?"
"아니."
"나도 아니야. 그럼 됐네. 계속 천천히 걷자."
고마운 까를로스.
2시. 아따라비아(Atarrabia) 마을.
이곳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까를로스는 '순례자용 음식(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순례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의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이 많다)'을 내놓는 식당들이 점점 상업화되어가고 맛도 없어진다면서 더 이상 그런 식당에 가기 싫다고 한다.
우리가 마을에서 찾아낸 이 식당은 메뉴도 없고, 그날 그날 주방장이 두세 가지 요리를 준비하는 전형적인 마을 식당이다.
샐러드와 생선찜, 아이스크림으로 이어지는 세트 메뉴는 양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게다가 와인 한 병까지 같이 나온 두 사람의 식사비가 우리 돈 2만원. 아침에 과일도 까를로스가 사고, 인터넷 비용도 그가 냈고, 오늘 하루 종일 나 때문에 고생하는 처지라 점심은 내가 샀다.
2시를 넘긴 오후의 해는 살인적인 열기를 내뿜고 있다. 왜 이 시간에 가게와 식당들이 문을 닫고 '시에스타(낮잠)'를 하는지 이해가 간다. 더위에 지친 까를로스와 나도 강가로 가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발을 물에 담그고 쉬었다. 서늘한 물의 기운이 땀과 열에 젖은 내 발에 감겨온다.
4시가 넘은 시간에야 절룩거리며 팜플로냐에 들어섰다.
매년 7월 초에 열리는 소와의 달리기 경주로 유명한 마을. 이곳의 알베르게는 거대했다.
짐 풀고, 씻자마자 침대에 누워 두 시간쯤 쉬었다.
햇살이 한풀 꺾인 7시가 넘어서 까를로스와 광장으로 나갔다. 팜플로냐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하다는 카페 이루나. 노천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오징어 튀김과 또르티야로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