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앞을 지나가는 순례자. 오후의 햇살에 지쳐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다. 에스테야김남희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건네는 미소와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친절.
내가 이 길에서 얻고 가는 최고의 것이 될 것 같다. 이 길에는 진정 신의 마음을 닮은(창세기에 나오는 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는 구절은 그 외모보다는 내면, 신의 영혼을 닮음을 의미하는 걸 거라는 오강남 교수의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걷고 있다.
식당에서 처음으로 같은 피부색깔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프랑스인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 중인 중국인 따하이, 자전거로 혼자 여행하는 일본인 에이지, 프랑스에서부터 이미 800킬로미터를 걸어온 일본인 아줌마 미치코.
우린 다들 처음 만나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반갑다. 게다가 따하이는 내 짐을 일부 들어주겠다는 제안까지 해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더워졌다.
위 침대의 마리아.
스웨덴에서 온 스물여덟 살 간호사.
부모는 핀란드인, 자기는 스웨덴사람인데 일은 노르웨이에서 하고 있단다.
사람들이 내게 보이는 궁금증을 그녀 역시 그대로 드러내며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니?”
“한국.”
“산티아고 걸으려고 온 거야?”
“응.”
“산티아고는 어떻게 알았어?”
“프랑스인 책을 읽고서.”
“대단하다. 끝까지 걸을 거야?”
“응. 무릎이 허락하는 한.”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들려주는 미국인 아줌마 레베카 이야기.
너무 재밌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배낭을 메고 다니는 그녀. 그 가방 안에는 엄청난 두께의 매트리스, 추석 선물세트크기의 화장품 가방, 병원을 차리고도 남을 구급약통, 일주일 내내 다른 옷으로 파티에 갈 수 있을 만큼의 의상 등등.
배낭 속 내용물의 압권은 다름 아닌 커다란 땅콩버터 한 병. 마리아는 그 배낭의 내용물이 너무나 재미있어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사진까지 찍었단다. 나 역시 그 사진을 들여다보니 웃음이 절로난다.
“전형적인 미국인이야. 겁 많고, 뭐든지 다 갖춰지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그 미국인 아줌마는 피레네 산맥을 넘던 첫날,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며 배낭 속의 물건을 하나씩 꺼내 집어 던졌단다. 마침내 앰뷸런스가 출동, 그녀의 내던져진 짐을 도로 배낭 속에 쑤셔 넣고, 그녀를 태우고 마을로 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