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한국말 잘 해요?"

외국인이주노동자 섭외 부탁하는 기자들을 보며

등록 2005.09.03 12:06수정 2005.09.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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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 TV의 ***기자입니다. 사실은 단속을 피하다 사고 났다는 인도네시아 분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네, 그러세요. 말씀하십시오.”


오늘 아침 출입국 단속을 피해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를 절단할 위기에 처한 인도네시아인 토니에 관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면서 모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전화를 해 왔던 기자는 이것저것 사고 경위와 병원진료 등에 묻더군요. 그런데 전화 말미에 “토니씨를 인터뷰 하려고 하는데, 우리말을 잘하나요?”라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갑자기 난감해졌습니다. 토니와 우리말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저는, 그가 우리말을 어느 정도 하는지 알 까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토니의 절친한 친구인 마르비의 경우, (한국에 온 지 삼년이 넘었지만) 현재 저랑 한글공부를 하고 있으나 우리말이 어눌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니 역시 비슷할 것이라 막연히 추측할 따름이었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자 사역을 하면서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언론사로부터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이주노동자와의 인터뷰를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한 부탁을 받고 적당하겠다 싶은 사람을 추천해 주고 나면 “그 사람 한국말 해요?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나요?”라는 질문을 꼭 받게 됩니다.

한국에 장기체류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기자는 물론이고, 방금 왔거나 온 지 일 년 이내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다고 했던 기자들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통역을 통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갓 입국한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유창한 우리말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뿐만 아니라, 왜곡된 정보를 얻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도 상당수의 기자들은 ‘온 지 얼마 안됐다는데 한국말 참 잘 하네요’라는 말을 덧붙이거나, ‘본국에서는 엘리트였다’는 식의 미사여구를 덧붙이고 싶어서인지 몰라도 유창한 한국어 구사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저는 '기자들이 방송국 콘티 갖고 기사 쓰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 하기 전에 미리 기사를 쓰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가령, 작년 수원에서 경기도 주관으로 이주노동자를 위한 큰 행사가 있었을 때, 한 방글라데시인이 한국에 온 지 1년 밖에 안 됐다고 자신을 소개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은 한국에서 10년 넘게 장기체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사 의도는 이해하지만, 장기체류한 사람의 입을 빌어 신규 입국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양 한 것은 옳지 않다고 해당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 아무런 답장이 없더군요.

저 같은 경우 주 관심 분야가 외국인이주노동자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자세로 그들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기사를 쓰기 때문에, 어떤 선을 긋고 쓴다는 점에 있어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 사람 한국말 잘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내심 ‘또 그 질문인가?’라는 투덜거림과 함께, 기사를 씀에 있어 사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자세로 접근하는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각오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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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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