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이주노동자쉼터가 붐비지 않을까

나날이 늘어나는 이주노동자들의 도움 요청

등록 2005.09.10 15:24수정 2005.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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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동체 회의중

공동체 회의중 ⓒ 고기복

요즘 우리 쉼터 방 안을 보고 있자면 무슨 난민촌 창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직장을 잃고 잠시 쉼터로 들어 온 베트남 친구들의 짐이 방을 거의 점령하다시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들의 짐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간은 좁은데 짐이 많다 보니, 아무리 정리를 하라고 해도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가을이 되면서 밤에 침구가 모자라 한기를 느끼는지 벌써부터 밤새 보일러를 틀어 아침에 출근하면 후끈합니다. 이래저래 쉼터 공간 배치나 운영에 힘이 부치는데, 아침부터 강원도에서는 지난번 근무처 변경을 했던 수찝또가, 김포에서는 솔낀이라는 사람이 회사에서 맞았다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습니다.

수찝또는 원래 근무처 변경을 경기 광주로 했는데 업체 측에서 임의로 강원도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면서 반장이라는 사람이 쌍욕과 구타를 일삼는다고 했습니다. 한편 솔낀은 한국 사람에게 맞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 당장 쉼터를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쉼터 공간도 공간이고,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여 가까운 이주노동자지원센터를 찾아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솔낀은 막무가내로 찾아오겠답니다. 인도네시아를 떠날 때 친구인 로니가 한국에 가서 문제가 생길 때 찾아 가라고 적어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니는 지금도 연락을 종종해 오는 사람입니다.

자초지종을 확인해 보고자 솔낀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문제가 어떻게 된 건지 물었습니다. 처음 전화를 받았던 사람은 "직원들 간에 장난하다 그런 것 같고 무슨 요란이냐"며 시비 걸듯 전화를 끊었습니다. 결국 솔낀에게 "일단 회사에 말하고 쉼터로 거처를 옮기라"고 전해 줬습니다.


a 쉼터 풍경

쉼터 풍경 ⓒ 고기복

a 쉼터에서

쉼터에서 ⓒ 고기복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점잖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솔낀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사장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지금 사정을 들었습니다. 방에 와 보니 솔낀이 울고 있는데 용인으로 간다고 말하는군요. 회사 직원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솔낀이 일도 잘하고 정이 들어서 계속 데리고 있고 싶은데, 우리 회사에서는 마음이 떠난 모양입니다. 그래도 기숙사에 있다가 월요일에 회사를 옮기면 되니까, 그때까지 회사에 있어도 된다고 전해 주십시오."


솔낀에게 사장의 말을 전해 줬지만 여전히 울고 있던 그는 "지금 짐을 싸서 갈게요"라고 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쉼터라 해서 달리 편한 잠자리를 제공할 형편이 못되지만, 마음은 편하겠거니 생각하고 오는 방법을 설명한 후 "그럼 조심해서 와라"고 전하고 착찹한 심정으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창 밖을 보니 한국 사람에게는 시원할지 모르지만,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벌써 차갑게 느껴질 가을 바람이 성나게 불고 있었습니다. 붐비는 쉼터를 보며 난민촌 같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늘 놀이터 같다는 생각이 들 날이 언제일지 기대하는 건 까마득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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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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