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도청', 씻김굿 좀 하자

[김종배 뉴스가이드] 정·경·언 유착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등록 2005.09.27 08:59수정 2005.09.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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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 관계자는 26일 "10여일 전 (국정원) 전직 직원 일부에 대해 가택수색을 했고, 그 과정에서 녹음 테이프를 압수한 것이 있다"고 밝혔다.

'안기부·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 관계자는 26일 "10여일 전 (국정원) 전직 직원 일부에 대해 가택수색을 했고, 그 과정에서 녹음 테이프를 압수한 것이 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던 도청 파문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번엔 국민의 정부 국정원의 도청이 문제가 되고 있다. 도청 테이프 한 개가 발견됐고,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직전 폭로한 도청 문건도 국정원의 것과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정도면 원귀라 할 만 하다. 자고 나면 사건이 펑펑 터지는 한국사회에서 두 달이 넘도록 주요 이슈로 자리하고 있으니 씻김굿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정·경·언 유착의 진실 밝히는 수사는 성역?

언론이 내놓은 '진혼'의 해법은 원칙적이다. <한겨레>는 "전직 국정원장들은 '합법적 감청과 도청은 구분해야 한다'며 도청 사실을 완강히 부인해 왔으나 이런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였던 셈"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김대중 전 대통령측의 반발을 무마하기에 바빴던 "현 정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동아일보>는 비판했다. 맞다. 그래서 <경향신문>은 "도청 수사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나 원칙적인 지적이기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안아야 할 텐데도 오히려 숨이 턱 막힌다. '성역'이 아직도 굳건하게 벽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사건의 본질은 국가정보기관에 의한 도청의 진상을 규명하고, 아울러 도청 테이프에 담긴 정·경·언 유착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질의 한 축인 "도청 테이프에 담긴 정·경·언 유착의 진실을 밝히는" 수사는 게걸음조차 내딛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으로 시선을 돌려보지만 반응이 없다. 한나라당이 마련한 특검법안 내용 중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 부분에 대해 같은 당 박근혜 대표가 '위헌 소지'를 운위한 기억만 짙게 남아 있다. 특검법이든 특별법이든 집중 논의해야 할 국회 법사위는 엉뚱하게도 '술집 욕설 파문'에 휘말려 있다.


그렇다고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조선일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마리'가 잡혔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도청 내용 공개하던 한나라당, 테이프 공개는 위헌이라고?


하나. 한나라당이 말하는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의 당위성.

박근혜 대표는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는 위헌일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논리는 한나라당 스스로 일찌감치 부정한 바 있다. 이 사실이 이번 국민의 정부 도청사건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2002년 9월 국정감사장에서, 같은 당 김영일 당시 사무총장은 같은 해 11월에 기자회견장에서 각각 국정원 도청 기록이라면서 30여개의 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그 문건엔 정치인·기업인·언론인 등의 대화내용이 들어 있었고, 그 내용은 고스란히 언론에 보도됐다.

당시엔 그것이 국정원 도청기록인지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흐지부지됐지만 이번 검찰 조사로 진실이 확인됐다. 국정원 감청에 참여했던 직원 20여명이 검찰에 나와 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 일부가 국정원 도청기록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뭘 뜻하는가? 한나라당이 스스로 도청 내용을 공개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스스로 금기의 벽을 허문 만큼 도청 테이프 공개의 장애물은 없어졌다.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은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를 주장해왔으니까 이제 한나라당이 답해야 한다. 도청 테이프 내용을 공개해야 하는가?

곳곳에 묻은 유착·불법의 단서...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둘. 도청 테이프가 말하는 내용 공개의 필요성.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는 말은 하지 말자. 국민이 알고자 하는 건 사생활이 아니다. 그건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공개해야 하는 것은 정·경·언 유착의 실상이다. <경향신문>의 말대로 "(정·경·언 유착의)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다시는 같은 불법들이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청 테이프 공개는 필수 전제조건이다.

'유착'과 '불법'의 단서는 많다. 2002년에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 기록을 보면 대선 후보 지원 등에 대한 막후 대화와 교섭의 일단이 드러나 있다.

그 뿐인가. 검찰이 이번에 입수한 국정원 도청 테이프는 "2002년 3월 정권 핵심인사와 모 방송사 사장이 특정 대선주자 지원 여부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조선일보>의 보도다. 진위 여부는 좀 더 가려봐야겠지만 <조선일보>의 이 보도가 맞다면 대화내용의 부적절성은 안기부 X파일에 버금가는 것이다.

아울러 한나라당이 공개한 도청기록 문건에도 정권실세와 모방송사 사장의 2002년 3월 대화내용이 기재돼 있는데 대화내용도 여권 대선후보 지원에 관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보도와 도청기록 문건이 동일한 내용인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경·언 유착의 흔적이 여러 곳에 묻어있다는 것이다.

그 끈끈한 '공동체 의식'에 유착 근절 의지만 담는다면...

상황이 이렇다면 차제에 도청 테이프 내용 전부를 공개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정·경·언 유착과 관련된 내용에 관해서만큼은 한 점 숨김없이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공개 주체가 검찰이어서 '임의 발췌'가 우려된다면 방법은 달리 찾을 수 있다.

국회에 계류중인 특검법이나 특별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대구 술집에서 보여줬던 그 끈끈한 '공동체 의식'에 정·경·언 유착 근절의 실천 의지만 담는다면 못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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