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걷다가 사망한 순례자의 무덤. 지나가던 순례자들이 남겨놓고 간 메모와 사진, 꽃들. 나도 어느 마을에서 수녀님께 받았던 목걸이를 풀어 그곳에 남기고 왔다.김남희
800km를 걸어오는 동안 나는 내내 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그 익숙하면서 생경한 감정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저 홀로 커가고, 깊어가는 걸 나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했다. 그리움이 간절해지는 만큼 내 안에 상처로 남아 있던 한 얼굴이 흐릿해져가는 것도 보았다.
카미노는 내게 답을 줄까?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길의 끝에 서면, 내가 이토록 그리워한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원하는 걸까? 달려가서 내게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어쩌면 꼭 그가 아니어도 되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단지 배낭을 내려놓고 싶은 건 아닐까. 어딘가에 정착해서,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낳아 키우며 늙어가는 삶. 난 그걸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길을 걷는 내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카미노가 주기를 기대했다. 산티아고까지의 남은 거리를 말해주는 표지판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길의 끝이 다가올수록, 나는 되돌아가고만 싶어졌다. 나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할 수가 없는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는데, 이렇게 끝이 다가오다니… 울고만 싶어지던 날들이었다.
쉐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카미노가 내게 답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다만 외면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우리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거나, 혹은 답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일 뿐.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길도, 어느 누구도, 신조차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기에 귀 기울여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는 것 뿐.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토록 망설이고 불안해했던 건 내가 간절히 원하지 않기 때문인 것을, 아직은 배낭을 내려놓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을. 그렇다면 계속 내 길을 가는 것만 남은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은 어느새 맑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