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난청·난시 심각하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악의적인 농민 해외시위 보도

등록 2005.11.23 10:48수정 2005.11.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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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앙>은 23일자 1면 톱기사로 농민들의 해외원정 시위 기사를 다루면서, 합법적으로 시위를 하겠다는 농민들의 설명을 거의 묵살하다시피 하는 등 악의적 논조로 일관했다.

<중앙>은 23일자 1면 톱기사로 농민들의 해외원정 시위 기사를 다루면서, 합법적으로 시위를 하겠다는 농민들의 설명을 거의 묵살하다시피 하는 등 악의적 논조로 일관했다.

이쯤 되면 <중앙일보>는 난청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듣기' 능력에 심각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물 건너 홍콩에서 소식이 날아왔다. 부산 에이펙 정상회의 때 비행기 타고 출장 와 농민 시위를 조사한 홍콩 경무처(경찰청)의 알프레드 마 홍보국장이 어제 현지 주재 한국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국 농민의 원정 폭력시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한국이 알아서 잘 단속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이 말을 <중앙일보>는 '대문'에 걸었다. 1면 톱으로 관련 사실을 전하면서 "비상" 상황임을 강조했고, 홍콩에서 불법시위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도표까지 곁들여 자세히 소개했다.

물론 <중앙일보>가 홍콩 경찰의 말만 들은 건 아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김황경산 정책부장의 말도 전하긴 했다. "현지에서는 평화적·합법적 시위를 하겠다"는 말이었다. 홍콩 경찰의 '우려'를 해소해주는 말이었지만 <중앙일보>는 한 줄 걸치는 것으로 처리했다.

<중앙일보>는 이어서 농민에게 독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해외 원정 가는 데모 종주국이 됐나"라고 따지면서 홍콩 경찰의 말을 받아 한국 농민의 원정 폭력시위를 기정사실화 했다.

나름대로 근거도 댔다. ▲부산 에이펙 정상회의 때 농민들이 쇠파이프와 죽봉을 휘두르며 폭력 시위를 한 점 ▲2년 전 멕시코 칸쿤 세계무역기구 회의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할복자살하고 이에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뚫으면서 대규모 충돌이 빚어진 점이 그것이었다.

자신들이 제시한 근거에 대해 나름대로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곧장 준엄하게 꾸짖고 나섰다. "농민 단체들은 왜 해외에서 폭력 시위의 상징으로 낙인 찍혔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농촌이 잘 살기는 잘 사는 모양'이라며 빈정대기까지

<중앙일보>의 이 같은 단정엔 불신이 깔려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 시위를 하겠다는 전농의 약속은 '빈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엔 빈정대고 나섰다. 농촌 경제가 어렵다고 국내에서 과격 시위를 하는 농민 단체들이 "이제는 비행기표 끊어가며 원정시위까지 한다면 역설적으로 '농촌이 잘 살기는 잘 사는 모양'이라는 지적에 무엇이라 답변할지 궁금하다"라고 배배 꼬았다.

농민 단체가 후원장터를 운영하고 공동 텃밭에서 경작된 농산물을 팔아 모은 돈으로 홍콩 원정비를 조달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같은 회사 기자가 전하기까지 했는데도 아예 귀를 닫아버렸다.

<중앙일보>의 '선택적 청취'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력과 청력 간에는 높은 상관성이 있다고 한다. 잘 보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앓고 있는 증세는 바로 그것이다.

<중앙일보>의 시력엔 분명 문제가 있다. 단면만 볼 뿐 과정은 볼 줄 모른다. 행위의 결과만 보지 그 원인은 살피지 않는다.

농민들이 왜 야적시위를 하다 말고 부산으로 달려갔는지, 고 이경해씨가 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고인의 자결에 왜 동료 농민들이 격분했는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봐야 하는 것들을 <중앙일보>는 보지 않았다.

굳이 마음의 눈을 거론할 이유도 없다. 미 시애틀에서 시작된 반세계화 시위가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는 육체의 눈만으로도 얼마든지 관찰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보지 않았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프랑스 이주 노동자들이 차량을 불태우고 투석전을 벌일 때 <중앙일보> 스스로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이조차도 별개의 사안으로 치부했다.

매사엔 근본 원인이 있는 법이다. <중앙일보>의 엉뚱한 입놀림은 난청에서 비롯됐고, 난청은 다시 난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찾아가야 할 병원은 이비인후과가 아니라 안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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