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기'구도까지 대통령이 짜나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유시민 입각은 '준비'된 사안이라고?

등록 2006.01.09 10:05수정 2006.01.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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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대통령 연설기획비서관의 바람은 스러졌다. “더 이상 소모적인 정치적 논란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지만 언론은 일제히 정치적 논란을 보도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의 차기구도에 깊숙이 개입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윤 비서관은 어제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국정일기’에서 유시민 의원의 입각은 “(준비하는)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예정하고 준비해온 사안”이라고 했다. 2004년 7월 정동영 김근태 장관을 입각시킬 당시 노 대통령은 당의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를 이끌고 갈 지도자의 재목으로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의원 등을 주목하면서 장차 이들을 입각시켜 국정경험을 풍부하게 쌓도록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유시민 의원의 입각은 이처럼 “준비하는 대통령”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니까 소모적인 정치논란은 거둬달라는 바람을 밝혔다.

윤 비서관의 글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유시민 의원 입각은 최근의 정치상황을 고려한 임기응변이 아니고, 따라서 거기에 특정한 정치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과잉해석을 삼가 달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럴까? 윤 비서관의 바람과는 달리 언론은 노 대통령이 유시민 카드를 통해 차기 구도 관리에 나서려 한다고 ‘과잉해석’하고 있다. “노심본색”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내놓을(경향신문) 정도다.

논외로 하자. 모든 언론이 일제히 짚은 내용을 이 자리서 거듭 짚는 건 사족일 수 있다. ‘차기구도 관리’의 방향이 뭔지는 해석차가 있을 수 있지만 이 또한 생략하자.

하나만 짚자. 일단 윤 비서관이 글에서 밝힌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럼 윤 비서관이 밝힌 노 대통령의 “준비”는 정당한 것일까?

윤 비서관은 유시민 의원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몇 가지를 들었다. “당내 선거를 통해 원내대표나 상임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정치에서 일정한 여론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란 점이다. 그것 외에도 전문성과 대중성을 들었다.

주목할 점은 첫 번째 기준이다. 윤 비서관은, 일정한 여론을 반영하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췄다는 평가는 유시민 의원에 한정해 제시한 반면 정세균 천정배 의원까지 아우르는 기준으로 “당내 선출”을 들었다.

이 기준은 객관성을 담보하는 중요 항목이다. 노 대통령이 사심 없이, 중립적으로, 가능성 있는 인물의 정치적 성장을 돕기 위해 장관에 기용해온 것이라면 거기엔 합당하고도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당내 선출‘ 여부는 이에 부응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맞지 않는다. “준비하는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과 함께 정세균 천정배 의원 등의 입각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4년 7월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때에 유시민 의원이나 정세균 의원 모두 “당내 선거를 통해 원내대표나 상임중앙위원으로 선출”된 바가 없다.

그래서 갸웃거리게 된다. 윤 비서관 스스로 제시한 기준과 당시 상황이 맞지 않는다. 최근의 일을 과거에 끼워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범위를 좀 넓히자. 유시민 의원에게 적용했다는 다른 기준들은 어떤가? “일정한 여론을 반영”하고 대중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2004년 7월 시점에 맞춰 정세균 천정배 의원에 대입해도 어깃장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두 의원은 ‘차기’는 고사하고 ‘차차기’ 후보로 언론이나 여론에 의해 이름이 오르내린 적도, 그래서 대중성 평가를 받은 적도 없다.

그럼 전문성은? 윤 비서관은 유시민 의원의 전문성을 재는 척도로 “보건복지위 활동”을 들었지만 이 기준이라면 유독 유시민 의원일 이유도, 정세균 천정배 의원일 이유도 없다.

이리 봐도 그렇고 저리 봐도 그렇다. 윤 비서관의 글에서 ‘노심’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찾아낼 단서는 없다. 오히려 의혹만 키운다. 노 대통령이 특정 인물, 즉 유시민 의원을 차기 주자로 키우기 위해 입각 카드를 활용했다는 의혹 말이다. 정세균 천정배 의원을 유시민 의원과 같은 반열에 놓은 이유는 그저 유시민 의원에 대한 ‘노심’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 말이다.

아니라고 해도 좋다. ‘노심’이 정말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의원 모두에 가 있다고 해도 좋다. 이들에 대한 ‘노심’이 ‘차기’가 아니라 ‘차차기’여도 좋다. 노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 ‘차기’ 또는 ‘차차기’ 구도를 본인이 직접 짜려 하는가?

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당정분리를 외쳐왔다. 당 운영은 당 스스로 해결하라는 게 당정분리의 핵심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과거의 당 총재처럼 당 운영을 좌지우지하지 않을 것이란 다짐도 했었다.

노 대통령이 이 원칙과 다짐을 지키고자 한다면 ‘차기’나 ‘차차기’ 구도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합당한가? 가장 쉽게 도출할 수 있는 실천지침은 엄정중립이다.

하지만 지금 가고자 하는 방향은 정반대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차기’ 또는 ‘차차기’를 운위하며 특정 정치인의 입각을 감행하고 있다. 스스로 불공정 경쟁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럼 정동영 김근태 장관의 입각 전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이렇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엄정중립이었다. 당시로서는 두 사람 외에 차기 주자로 자천타천 거명되는 인물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두 사람을 동시 입각시켰다. 최소한 치우치지는 않았다.

또 하나의 반론은 이것이다. 2.18전당대회 이후로 예정된 2차 개각에서 다른 ‘차기’ 또는 ‘차차기’ 주자를 입각시키면 되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거명되는 ‘차기’, 특히 ‘차차기’ 주자는 많다. 열린우리당 내 재선의원 상당수가 자천타천으로 40대 기수로 운위되고 있다. 그럼 형평성을 기하기 위해 이들 모두를 입각시킬 것인가? 정부의 본래 기능이 ‘권력창출 학원’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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