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쌍둥이 화산체'를 거칠다고 했던가?

[제주의 오름기행 ⑧]말(馬)도 쉬어가는 거친오름

등록 2006.02.27 17:51수정 2006.02.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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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거친오름 남쪽의 모습입니다.

거친오름 남쪽의 모습입니다. ⓒ 김강임

제주의 오름은 쉽사리 길을 내주지 않는다.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어느 보리밭 사이 길을 걷노라니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루-루-루-, 호루-루-루-. 오름 길라잡이 오 선생님은 잠시 흩어져 있는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앞서간 이는 걸음은 늦추고, 뒤로 처진 이는 잰걸음으로 달려온다.


일행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걸어보는 일, 단체라는 소속감에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오 선생님은 삼나무 숲이 우거진 오름을 가르키며 "저 오름이 바로 거친오름이지요!"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그리고 또다시 호루라기를 불어대더니 거친오름으로 향한다.

a 오름에 묻히는 죽은자의 무덤,  인간과 자연의 하나됨이지요.

오름에 묻히는 죽은자의 무덤, 인간과 자연의 하나됨이지요. ⓒ 김강임

누가 말했던가? 제주의 오름은 쉽사리 길을 내주지 않는다고. 보리밭 사이길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거친오름으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가 않았다. 지난 가을 차곡차곡 쌓였던 낙엽이 무덤을 이루었는가 하면, 머리를 풀어헤친 가시넝쿨이 길섶을 가로막았으니 이를 두고 '오름은 길은 내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뒤돌아 볼 여유도 없이 거친 등성이를 지나자 오름 중턱에는 죽은 자들이 말없이 묻혀 있었다.

a '제주오름은 길을 내주지 않는다'더니 등산로가 없어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

'제주오름은 길을 내주지 않는다'더니 등산로가 없어 가시밭길을 택했습니다. ⓒ 김강임

오름은 탐사라고 하더니 '가지 않는 길'을 헤치며 오른 것 또한 흥미롭다. 새것에 대한 도전이랄까? 사람이 새로운 길을 만드는 작업이랄까? 아무튼 잘 다져진 등산로는 아니지만, 때로는 억새 무리 숲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때로는 시든 가을 열매를 툭-하니 따서 머리에 꽂기도 하고, 때로는 가시에 찔려 보는 아픔을 겪기도 하며 '보물찾기행진'을 시도할 때 내 육신이 살아 숨쉰다는 것을 깨닫는다.

a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보니... 희열감이 생깁니다.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보니... 희열감이 생깁니다. ⓒ 김강임

쌍둥이 굼부리를 걸어보는 희열감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산 84-2번지, 그리고 덕천리 산 1번지. 마치 쌍둥이 같은 화산체를 한 거친오름 그 분화구는 아직 겨울이 한창이다. 고요 속에 잠들어 있는 북쪽의 야트막한 말굽형굼부리를 한바퀴 돌아본다. 뒤엉킨 가시넝쿨을 뚫고 갈색 목초지는 밟고 말굽형굼부리를 돌아보는 기분, 그 평온함은 길을 떠나 온 자만이 느끼는 희열이다.

오름은 언제, 누구와 함께 오르는가에 따라 그 감회가 다르다. 특히 오름의 왕국인 송당리 거친오름 능선에서 보는 풍경은 선과 선으로 연하여 병풍을 두른 듯한 오름천국이라 할까. 거친오름 분화구에서 또 다른 오름을 검색해 보는 작업이 쉼 없이 이어진다.


a 낙엽이 무덤을 이루고 새우란이 봄을 준비합니다.

낙엽이 무덤을 이루고 새우란이 봄을 준비합니다. ⓒ 김강임

그러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시넝쿨 사이에 지난해 자태를 뽐냈던 새우란이 기상을 하듯 푸른 이파리를 자랑한다. 제주 오름의 생태계는 어느 곳에 가나 꿈틀거림의 역동감이 있다. 죽은 듯한 땅 속에서 푸름이 솟아나니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반면 남쪽의 오름 분화구는 원추형 모습으로 2개의 화산체가 마치 쌍둥이처럼 붙어있었다. 그 두 개의 쌍둥이 화산체를 넘나드는 오름기행의 묘미를 즐기는 우리는 마치 바람 난 봄처녀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a 거친오름 북쪽 능선에서 바라 본 송당리의 풍경입니다.

거친오름 북쪽 능선에서 바라 본 송당리의 풍경입니다. ⓒ 김강임

누가 이 '쌍둥이 화산체'를 거칠다고 했던가?


표고 354.6m, 비고 70m, 둘레 1777m, 저경 578m. 오름의 생김새가 거칠게 보인다고 해서 거친오름이라 했음은 오산이다. 그 이유는 쌍둥이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보면 알 것이다. 부드럽다 못해 온유한, 그래서 마음이 훈훈해지는 느낌. 두 개의 분화구를 넘나드는 스릴도 맛볼 수 있다.

a 거친오름 북쪽 삼나무 숲은 정적이 흐릅니다.

거친오름 북쪽 삼나무 숲은 정적이 흐릅니다. ⓒ 김강임

아니면 예전에 선비들이 걸었던 발자취 때문인가? 제주목에서 정의현을 왕래할 때 꼭 거친 오름 기슭을 거쳐 지나갔다는 흔적 때문인가? 그것이 아니면 거친오름 북쪽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나무 숲에서 맛보는 고요함 때문인가? 하산 길은 삼나무 숲이 우거진 북쪽 사면을 택했다. 대낮인데도 한밤중인 것 같은 착각. 삼나무 숲에 서 있으니 길 잃은 이방인처럼 세상이 낯설어진다.

a 언 땅에서 봄내음이 피어납니다.

언 땅에서 봄내음이 피어납니다. ⓒ 김강임

산 너머 남쪽 오름에는 봄이 왔을까?

그러나 거친오름 기슭에서 발견한 봄 냄새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나! 이거! 달래 아냐?”

거친오름 굼부리에서 봄을 갈구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거친오름 중턱 검은 땅속에서는 가녀린 달래 이파리가 봄 냄새를 풍긴다.

a 겨울에서 해방하고 싶은 마음일까요?

겨울에서 해방하고 싶은 마음일까요? ⓒ 김강임

산 너머 알선족이 오름과 웃선족이 오름, 거문새미 오름과, 칡오름, 민오름에는 봄이 찾아 왔을까? 철조망을 뚫고 하산에는 우리들의 마음은 기나긴 겨울에서 해방하고 싶은 욕망이 봄나물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어느새 산 너머 남쪽 오름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쌍둥이 화산체를 가진 거친오름

▲ 억새와 삼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거친오름

거친오름은 체오름 남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오름으로, 오름 사면이 체오름과 나란히 연이어 있다. 거친오름은 그 모양세가 거칠다고 하여 거친오름이라 한다.

거친오름 한자명은 거친악(巨親岳), 거체악(巨體岳), 황악(荒岳) 등으로 표기하며, 표고 355m, 비고 70m로 원형과 말굽형 굼부리로 복합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오름의 남쪽은 원추형이고 북쪽은 둥굴고 넓적한 원형 화구로 둘레가 450m 정도며, 두 봉우리가 허리를 맞대어 서로 바라보는 모양으로 남북쪽으로 갈라진 형태다.

거친오름 북쪽은 삼나무, 소나무, 서어나무 등이 숲을 이루며, 남사면에는 대부분 초지대로 억새, 목초지 등이 있어 말을 방목하기도 한다. 더욱이 거친오름 북쪽사면에는 ' 말쉬는못'이 있으며, 옛날에는 이곳에서 말(馬)에게 물을 먹이고 쉬어가는 쉼터였다고 한다.

거친오름 지질구조는 선흘리 현무암질 안산암이며 하부에 선흘리 현무암이 분포한다. 암질은 흑회색으로 미반상구조인 용암류사이에 크링커 층이 발달되지 않고 용암류내부 상승에 따른 용암튜브구조를 이루었다. 분석구는 흑갈색의 각력상이며 화산분출시 회전운동으로 타원의 모양을 형성해 사장석 조면구조에 감람석 반정을 갖는다 / 김강임

덧붙이는 글 | ☞ 거친오름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동부관광도로- 대천동 사거리(좌회전)- 체오름 남서쪽에 있다. 제주시에서 거친오름까지는 40분정도가 소요된다. 또한 거친오름을 오르내리는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쌍둥이 화산체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지난 2월 15일 다녀온 오름탐사기행문 입니다.

덧붙이는 글 ☞ 거친오름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동부관광도로- 대천동 사거리(좌회전)- 체오름 남서쪽에 있다. 제주시에서 거친오름까지는 40분정도가 소요된다. 또한 거친오름을 오르내리는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쌍둥이 화산체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지난 2월 15일 다녀온 오름탐사기행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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