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뚱구리' 된장국 먹어야 봄이 온다네~

<음식사냥 맛사냥 68> 향긋한 봄내음 풍기는 구수한 고향의 맛 '봄동된장국'

등록 2006.03.16 17:59수정 2006.03.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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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향긋하고 구수한 배뚱구리(봄동) 된장국 먹고 봄맞이 하세요

향긋하고 구수한 배뚱구리(봄동) 된장국 먹고 봄맞이 하세요 ⓒ 이종찬

온몸의 피로 싹 가시게 하는 향긋한 봄나물

해마다 이맘때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바구니마다 가득 가득 담긴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봄나물은 지난 겨우 내내 살얼음 낀 들녘의 흙 속에 꼭꼭 움츠려 있다가 마침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아직은 춥게만 느껴지는 봄햇살을 아지랑이처럼 마구 흔들며 연초록빛 싹을 쑤욱쑥 밀어올리는 봄의 전령사다.


봄을 대표하는 나물로는 쑥과 냉이, 달롱개(달래), 씀바퀴, 봄동 등이다. 이러한 봄나물들은 도심의 삭막한 아파트에 갇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연공부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파릇파릇 싱싱한 봄나물로 된장국을 끓이거나 젓갈과 식초, 고춧가루, 참기름 등으로 버무려 '무침'을 만들면 온 집안이 봄향기로 가득 찬다.

따로 봄 나들이를 나가지 않아도, 집안에서 향긋한 봄나물로 여러 가지 밑반찬만 만들어 먹어도 온몸에서 봄향기가 절로 폴폴 나게 된다는 그 말이다. 또한 온몸이 물이 되어버린 듯 흐물흐물거리는 나른한 아침, 봄나물로 끓인 향긋한 된장국이나 새콤달콤 씁쓰레한 봄나물 무침을 먹으면 온몸의 피로가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 중 배추와 비슷하게 생긴 봄동은 쑥이나 달롱개처럼 그저 들녘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밭에서 키우는 채소이다. 배추보다 잎이 두텁고 잎사귀가 떡 벌어져 있는 봄동은 늦가을에 씨를 뿌린다. 그리고 싹이 터서 어느 정도 자라면 지푸라기로 덮어 땡겨울을 나게 하는 배추다. 그래서 그런지 봄동은 김장용 배추보다 훨씬 향긋하고 달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a 봄을 맞아 봄동이 노오란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봄을 맞아 봄동이 노오란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 이종찬


a 싱싱한 봄동을 깨끗한 물에 씻는다

싱싱한 봄동을 깨끗한 물에 씻는다 ⓒ 이종찬

"입도 심심한 데 배뚱구리나 캐 묵으로 가자"

"야, 인자 소죽도 퍼 주었고, 별 할 일도 없다 아이가. 입도 심심한 데, 저어기 마당뫼 밭뙈기에 있는 배뚱구리나 캐 묵으로 가자."
"주인한테 들키모 우짤라꼬?"
"괘않타. 올(오늘)은 그 밭뙈기 주인이 이웃마을 잔칫집에 갔다 아이가. 아까 이야기로 들어본께네 저녁 늦게 돌아온다 카더라."


내가 어릴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지난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텃밭에서 자라는 봄동을 '배뚱구리' 혹은 '배똥구리'라 불렀다. 또한 그 '배뚱구리'는 겨우 내내 우리 마을 어머니들이나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먹거리였다. 배뚱구리가 김장김치와 물김치, 시레기국만 덜렁 놓인 밥상 위에 새로운 입맛을 더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마을 어머니들은 땡겨울 햇살이 좀 따뜻하다 싶으면 바구니를 들고 텃밭에 나가 지푸라기에 덮힌 봄동을 캐서 새콤달콤한 나물을 무치고 향긋한 된장국을 끓였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자치기나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가까운 텃밭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배뚱구리의 뿌리를 캐내 마른 잔디에 쓰윽쓱 닦아 한 입 가득 깨물곤 했다.

마을 어머니들은 주로 배뚱구리의 연초록빛 잎사귀를 캤지만 나와 동무들은 배뚱구리의 뿌리를 캤다. 배뚱구리의 뿌리는 열무김치의 뿌리처럼 매우 통통하게 살이 찐데다 씹으면 씹을수록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단물이 흘러나와 맛이 참 좋았다. 한 가지 재미난 일은 마을 어머니들이 봄동을 망친 주범들이 우리들이란 걸 알면서도 그저 산돼지가 그랬거니 하고 눈 감아 주었다는 것이다.


a 뜨거운 물에 데쳐낸 봄동을 찬물에 담궜다가 손으로 꼬옥 짠다

뜨거운 물에 데쳐낸 봄동을 찬물에 담궜다가 손으로 꼬옥 짠다 ⓒ 이종찬


a 멸치 맛국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데쳐놓은 봄동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멸치 맛국물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데쳐놓은 봄동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 이종찬

봄동은 멸치 맛국물에 된장을 넣어 끓여내야 제맛

'얼갈이'라고 불리는 봄나물의 대명사 봄동은 김장배추처럼 비타민A와 C가 풍부하고, 식이섬유소가 많이 들어 있어 장에 아주 좋은 음식이다. 게다가 알칼리성 식품인 봄동에는 칼슘과 칼륨, 단백질 등 무기질이 많이 들어 있어 나른한 봄철 춘곤증에도 그만이며, 웬만큼 많이 먹어도 살 찔 염려조차도 없다.

봄동은 배추처럼 김치나 겉절이를 해먹기도 하고, 나물을 무쳐먹기도 한다. 또한 금방 캐낸 봄동을 깨끗한 물에 씻어 갈치속젓이나 쌈장에 싸먹어도 향긋하고 고소하다. 하지만 봄동은 그 무엇보다도 국물멸치를 오래 우려낸 맛국물에 된장과 고추장 등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구수한 된장국을 끓여먹는 게 가장 맛이 뛰어나다.

봄꽃처럼 향긋하고, 고향의 사투리처럼 구수하면서도 쓰린 속을 한꺼번에 싸악 씻어내려주는 봄동된장국. 봄동된장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텃밭에서 금방 캔 싱싱한 봄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미리 우려낸 멸치 맛국물과 된장, 고추장, 집간장, 빻은 마늘, 송송 썬 양파와 대파, 매운고추, 다시마 가루를 준비하면 된다(입맛에 따라 북어포나 바지락을 조금 넣어도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맛을 낼 수 있다).

먼저 싱싱한 봄동을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은 뒤 팔팔 끓는 뜨거운 물에 담궈 데친다. 그 다음, 풀이 죽은 봄동을 꺼내 찬 물에 담궜다가 손으로 꼬옥 짜서 물기를 뺀다. 이어 냄비에 된장과 고추장을 3:1로 풀고, 봄동을 넣은 뒤 멸치 맛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센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냄비에서 김이 폴폴 피어오르면 미리 준비한 마늘과 양파, 대파, 매운고추, 다시마 가루를 넣은 뒤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

a 양파, 대파, 매운고추는 송송송 썰고, 마늘은 다진다

양파, 대파, 매운고추는 송송송 썰고, 마늘은 다진다 ⓒ 이종찬


a 맛깔스럽게 잘 끓여낸 봄동된장국

맛깔스럽게 잘 끓여낸 봄동된장국 ⓒ 이종찬

봄동된장국을 먹어야 봄이 온다?

"아빠! 이게 어디서 나는 냄새야?"
"우리집 부엌에서 나는 냄새지."
"뭔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
"봄동된장국이야. 아빠 어릴 때는 이걸 먹어야 봄이 온다고 했지."
"아빠! 그럼, 그걸 먹지 않으면 봄이 오지 않는 거야?"
"봄이 와도 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그 말이야."


지난 13일(월) 저녁 6시.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지난 10일(금) 사무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원 토월중앙시장 들머리에서 천 원을 주고 산 그 봄동이 떠올랐다. 옳커니 싶어 서둘러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비닐봉지 안에는 그때 산 봄동이 여전히 파릇파릇한 몸매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왜냐구? 얼마전 TV 에서 냉장고에 채소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그렇게 입김을 불어넣어 보관했다. 그때 TV에서는 채소를 넣은 비닐봉지에 든 공기를 모두 빼내고 비닐봉지를 가볍게 묶은 뒤 입김(이산화탄소)을 불어넣으면 채소를 오랫동안 파릇파릇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 나는 향긋한 봄내음을 풍기는 싱싱한 봄동을 꺼내 휘파람을 불어가며 봄동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향긋하고 구수한 내음이 풍기는 봄동된장국의 간을 맞추기 위해 국자에 국물을 조금 떠서 맛을 보고 있는데, 어느새 큰딸 푸름이와 작은 딸 빛나가 쪼르르 달려와 '아빠, 나도' 하기에 두 딸에게도 골고루 맛을 보여줬다. 순간, 두 딸의 얼굴에 어느새 봄꽃처럼 환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a 봄동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피로가 싸악 사라진다

봄동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면 피로가 싸악 사라진다 ⓒ 이종찬


a 잘 익은 김장김치를 올려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잘 익은 김장김치를 올려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 이종찬

"맛이 어때?"
"아빠! 오늘 저녁은 이 국에 밥 말아먹을래. 좀 있다 국하고 밥 많이 줘?"
"아빠! 나도."
"그러다 살만 디룩디룩 찌면 어떡할려고?"
"아까 아빠가 봄동은 피부미용과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했잖아?"


봄을 맞아 온몸이 솜에 물 탄 듯 무겁고 나른하다? 툭, 하면 졸음이 쏟아져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자꾸만 끄덕여진다? 이럴 때는 가까운 재래시장이나 할인마트, 백화점 등에 나가 파릇파릇한 봄동을 사서 향긋하고 구수한 봄동된장국을 끓여보자. 시원하고 깔끔한 맛의 봄동된장국 속에 춘곤증이 민들레 홀씨처럼 훨훨 날아가리라.

a 갈치속젓에 쌈을 싸먹는 맛도 별미 중의 별미다

갈치속젓에 쌈을 싸먹는 맛도 별미 중의 별미다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U포터 뉴스',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U포터 뉴스', '시골아이 고향' 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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