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가득 들어 봐, 연두빛 아름다움을

이슬기의 25현 가야금 연주음반 <연둣빛 찻집에서>(In the Green Cafe)

등록 2006.04.02 09:46수정 2006.04.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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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슬기의 25현 가야금 연주음반 표지

이슬기의 25현 가야금 연주음반 표지 ⓒ 신나라

봄 강가를 거닐어 보셨습니까
용혜원

겨우내 움츠렸던 봄 강물이
살짝 발을 내민 듯한
하얀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아십니까


강변의 연초록 색감이
눈에 번지고
엷게 푸르른 봄 하늘이
가슴에 가득해집니다


봄은 그렇게 우리 곁에 왔다. 얼어붙어 꼼짝 못할 것 같았던 대지는 이제 환한 세상으로 바뀐다. 매화가 지더니 어느새 진달래, 개나리, 산수유가 온 산을 점령하고 이에 더하여 연두빛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이 새봄에 봄을 그린 한 풋풋한 음반이 선보였다.

바로 가야금 연주가 이슬기가 싱그러운 연둣빛을 가슴에 안겨주는 크로스오버 음반 <연둣빛 찻집에서(In the Green Cafe)>가 그것이다. 이 음반은 신나라(회장 김기순)을 통해 세상에 나왔는데 가야금으로 이지리스닝(easylistening: 뉴에이지풍의 편안한 음악), 재즈, 펑키 등 다양한 장르들의 음악을 연주하여 대중과 세계를 겨냥해 새롭게 시도한 크로스오버 앨범이다.

나는 처음 이 음반의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봄 속에서 나비가 노니는 상상을 했다. 20대의 싱싱한 여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던가? '봄을 기다리는, 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봄날의 따스한 햇볕과 아기 손처럼 보드라운 봄바람을 가득 담았다'고 설명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가야금이나 재즈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 음반은 가야금이나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가도록 안내하고 있다. 연주자 이슬기는 국내외에서의 많은 연주 경험과 다양한 크로스오버 시도들을 바탕으로 이번 앨범에서 다른 장르와의 결합 속에서도 가야금 본래의 음색과 농현(弄絃)의 멋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a 이슬기가 연주하는 25현 가야금

이슬기가 연주하는 25현 가야금 ⓒ 신나라

특히 이 음반에는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과 영화 <실미도> <올드보이> 등의 영화음악, <여름향기> <봄의 왈츠> 등의 드라마 음악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이지수가 작업에 함께 참여해 음악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대중적 친밀감도 더해주고 있다.

다만, 이 음반에서 아쉬움을 지적한다면, 일부의 곡에선 가야금이 아닌 하프를 연상할 수 있는 선율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한 배려라 하더라도 가야금 본래의 맛은 살아 있어야 한다. 또 어떤 곡들은 가야금을 받쳐 주는 플루트와 현악기, 전자기타 등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어 가야금 독주 음반에 흠이 생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젊음 연주자 이슬기의 색깔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녀의 풋풋한 연둣빛 내음이 음악을 듣는 사람의 가슴 속에 그득히 안겨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음반과 함께 모든 이의 가슴 속에 봄이 활짝 피어나기를 그녀는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이 음반의 첫곡은 피아노와 함께하는 <햇살 아래서>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투명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낀다. 그 햇살 아래서 25현 가야금과 피아노가 맑고 상쾌한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또 다른 햇살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포근하게 스며들 것이다. 햇살 아래 모든 것이 따뜻해지면 그 온기를 온 세상에 전하고 싶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이어서 첼로와 함께하는 < In the green garden >,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어울린 < Still, I like >,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슈벨트의 세레나데>, 이슬기가 노래하고 피아노, 타악기, 신디사이저가 함께 한 <도라지>,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의 < Green Tees >와 < Grace >, 이슬기가 노래하고, 피아노, 전자기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같이 한 < Here is love music >, 전자기타, 베이스기타, 드럼의 < Happiness > 따위가 들어있다.

연주자 이슬기는 국악고등학교, 서울대 국악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방송 국악관현악단의 단원이다. 이슬기는 고등학생 시절 98년 전주 대사습놀이 고등부 기악부 장원, 전국 가야금 경연대회 대상 등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01년에는 국립국악원 주최의 전국 국악경연대회 일반부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환한 수상경력 외에도 두 번의 독주회를 비롯한 많은 국내 연주와 다양한 크로스오버 시도의 경험을 쌓아왔으며 미국, 일본, 스웨덴, 덴마크, 러시아 등의 해외 연주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또 이슬기는 2005년, 산조와 풍류를 담은 <현의 노래>를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a 가야금과 함께 사진을 찍은 이슬기

가야금과 함께 사진을 찍은 이슬기 ⓒ 신나라

이번 음반에 들어있는 곡을 중심으로 한 이슬기 가야금 연주회 '연둣빛 찻집에서(In the green cafe)'가 오는 4월 15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에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다.

25줄 가야금과 현악 사중주가 만나 빚어내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 here is love>, < still I like >, 곽윤찬 재즈 트리오와 함께 하는 < Green Tees >, < Grace >, 노래와 가야금 E. Piano, 퍼커션 등으로 새롭게 편곡된 <도라지> 등 연둣빛 음악들이 연주되는 색깔이 있는, 최초의 가야금 크로스오버 무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슬기에 대해 한국방송 제1에프엠 김은정 프로듀서는 "이 시대를 걸어가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날아가려는 젊은 연주자의 꿈이 담긴 가야금 소리, 연초록 풀잎처럼 아직은 여리지만 풋풋한 생명력을 가진 연주자 이슬기에 의해 새로운 25현 가야금음악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그녀가 지닌 색다른 빛깔의 가야금을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 곡 < Happiness >의 설명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행복은 우리의 곁에 늘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곡을 들으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모두가 기분 좋은 행복감에 젖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슬기의 기원일 것이다.

"넉넉함을 표현하는 연주자 되고 싶어"
[대담] 25현 가야금 연주 음반을 낸 이슬기

▲ 대담을 하는 연주자 이슬기
ⓒ김영조
- 어떻게 가야금을 배우게 되었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가야금을 연주하시는 것을 자연스럽게 듣고 커왔다. 태교음악으로 가야금 소리를 들었고, 장난감도 가야금과 장구 모형이었다. 그러니 가야금의 연주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국악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문재숙의 딸이란 것 때문에 남보다 더 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척 힘이 들었다. 사실 그때는 문재숙의 딸이라는 게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재숙의 딸이라는 게 너무나 고맙다. 그것이야말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였을 것이다. 이제는 가야금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하고, 삶을 마칠 때까지 문재숙의 딸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아니 어머니의 그늘로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다."

이슬기양이 말하는 어머니 문재숙(53)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슬기양의 두 동생도 같이 국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배려가 뒷받침되었다고 말한다.

- 국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직 어린 나이에 뭐라 정의하긴 이르지만 감히 말한다면 한국음악은 '넉넉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넓이가 아주 넓어서 농현도 폭이 넓다. 시김새도 무수한 음을 가지고 있는데 다 풀고, 누군가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 그런 음악이 아닐까? 나도 앞으로 그렇게 넉넉한 표현의 음악을 하고 싶다."

- 크로스오버 음악이 요즘 한국적인 철학이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슬기양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국악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서도록 하기 위해 크로스오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음반을 내는 데 3년이 걸렸다. 소름이 쫙 끼치게 하고, 조였다 풀고 하는 전통적 기법을 제대로 표현하면서 어떻게 현대적인 연주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결국은 '가지고 가고 싶은 가치들을 가지고 가되 대중에게 조금만 더 다가서자'라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 음반을 보면 젊은이들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가야금을 위한 음반이 너무 서구적, 현대적으로 흐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플루트 등 서양악기가 가야금의 소리를 오히려 조금은 해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선, 젊은이들이 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린(green)을 생각했고, 카페를 염두에 뒀지만 결과적으로 조금은 넘쳤을 수도 있다. 그리고 녹음해주시는 분들이 전체적인 조화를 꾀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런 악기들을 두드러지게 했을 수도 있다. 충분히 받을 지적이라 생각하고 다음 음반에서는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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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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