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403회

등록 2006.04.05 08:29수정 2006.04.0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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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당시 진행되던 남옥 장군의 숙청을 위해 균대위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후에 그들은 즉시 황제를 시해할 작정이었다.

“그런 놈이 이 아이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을 했나? 죽음이 두려워 도망간 네놈들 입에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당시는 시기가 좋지 않았소.”

허나 동조하는 인물들이 너무 적었다. 모두 울분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충성을 바쳐왔던 대명을 무너뜨리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단지 복수심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거사를 벌이면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시기...? 그래서 네 놈들이 한 짓이 무어지? 우리는 세상을 뒤집을 수 있었어.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지. 허지만 네놈들은 도망쳤고, 또 다른 놈들은 무능하게 숨죽이고 숨어들었어. 비겁한 작자들.....”

“결국 선배를 비롯한 검저유혼도 실패하지 않았소?”

“실패....? 그래 실패했지. 바로 우리가 믿었던 누군가가 우리들 열세 명을 밀고하는 바람에 말이야.”


모두 열세 명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머리를 풀고 수염을 모두 깍은 후에 스스로 검저유혼(劍底遊魂)이라 불렀다. 그리고 비록 소수였지만 준비했던 대로 주원장을 시해하고자 움직였다. 허나 정작 그들은 주원장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누군가 사전에 밀고를 했음에 분명했다. 일년 간 쫓긴 끝에 그들 중 아홉 명이 죽었다.

그나마 화권금장(火拳金掌) 악조량(岳操梁), 마형귀(馬荊鬼) 두광(斗廣), 그리고 뇌흔도(雷痕刀) 운보(橒甫)의 노력 덕에 그들은 영원히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는 이가장의 지하에 숨어들었다. 아마 네 사람의 목숨에 대한 대가로 악조량과 두광, 운보 등을 비롯해 남아있는 균대위의 인물들은 어쩔 수 없이 비원에 매인 몸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대 균대위의 인물들이 자조하며, 냉소를 흘리며 말한 ‘방관(傍觀)’이란 의미는 이것이었다. 나서지 못한 자책감과 비굴함.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신검산장에서 두광을 마굿간으로 몰고, 운보를 소, 돼지나 잡는 백정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비굴함에 대한 자학이었다.

“게다가 네놈들은 비겁하게 도망치듯 균대위를 떠난 것도 부족해 이제 와서는 앞장서서 균대위에 칼을 들이대?”

“그렇다면 명 황실의 주구로 전락한 저들을 그냥 두고 보라는 것이오? 우리는 이제 명을 뒤엎으려는 것이오. 간악한 주씨의 명을 끊으려는 것이오.”

“지금에 와서....? 그 당시에는 죽음이 두려워 아니라고 반대하며 말리던 네 놈들이....? 정작 죽여야 할 주원장이 땅에 묻혀 썩기 시작한지 십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정말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지.”

문득 뒤에 서있던 노인이 냉소를 치며 말했다. 머리를 곱게 빗어 묶은 뒤 뒤로 넘긴 노인이었는데 그냥 뒤로 늘어뜨리고 있어 거의 허리에 닿을 정도로 백발이 긴 노인이었다. 무곡이 한걸음 나섰다.

“네놈들을 그냥 둔다면 아마 죽어간 우리의 동료들이 지하에서 통곡을 할 것이다.”

무곡의 눈썹이 양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그의 가는 눈에서 살광이 줄기줄기 뻗쳤다. 이런 자들에게 조차 기습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균대위에 대한 실망과 칼을 거꾸로 세운 현천과 같은 자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이가장 안으로 들어온 자들은 모두 죽이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는지도 몰랐다.

현천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곡은 일단 손을 쓰면 용서란 것이 없다. 그가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상대를 지금까지 살려둔 적이 없다. 그는 동료들의 원성을 살 정도로 잔혹하고 가차가 없었다.

“아마 무곡 선배가 살아계심을 알았다면 진작 찾아뵈었을 것이요. 그리고 상의 드렸을 것이오.”

“뭘 말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어차피 주원장의 아들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고, 이후로도 주씨가 지배할 것이오. 지금이야말로 우리와 함께 무곡 선배가 그리도 갈망하던 주씨 일가를 몰아낼 호기(好期)이자 적기란 말이오.”

무곡의 눈썹이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그의 입에서 폭갈이 터졌다.

“일고의 가치도 없고, 더 이상 숨 쉴 필요도 없는 놈.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나? 무엇을 위해 이 짓을 하는 거지? 우리 검저유혼이 원했던 것은 주원장의 목줄이었지 대명이나 주씨 황실이 아니었단 말이다. 이 버러지 같은 놈아....!”

더 이상 듣고 있을 가치가 없었다. 말과 함께 무곡은 갑자기 현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움직이자 마치 광풍이 부는 듯 주위는 세찬 바람이 몰아였다. 현천의 옆에 서 있던 사십대 후반의 흑의인 두 명이 황급히 검을 뽑아 출수했다.

쐐애액----! 스--- 읏----

두 자루의 검날은 언뜻 무방비로 달려드는 무곡의 상단과 중단을 갈라놓을 듯 파고들었다. 쾌속했을 뿐 아니라 변화도 현란하여 절정검수다웠다. 달려들던 무곡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리 위협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흑의인들의 검초식은 그가 알고 있거나 예상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제법이군....!”

무곡은 냉소를 쳤다. 동시에 그는 그저 휘두르듯 양팔을 휘저었는데. 두 개의 검날은 마치 자석에 쇠가 달라붙듯 그의 양 소매 쪽으로 말려들었고 그 힘에 못 이겨 비칠거리며 딸려 온 두 흑의인의 복부에 무곡의 오른발이 연달아 박혔다.

“조심....물러나라....!”

급히 현천이 외쳤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무곡의 발은 너무나 빨라서 마치 두 흑의인의 복부에 동시에 꽂힌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바로 흑의인들을 허공에 떠올려 삼장 밖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으악----! 왝---!”

입에서 터져 나온 두 줄기 선혈이 선명하게 호선을 긋고 있었다. 철퍼덕하며 땅에 큰 대자로 누워버린 그들의 입에서는 여전히 피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는데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다. 즉사였다. 과거 무곡이 보인 잔혹함은 여전했다.

“...........!”

현천은 머리가 곤두서는 듯 했다. 무곡은 변하지 않았다. 동료들조차 경원할 정도의 가공할 무위 뿐 아니라 손속의 잔혹함이나 추호도 인정 없는 깨끗한 솜씨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죽은 인물들은 천동의 검법을 익힌 자들이었다. 천동의 오행기 중 흑룡기(黑龍旗) 소속의 고수 중 상위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단 일수에 죽인 가공할 무위는 여전했다. 흑룡기를 맡고 있는 흑룡기주(黑龍旗主)인 자신이라도 두 명을 완벽히 제압하려면 백초정도는 능히 걸릴 터였다.

현천은 다시금 무곡의 두려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실감했다. 허나 그는 더 이상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앞으로 한발자국씩 다가드는 무곡이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그와 함께 뒤에 서있던 머리 긴 백발노인이 주위를 보며 장난치듯 말했다.

“이제 우리도 슬슬 사냥을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노인들 역시 개양대 출신이었고, 과거 살귀(殺鬼)라고 불리던 적이 있었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곳 이가장의 풍운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가장이 시산혈해로 변해버린 것은 청의인 둘이 죽은 이후로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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