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향력 별로 없거든요"
'1등 신문' 조선·동아의 진솔한 고백?

[取중眞담] '신문법 위헌소송' 관전기... '민족지' 자부심은 한껏 부각

등록 2006.04.06 22:34수정 2006.04.0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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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6일 '신문법 및 언론피해구제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에는 취재진과 방청객 등 120여명이 몰려 이번 사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6일 '신문법 및 언론피해구제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에는 취재진과 방청객 등 120여명이 몰려 이번 사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신문 구독자의 대부분은 소수그룹으로 전락한 나이 많은 세대이고, 이런 상황에서 신문이 독점됐다한들 그 영향력은 클 수 없다."

6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신문법 및 언론피해구제법 위헌소송'. 청구인 <조선일보> 대리인으로 나선 박용상 변호사의 입에서 제법 이례적인 고백(?)이 흘러나왔다.

"여론시장 전반을 놓고 볼 때 신문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고 있는 한편 방송의 영향력과 인터넷 매체 등 신규 미디어의 영향력은 점증하고 있다."

그는 신문 구독자의 대부분은 소수그룹인 나이 많은 세대라며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변론을 폈다.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신문을 보지 않아 옛날과 같은 '위세'를 떨치기는 어렵다는게 변론 요지다.

왜 <조선일보>의 대리인이 스스로 '영향력 없음'을 인정하고 나선 것일까. 박 변호사의 말은 "3개 신문이 신문시장의 60% 이상 점유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개정 신문법 17조의 위헌성을 지적하면서 나왔다.

신문법 17조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신문시장 독과점이 여론을 왜곡시켜온 탓에 만들어진 것. <조선일보>는 이 조항이 "과도한 규제"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면서도 한껏 몸을 낮추는 전략을 썼다.

신문의 영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데, 그 시장에서 독과점을 해봐야 무슨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감성에 호소하는 하소연인 셈이다. "신문은 소수그룹으로 전락한 나이 많은 세대만 본다"는 말도 이 때문에 나왔다.


또 다른 청구인 <동아일보>의 자세도 마찬가지. <동아일보> 대리인인 이영모 변호사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먹이며 '영향력 감소'를 입증하려 애썼다.

이 변호사는 "2004년을 기준으로 TV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사람은 63.6%인데 신문은 11.2%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은 155분이나 되는데 반해 신문 보는 시간은 34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또 방송과 신문의 '광고물량'까지 비교해가며 신문이 우리 사회의 힘없는 존재라고 호소했다.


영향력이 형편없이 줄어든 민족지?

a 신문법의 위헌성과 불합리함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조선>(1월 23일자)과 <동아>(4월 6일자)의 사설.

신문법의 위헌성과 불합리함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조선>(1월 23일자)과 <동아>(4월 6일자)의 사설.

이날 위헌소송에 참석한 사람들은 신문업계 1, 2등을 다투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서로 '신문의 영향력'을 깎아내리는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신문은 '1등 신문'의 자존심을 정말 버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일제 강점기부터 명맥을 이어온 두 신문이 법정에 설 때면 어김없이 내세우는 '민족지'로서의 자부심은 이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이영모 변호사는 이날 변론에 앞서 "동아일보라는 이름 자체가 자유, 독립, 언론의 자유이자 상징"이라며 예의 역사를 들먹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신문발행 허가를 받은 동아일보는 일제하에서 민족과 함께 해온 민족지"라며 "해방 이후에도 언론계의 일방적 풍조인 진보적 좌파언론과 분명한 선을 그으며 민족지로서 소명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신문법 위헌소송을 제기한 두 청구인(조선, 동아)의 주장을 종합하면 과거 찬란했던 민족지의 영향력은 형편없이 줄어든 셈이다. 따라서 굳이 정부가 나서 독과점을 규제할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일제강점기와 독재 치하에서 민족을 이끌어 왔다는 두 신문이 그 '자부심'마저 깎아내리며 규제 완화를 호소하는 모습은 썩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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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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