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고스톱? 장렬한 퇴장?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레임덕 논란 부른 노 대통령의 '사학법' 수읽기

등록 2006.05.01 10:34수정 2006.05.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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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조찬회동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조찬회동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확인되는 게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갈등이 던져주는 힌트다. 두 가지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진심으로 안정적 국정운영을 원한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에 사학법 양보를 권고하면서 "부동산마저 흔들릴 수 없다"는 절박감을 토로한 걸 보면 안다.

'내일'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한다면 정국주도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간다. 게다가 6월에 국회가 하반기 원 구성을 하게 된다. 최소한 5월과 6월을 허송세월해야 할 판이다.

둘째, 노 대통령은 안정적 국정운영을 원하지만 조건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력은 여당의 지원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당의 지지율은 극히 낮다. 게다가 종종 청와대와 각을 세워왔다. 이번에도 대통령의 간곡한 권유를 딱 잘랐다.

노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학법도 있지만 한·미 FTA도 있고 양극화해소도 있다. 집권 하반기 주요 국정과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당의 강력한 지원을 기대할 상황이 못 된다면 거리를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의 사학법 권고 장면 중에서 풀리지 않던 대목 하나가 해소된다. 왜 공개리에 양보를 권고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노 대통령의 권고는 여당을 향한 것이었다. 메시지가 이것이었다면 굳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까지 청와대로 부를 필요가 없었다. 여당 지도부와 직접 소통하는 게 메시지 전달력이나 압박의 효과 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공개 석상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딱지 맞는 걸 자청했다.


경우의 수 #1 '짜고 치는 고스톱'

일부 언론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의심한다. 노 대통령이 양보를 권유하면 열린우리당이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당의 개혁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이를 지방선거 표로 연결한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반론이 있다.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뒤통수를 쳤다고 보도했다. 사학법 문제가 풀리지 않자 노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로 '작전'을 짰고,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에 회동을 했지만 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야당이 아니라 여당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은 보도이기에 신중을 기해 읽을 필요가 있다.

이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였다 해서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이런 판단은 열린우리당의 저조한 지지율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정책행보에 따라 언제든지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야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학법은 '집토끼'마저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소산이지 '산토끼'를 잡기 위한 진군이 아니다.

달리 봐야 한다. 징검다리는 '레임덕'이다. 상당수 언론이 노 대통령의 레임덕을 전망했다. 사학법 권고를 계기로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더욱 가속화하고 결국 탈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인 분석이다. 사학법 권고라는 새 요소가 추가됐을 뿐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돼 온 분석이다.

조금만 틀어보자. 대다수가 전망한 것처럼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한다면 불똥이 청와대로 튈 것은 자명하다. 가만히 앉아 기다려도 당·청간의 끈은 느슨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끊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노 대통령은 사학법 양보를 권고해 화를 자초한 걸까?

이 질문은 제2차 질문으로 이어진다. 노 대통령이 탈당을 할 경우 그 탈당의 성격은 뭔가?

레임덕 이후의 탈당 시나리오가 뜻하는 건 '마지못한 탈당'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좀 다르다. 밀려서 탈당하는 게 아니라 자청해서 탈당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공세에 못 이겨 탈당하는 모습을 띠더라도 성격이 좀 다르다. 열린우리당의 공세거리를 자진해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 #2 '계산된 탈당'

a 청와대 대통령 관저 인수문 앞을 걸어나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들은 인수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인수문 앞을 걸어나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들은 인수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그래서 '계산된 탈당'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관심사는 '계산'의 함수다. 노 대통령이 탈당 후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다.

한 때 유력하게 점쳐졌던 시나리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능성이 약화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꿈꾼다면 열린우리당의 분화를 촉발해야 한다. 당에 논란과 갈등거리를 던져주되 양론 모두 일정하게 정당성을 갖는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니다. 사학법 권고만 놓고 보자.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의원들 중에는 이른바 친노 직계로 불리는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노사모 대표 또한 사학법 재개정은 안 된다고 일찌감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열린우리당이 너나 할 것 없이 사학법 양보 불가를 천명한 이유는 자명하다. 한 의원의 말대로 "집토끼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실상은 이렇다.

이런 상황은 또 하나의 부정 근거를 낳는다. 노 대통령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꿈꾼다면 개혁 여론을 거스를 수 없다. 오히려 여론을 타면서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명분을 축적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그래서 탈당 후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점치는 건 쉽지 않다. 그럼 뭘까?

경우의 수 #3 '장렬한 퇴장'

배제할 수 없는 '계산'이 하나 더 있다. '장렬한 퇴장'이다. 가정해 보자.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패배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다면?

노 대통령이 챙길 수 있는 건 국정과 대선이다. 문제는 주요 국정과제가 중산층·서민과 각을 세울 여지가 다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FTA의 여파가 중산층과 서민에 직접 미친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양극화 해소의 경우 얼핏 봐선 서민을 위한 정책 같지만 방향이 이상하게 잡힐 수 있다. 얼마 전의 세금 논쟁이 그 예다.

그렇다고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하지 않을 수도 없다. 걱정거리는 그것이 대선에 미칠 여파다.

방법이 있다. 노 대통령이 '총대'를 메는 것이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주요 국정과제를 직접 챙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열린우리당과 각을 세운다. 이렇게 되면 부담은 노대통령이 더 크게 짊어진다. 비판 여론을 '반노'로 집중시킴으로써 '반열린우리당'으로 확산되는 걸 차단할 수 있다.

사학법 재개정 비난여론이 김한길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 원내 지도부에 쏠리다가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한마디에 청와대 비판으로 옮아간 경우를 봐도 그렇다. 덕분에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수호 정당이 됐다.

물론 '반노'와 '반열린우리당'이 현실 정치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정서가 혼재돼 '반여'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건 평상시의 얘기다.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노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 대선주자가 나타날 경우 여권은 두 개의 실체를 가진 집단이 된다. 바로 이때 노 대통령이 '반노' 정서를 모두 끌어안고 장렬히 퇴장한다면 여권의 실체는 '새로운 하나'가 된다.

노 대통령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다면 탈당 시점은 뒤로 미뤄질 것이다. 유력 대선주자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건 소득이 별로 없다. 수정란이 병아리가 되어 알 껍질을 깰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장렬한 퇴장'은 노 대통령 스스로 알 껍질이 될 때 가장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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