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423회

등록 2006.05.03 09:02수정 2006.05.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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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천마곡에 들어와서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은 비원의 명령에 따른 제약 때문이었다. 그리고 애써 부인하려 해도 피어오르는 회의가 그를 괴롭혔다.

모든 사실이 밝혀진 이상 이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부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는 것이 그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군웅들과 동행하는 게 불편해 그러시다면 내가 조치를 취하겠소."

담천의의 말에 구효기는 손을 저었다.

"아니오. 노부 역시 신중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오. 부상을 당해 이곳에 남은 분들은 모두 노부 탓이오."

그 역시 미망에서 벗어난 것일까? 생사를 초월한 듯 아주 편해 보였다. 비원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다행이련만… 헌데 갑자기 갈인규가 나섰다. 모두 떠날 준비를 하는데도 행장을 꾸리지 않았던 갈인규였다.

"형님들… 소제 역시 이곳에 남겠소."


"갈제… 그 무슨 남의 뒷다리 긁는 말이야?"

팽악이 놀란 듯 말하자 갈인규가 빙그레 웃었다.


"소제는 의원이오. 의원이 환자들을 내팽개치고 가는 것 봤소?"

"많이 봤다. 아마 대부분의 의원 나부랭이들이 그럴걸. 언제 의원이 환자 아픈 것 생각이냐 해주냐?"

팽악이 언성을 높이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말을 뱉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형제가 이곳에 남아있는 것은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형님…!"

"아니… 너나 갈대인께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세태가 그렇다는 것이지. 사람들 붙들고 물어 봐라 내가 틀린 말 했나?"

"팽형님은 어디서 꼭 나쁜 자들만 본 것 같소. 적어도 소제는 부친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소. 소제 걱정이랑 마시고 가시오. 소제 역시 도망가는 일에 아주 익숙하오. 하핫…."

다른 형제들의 부담을 덜어내려는 듯 갈인규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마음을 누가 헤아리지 못할까? 갈인규는 의원이다. 의원의 본분을 지키려 한다. 갈인규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천의를 보며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이곳에 나가면 우선 담형님의 술부터 실컷 얻어먹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뒤로 미루어야 할 것 같소."

"갈제…!"

"괜찮소. 그렇게 걱정되면 균대위 모두 동원해서 우리부터 구해주시오. 그러면 되지 않겠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부상자들과 함께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질이오, 볼모다. 걱정스럽게 자신을 지켜보는 구양휘와 광도, 팽악과 혜청, 그리고 남궁산산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양손을 흔들었다.

"자… 자… 빨리 가시오.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단 말이오. 형님들이 늦게 가면 갈수록 그만큼 치료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오."

담천의는 갈인규의 양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한 기운이 서로의 몸에 전해졌다. 그들은 형제였다.

--------------

꿈을 꾸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악몽이었다. 조그만 화선(花船)에 그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 사람의 품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요동을 치면서 그 사람과 떨어졌다.

주위는 망망대해와 같은 강이나 호수 같았다. 맑고 푸른빛이라고 생각했던 그 물빛은 어느새 흙탕물로 변해있었고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가 다시 기우뚱하는 바람에 자신의 몸은 흙탕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사람은 자신을 잡으려 움직이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은 거센 물살에 휩쓸려 그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 사람을 부르며 허우적거렸지만 그 사람이 탄 화선은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숨이 막혀왔다.

"…………!"

깨어난 송하령은 불길한 예감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옷은 물론 침상이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흉몽은 뱃속의 아기에게도 안 좋을 것인데…….

그녀는 한동안 방 안을 서성거렸다. 분명 좋지 않은 꿈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안 좋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손가장 안에서 담천의와 자신을 공격하다가 사로잡힌 적이 있던 모용정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얼핏 지나치기는 했지만 모용정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따르는 시비들도 범상치 않았다. 그녀는 어떻게 균대위의 손에서 빠져나와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더구나 손가장 내의 움직임은 전과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아마 이런 불안한 마음이 악몽을 꾸게 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한 쪽에 놓아두었던 주머니를 열어 탁자 위에 꺼내 놓았다. 천기를 엿보는 짓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부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일각에 걸쳐 숨을 고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나 괘(卦)를 잡은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천기를 엿보는 짓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녀는 괘를 탁자 위로 던졌다.

촤르르르---

괘가 펼쳐졌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거리며 팔괘(八卦)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육효(六爻)를 고르고, 괘상(卦象)을 보았다. 이것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만의 점괘였다. 그 외에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팔괘를 섞어 중괘(中卦)를 뽑아보았다. 신중하게 괘사(卦辭)와 효사(爻辭)까지 해독해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불안한 그림자가 퍼졌다.

(여자…!)

이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분명 여자가 나타났다. 그 사람과 자신을 갈라놓을 그것은 뜻밖에도 여자였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일까?

더구나 자신의 미래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점쟁이라도 자신의 운명은 보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일까? 여자… 여자…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와 이별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가 없는 삶이란 죽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에게는 큰일이 닥치고 있었다. 생사가 한순간에 결정되는 일이었다. 아주 위험했다. 그녀는 점괘를 다시 한번 신중하게 해독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다행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점괘가 보였다. 위험스런 순간에 누군가가 그를 도와주어 그 위험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란 점괘였다. 여자인 것도 같고 사내인 것도 같았다. 아니 두 남녀인 것 같았다. 여하튼 아주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여자… 여자… 그 존재가 그녀의 뇌리에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이시여…
제발 그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게 하소서.
소녀와 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불행에 빠져야 한다면 소녀에게 불행을 주소서….

그녀는 그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하늘에 뿌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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