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문재인 카드' 뇌관 둔 채 '폭탄 돌리기'

[정치 톺아보기 140] 노 대통령, 고수·철회·다른 자리 중 어느 것 택할까

등록 2006.08.06 20:02수정 2006.08.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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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김근태 당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김근태 당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이번 오찬은 휴가중에 벌어진 김병준 교육부총리 파문과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명 가능성을 둘러싼 양측의 인사권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열려 관심을 끌었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이 전한 이날 당·청 회동에서 합의된 결론은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당의 조언과 건의에 대해 대통령이 경청한다 ▲당의 조언과 건의는 합당한 방법으로 제기해야 한다 ▲당·청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총리가 포함된 비공식 고위 당·정·청 모임을 갖기로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휴가중임을 감안해 당·청 양측은 그동안 주로 '장외'에서 간접화법을 통해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이 차례로 나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옹호하면서 여당 지도부를 거세게 비판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 한 번 하려고 그렇게 대통령을 때려서 잘 된 사람 하나도 못 봤다"면서 현재의 대립 양상을 '권력투쟁' 국면으로 인식하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간접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당·청 회동은 간접화법을 통해 대립각을 세워온 당·청 수뇌부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공식 대좌했다는 데서 첫 번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당·청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총리가 포함된 비공식 고위 당·정·청 모임을 갖기로 한 것은 외형적인 성과이다. 당·청은 지난번 유시민 장관 입각 때도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자 당·청간 협의체를 갖기로 합의해 놓고도 정작 이를 실천하지 못해왔다.

당·청 양측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는 데 의의

그러나 협의체가 없어서 당·청간 대화와 소통이 안된 것은 아니었다. 당내 최대 계파를 거느린 김근태·정동영씨가 이해찬 당시 총리와 함께 내각에 포진해 있을 때만 해도 당·정·청은 '8인 모임'이니 '12인 모임'이니 해서 오히려 더 밀도 있는 비공식 모임을 운영해왔다.

이번 회동의 두 번째 의미는 외형적으로 당·청이 외견상 서로 조금씩 물러서 양보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점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날 "당이 의견을 접근한 과정에서 이 문제(문재인 법무장관 불가 입장 전달)가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실수가 있었고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노 대통령 또한 이날 "대통령으로서 당 지지율 하락에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앞으로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당·청 회동의 본질적인 의미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다음과 같이 당·청 양측이 서로의 면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노 대통령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권력이다. 따라서 인사권의 문제는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을 지는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김근태 의장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하고 당도 이 문제 있어서 이견이 없다. 다만 5·31 선거 패배 이후에 민심이 떠나있기 때문에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민주개혁 세력 전체의 위기로 귀결 되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변화가 필요하다."

김한길 원내대표 "지금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데 동의한다. 주요한 인사에 대해서 당은 의견을 전달하고 대통령은 그 조언을 참고해서 하시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의 만남을 계기로 대통령과 당이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확인하기를 바란다."


당·청간 합의된 결론은 '미봉책'일 뿐, 여전히 '평행선'

a 노무현 대통령은 6일 낮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권력"이라며 "인사권의 문제는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6일 낮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권력"이라며 "인사권의 문제는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얼핏 외형적으로는 당·청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해 갈등을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평행선'이다. 그것은 다른 비대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석현 비대위원도 "대통령과 당은 공동운명체이므로 국민여론을 수렴해서 대통령께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인사 문제에 관해서도 건의는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당·청간에 대화나 대화 협의체가 없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대화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당·청이 근본적으로 서로 처한 입각점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 회동에서 합의된 결론은 당·청이 모두 인정하듯 '미봉책'일 뿐이다. 그것은 당·청간의 갈등이 '중층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의 당·청 갈등은 단순히 인사권 차원을 넘어 정국 운영방향을 둘러싼 '미래권력'(당)과 '현재권력'(청와대) 간의 대립구도에서 나온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참모들과의 회동에서 "대통령 한 번 하려고 그렇게 대통령을 때려서 잘 된 사람 하나도 못 봤다"고 말해,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거취와 법무부 장관 인선에 대한 당 지도부의 문제 제기를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로 규정하고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권력의 도전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문재인 법무카드'가 김근태·정동영으로 대표되는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군'과의 대립구도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권에서는 오히려 참여정부에서 '왕수석'으로 통한 문재인 전 수석이 이른바 '부산파'의 좌장이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이광재·안희정 라인 등 계파간 권력투쟁 양상으로 진단한다.

노 대통령이 이날 회동에서 "청와대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동안 특정 측근에게 권력을 과도하게 위임한 적이 없었다"면서 "철저하게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노 대통령은 이어 "장담컨대 참여정부는 임기를 끝내는 마지막까지 권력형 게이트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재인 카드' 세 가지 경우의 수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제 노 대통령이 과연 '문재인 카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다. '문재인 카드'를 고수 혹은 철회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자리'에 쓰는 것이다.

아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노 대통령이 정작 이날 회동의 성격에 대해 "문재인 수석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오찬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인사권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추어 현재로서는 '문재인 카드'를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휴가중에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한 인사도 노 대통령이 "나더러 주위에 같이 있는 사람만 쓴다고 비판하는데,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쓸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보건대, 문재인 카드를 강행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인사권을 내세워 문재인 카드를 고수할 경우, 겨우 봉합된 당·청관계는 다시 악화될 것이 뻔하다. 특히 이는 문 전 수석의 '영남 정권' 발언으로 5·31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호남 및 수도권 출신 일부 의원들에게 탈당의 명분을 제공하는 등 당 분열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재인 카드를 철회하는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이날 회동에서 "우리에게 정치지형이 유리하지 않는데 대통령도 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당·청 갈등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에게 당에 소속된 의원들을 수습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한 데서 유추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당·청 관계는 상당 부분 복원되겠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임기말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가중될 것이 뻔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문재인 전 수석을 법무장관이 아닌 '비서실장' 같은 청와대 참모로 기용하는 것이다. 이는 당·청은 물론 한나라당을 포함한 여·야 모두에게 명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럴 듯한 카드이다.

사실 문재인 카드는 여당 내에서뿐만 아니라 야당으로부터도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야당은 다른 자리와 달리 법무장관은 향후 대선을 엄정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 인사를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정치 공세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돌이켜보면 당·청은 대통령의 휴가중에 발생한 인사권 문제를 계기로 당·청 간의 갈등 수위가 비등점으로까지 치닫자, 파국을 막기 위해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러나 양측은 정작 문재인 카드라는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의 뇌관은 그대로 둔 채 오찬에서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고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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