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와 공사는 육사의 적?

[내 젊음을 바친 군대 9] 언제까지 전투적 사고에 빠져 있을 건가

등록 2006.09.06 16:54수정 2006.09.0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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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타이완 정치작전학교 유학 시절(가운데가 필자).

타이완 정치작전학교 유학 시절(가운데가 필자).

사관학교 생활 중 마음에 남는 추억거리를 더듬어 보면, 입교해 군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죽도록 고생하며 받았던 기초 군사훈련과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에 얽힌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전 생도들은 석식 후 B연병장(운동장)으로 모여라! 응원 연습이 있다!" 이런 내용을 전달받은 우리 1학년 생도들은 신이 났다. 응원연습이니 그 시간만은 오락 시간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상급생들의 간섭과 지적의 눈초리 없는 평화로움을 기대하며 집합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상급생들은 옴짝달싹 못하게 줄을 맞춰 우리를 앉혔다. 우리는 응원단장과 보조단원들의 지시와 구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기계처럼 움직이고 고함치는 연습을 반복했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해도 상급생들은 귀신같이 금방 알아차렸다. "어이, ○○생도! 일어서!" "다들 형편없어!" 신경질적으로 후배들을 질책하는 쇳소리가 사방에서 빗발쳤다.

결전의 날이 가까워올수록 연습 시간은 길어졌고, 해군·공군사관학교에 대한 적대감은 불타올랐다. 날마다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악을 쓰며 적개심을 증폭하다 보니, 다른 사관학교의 생도들을 우리가 반드시 타도해야 할 적이자 원수로 착각할 정도로 증오심이 일었다.

몇 주만 집중 교육해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패배는 곧 죽음"이라는 전투적 사고를 끊임없이 주입하고 이기심을 부추긴 결과였다.

세뇌 교육은 이처럼 무섭다. 비근한 예로, 군사독재 시절 거의 모든 학교와 언론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를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고 항일 독립 운동에 몸 바친 민족주의자들의 일부를 빨갱이로 몰아 증오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거짓에 완전히 세뇌되어 구제불능 상태가 됐다. 거짓으로 조작된 내용을 진실인 양 믿는 '중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엔 병세가 극심한 일부 군 간부 출신도 포함돼 있다. 만약 생도 훈육 과정에서 왜 승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인지, 오래도록 진정한 승리자로 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일깨워줬다면 군 간부 출신 가운데 '중병'을 앓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모든 경기는 전투" vs "운동일 뿐, 악쓸 일 아니다"

1973년, 타이완의 정치작전학교에 유학할 때 생긴 일이다. 중대 대항 농구 시합에서 우리 중대가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난 거의 발작적으로 응원했다. 그런데 다른 장교들은 상대편에게 박수까지 보내면서 경기를 여유 있게 즐기고 있었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화가 치민 난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군인에게 모든 경기는 바로 전투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다들 왜 이렇게 미온적으로 구경만 하고 있는 건가."

그런 내 모습이 딱해 보였던지 동료 장교가 다가와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이것은 전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운동이다. 저 분들은 적이 아니다. 장차 적에 맞서 함께 싸울 전우다. 경기규칙을 준수하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 악쓸 일이 아니다."

난 속으로 '너희가 이 모양이니 이런 섬으로 쫓겨 왔지'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유치한 전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정책과 전략을 다뤄야 할 고급장교가 소대장 시절에나 있을 법한 객기를 분출한 것은 수양이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미숙한 자세임을 그들은 무언으로 가르쳐주었다.

타이완의 국민당군도 우리처럼 동양적인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군과 다른 모습을 보인 건, 그들이 중국 대륙을 빼앗기고 타이완으로 쫓겨 온 후 통절하게 반성하며 군대를 혁명적으로 개혁했기 때문이다.

우리 반 동기생 중엔 총통부(한국의 청와대에 해당)에 속한 헌병장교, 보안사 요원, 감찰장교 등 이른바 권력기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다른 장교들보다 훨씬 겸손하고 온유했다. 계급이 높을수록, 중책을 맡고 있을수록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국군의 분위기와 대조적이었다.

경쟁에서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승자의 겸허함과 패자의 의연함은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한국군은 전투적 사고만 배웠다.

군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민간 사회에도 전투적 사고가 만연해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대결의식과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또한 '위대한 박정희,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빨갱이'라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여전히 많다.

안타깝게도, 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전투적 사고에 세뇌돼 북한을 '때려부숴야 할 철천지 원수'로만 인식한다.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과 화해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끔 이들이 자신을 미국의 네오콘이나 일본의 극우 망동주의자의 대변자로 착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나 홀로 애국'의 착각에 깊이 빠져 반민족, 반통일, 반평화 극우세력의 전위대를 자임하는 이들은 시민의 사랑과 신뢰를 점점 잃고 있다.

이들 중엔 세상의 모든 잘못을 정부 탓으로 돌리거나, 매국적 극우 선동을 일삼는 일부 보수신문의 말장난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측은지심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을 국민들이 과연 언제까지 인내해줄까?

그러한 업보를 후배들에게 떠안겨선 안 된다. 불행했던 독재 시대에 잘못 세뇌되어 '구제불능'이 된 선배들과 의식면에서 분리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생도 훈육 개혁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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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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