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고 있다면 '스리나가르'로

꾸벅새가 선물한 인도여행

등록 2006.08.18 13:07수정 2006.08.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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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희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다. 커다란 연꽃 호수 위에 사람이 사는 곳. 그 이름은 달 호수다.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 때문에 인도에서 가장 위험한 스리나가르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달 호수에서의 하루는 소박하고 단순했다. 집 배 밖으로 나가면 물이었기 때문이다. 집 배 안에서 호수를 구경하거나 시카라(작은 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이 전부였다. 하지만 단순한 일들이 즐거웠다.


시카라를 타고 호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새벽엔 시카라들이 모여 이루는 시장에 갔다. 물 위의 시장은 물소리와 카슈미르어가 뒤섞여 푸른 새벽 속에서도 활기찼다. 양배추와 순무를 구경했다. 옷감을 가득 실은 배를 세워 무늬를 살펴봤다. 값비싼 염소 털로 짜여진 파슈미나를 이리 저리 걸쳐 보기도 했다.

왕소희
왕소희
꽃배도 지나갔다.
"이건 뭐예요? 저건요?"
작은 배를 가득 채운 예쁜 꽃들의 이름을 다 알고 싶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꽃 살 거야? 말 거야?"
꽃 할아버지는 귀찮게 구는 게 싫었는지 화를 내셨다. 제일 싼 붉은 꽃 두 송이를 샀다.

왕소희
집배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호수만 바라보고 있어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어부들이 배를 타고 와서 낚시를 했다. 뭔가 잡혔는지 온 동네 매들이 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어부들이 새를 쫓느라 배가 기우뚱거렸다.

왕소희
하늘엔 생크림 같은 구름이 몽글 몽글하고 호수 위엔 연꽃이 가득하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릴 만큼 넓다는 호수. 호수 뒷골목 구석구석엔 작은 마을들이 많았다.


왕소희
왕소희
왕소희
가는 길에 뱃사공이 연꽃을 건져 목걸이를 만들어 주었다. 뱃머리가 물살을 가를 때 침착한 물소리가 호수 위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밤이면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뱃머리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호수 위를 떠도는 밤바람 속에 앉아 있었다. 비가 오려는 듯 어둡고 촉촉한 밤. 눈을 감으면 모든 것들이 다가왔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바람, 물소리,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이국적인 이슬람 기도문, 보름달 빛.


'사랑을 하고 있는데 어디로 가야하지?' 누군가 묻는다면 '스리나가르'라고 말해주고 싶다.

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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