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머무는 바위에 피는 '바위떡풀'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58] 바위떡풀

등록 2006.09.09 20:07수정 2006.09.1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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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하늘 높은 가을날의 휴일, 집에 앉아 있기에는 참으로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가족을 뒤로 하고 홀로 꽃산행을 나서는 일도 쉽지 않다.

물론 나지막한 산이나 들판을 갈 때는 가족과 함께 하지만, 때론 심산유곡이나 가파른 길을 걸어야 만나는 꽃들을 찾아갈 때는 동행이 있으면 오히려 힘들고, 꽃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뒷감당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만나고 싶은 꽃이 험한 산에 피어 있다니 조금은 난감했다. 그때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둘째가 너무도 사랑스러운 말을 했다.

"아빠, 꽃 사진 찍으러 가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온 가족이 함께 경춘가도를 타고 가평으로 향했다. 물론 휴일 마지막 날이니 오는 길 막힐 것을 각오하고 말이다. 가는 길은 훤한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거북이걸음이다. 꽃산행을 마치면 다시 저 거북이걸음의 대열에 끼어 서울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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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만나고 싶었던 꽃은 바로 '닻꽃'이었다. 그러나 산은 찾았지만 등산로를 찾지 못해 산 중턱 계곡에서 물장난을 치며 놀다가기로 결정을 했다.

제법 높은 산이라서 그런지 그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노랑물봉선과 흰물봉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과외수입인 셈이다.

그러나 닻꽃은 보이질 않는다. 잠시 아이들과 아내를 계곡에 남겨두고 험한 계곡의 바위들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집에서 오후에 나왔기에 조금 있으면 어둑해질 터이니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이미 숲의 그늘진 곳은 꽃을 만나도 사진을 찍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이 정도면 포기를 해야 한다.

포기,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 삶에 '포기'할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 높은 바위틈에 작은 꽃이 보였다. 그것은 식물도감에서만 보아왔던 '바위떡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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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바위 위쪽에서 물에 뚝뚝 떨어지고 바위는 젖어있었다. 이끼류의 식물들과 바위떡풀이 습기가 있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간혹 습기가 많은 절벽에 붙어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꽃을 피운 개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막 꽃망울을 맺고 있으니 일주일 정도만 기다리면 조용한 숲 속 바위에 하얀 꽃눈이 내릴 것이다.

바위떡풀은 고산지대의 바위, 심산유곡 구름이 머무는 곳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제는 사람들의 손길이 구름이 머무는 곳까지 다다라서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마구 파헤치고 있으니 자연이 얼만큼이나 인내할지 모르겠다.

만나고 싶은 '닻꽃'은 만나지 못했지만 행운을 만난 것이다. 행운, 그것은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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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뿌리를 붙이기 쉽지 않은 곳에 떡 하니 붙어 자리를 잡고 피어나니 '바위떡풀'이겠지만 그 삶은 척박한 삶의 정황을 잘 극복해나간 승리자를 보는 듯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장애를 극복하고 승리한 사람의 환호가 더 많은 감동을 주듯 바위떡풀의 작은 꽃은 참으로 위대하고도 위대한 꽃이다.

집에 돌아와 "닻꽃을 만나지 못하고 만난 바위떡풀입니다"하고 활동하고 있는 야생화 사이트에 올렸더니, 회원들이 길을 잘못 들어 만난 바위떡풀이 행운이라고들 부러워한다. 그제야 닻꽃 대신 만난 바위떡풀이 고마워진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간사한 것이다. 자기가 좋으면 그것으로 좋아하지 못하고, 남들이 인정해 주어야 비로소 좋아하는 것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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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길이 변한 것이 아니라 길 위에 서 있는 것들이 변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일터로 나가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발걸음들이 고맙게 여겨지니 막히는 길이 그리 답답하지 않다.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 중의 한 가지는 무엇일까?

자연, 그들의 품에 안기는 일을 자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자연의 품에 안겨서 자연이 주는 묘약들을 몸에 모시고 또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무슨 꽃을 만나고, 자연물에 의미를 주어서가 아니라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산을 바라보고, 그 안에 안겨 있는 것만으로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들꽃 같은 것들은 덤으로 즐기는 보물찾기 같은 것이다. 그 재미를 아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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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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