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맞는 매가 나을 때도 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휴전에 들어간 여야

등록 2006.11.16 09:55수정 2006.11.1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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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15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의장석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15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의장석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당장이라도 결딴을 낼 것처럼 덤비더니 하루도 안 돼 발을 뺐다. 여야가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석에 현수막까지 내걸고 '결사항전'을 다짐했고, 열린우리당은 5분 대기조까지 늘어놓은 채 '필승'을 읊조렸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당의 원내내표는 어젯밤 악수를 했다. 이번 주 안에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지 않고 외교안보장관 인사청문회 등의 국회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휴전에 들어간 것이다.

궁금하다. 그럼 다음 주에는 처리하는 건가? 아닐 것 같다.

헌법재판소장 문제는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문제다. 애끓는 정도로 따지면 청와대를 따라올 데가 없다. 그런 청와대가 유보하기로 했다. 국회 공방을 지켜보다가 어제 오후, 전효숙 헌법재판관 임명을 유보하기로 했다. 왜일까?

며칠 전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거국(관리)내각 구성을 요구했을 때 청와대는 "그럼 좋다"고 했다. 받아들일테니 요구조건을 들어달라고 했다. 그 요구 조건 가운데 하나가 법안의 신속한 처리였다. 사법·국방개혁안, 비정규직 관련법 등등을 직접 거론하기까지 했다.

국정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긴요한 법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줘야 한다는 '호소'였다.


얹어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새해 예산안이다. 돈이 없으면 일을 못 한다. 국정 마무리를 위해서는 법안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업무추진비도 절실하다.

청와대의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설정해 보자.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이번 주, 또는 다음 주에 표결처리할 경우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임명동의안, 미루면 미룰수록 좋다

한나라당이 극심히 반발할 것은 불문가지다. 각종 입법안들과 새해 예산안이 반발투쟁을 보위하는 바리케이드가 될 수 있다. 그렇잖아도 사학법 개정 문제 때문에 다른 입법안들의 발목이 잡힐지 모르는 판에 지뢰를 하나 더 묻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럴 땐 뒤로 미루는 게 상수다. 매를 일찍 맞아 홀가분한 건, 다시는 맞지 않는다는 믿음과 보장이 있을 때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으로서도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으로도 모자라 임채정 국회의장 표까지 동원해야 겨우 가결 표를 얻는다. 너무 위험하다. 만에 하나 이탈표가 나오기라도 하는 날엔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는다.

후환도 두렵다. 한나라당의 반발투쟁 정도가 심해 각종 입법안이 벽에 부딪히면 여당의 의정장악력과 업무추진력이 도마 위에 오른다. 또 다시 무능 꼬리표를 달 수 있다.

청와대나 열린우리당이나 뒤로 미룰수록 좋다. 우선 입법 현안들을 처리해 실리를 챙기면서 결정적인 때를 보는 게 낫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이 표결 처리를 강행하는 순간 지난해의 사학법 투쟁에 이어 또 다시 엄동설한의 거리로 나서야 할지 모른다. 이건 너무 부담스럽다. 장외투쟁의 부담을 없애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죄는 게 실리적이다. 휴전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어느 순간 열린우리당이 표결을 강행할 것이다. 이걸 피해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다르다. 이왕 맞이할 상황이라면 뒤로 미룰수록 좋다. 좋을 뿐 아니라 유리하다. 정기국회 막판에 열린우리당이 강수를 들면 그때 장외로 뛰쳐나가면 된다. 그럼 내년 세모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대선 전략으로 이어갈 수 있다. 어차피 내년 한 해는 죽기살기로 싸워야 하는 해다.

본선을 알리는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선수들이 몸만 풀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감질나게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밑을 대비해야 할 것 같다. '고요한 밤'은 물 건너 가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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