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조롱받을 때 손에 들었던 그 꽃은?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78] 부들

등록 2006.12.04 10:08수정 2006.12.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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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부들,  그들의 모양은 참으로 단순하다.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부들, 그들의 모양은 참으로 단순하다. ⓒ 김민수

어느 새 한 해의 마지막 달,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12월의 주인공, 그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아기 예수'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여느 계절보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성탄의 본질이 아무리 퇴색되었어도,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그 본질을 찾아가려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성탄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예수의 탄생과 동시에 예수의 죽음을 보아야 한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철저하게 그는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 의해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한다. 십자가형을 확정한 후 예수를 조롱하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비웃을 때 누군가 예수의 손에 꽃을 들려주었다. 그 꽃이 바로 '부들'이라고 한다. 예수의 십자가와 관련시켜 보면 부들의 꽃말이 '순종'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a 우거진 부들사이에는 새집도 많고, 부들의 씨앗은 어린 새들의 먹이가 된다.

우거진 부들사이에는 새집도 많고, 부들의 씨앗은 어린 새들의 먹이가 된다. ⓒ 김민수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빛보다 붉은 십자가가 더 많이 보인다. 부들군락지에서 꽃을 피운 부들마냥 촘촘할 정도로 많다. 주일이면 대형교회 주변은 주차를 하려는 차들로 인해 러시아워를 방불케 한다. 설교시간이면 여기 저기서 '아멘'소리가 울려퍼지고, 찬양을 할 때면 천사의 얼굴이 따로 없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섬뜩한 구호를 만날 수 있는, 더 이상 예수가 낯설지 않는 그 곳이 바로 서울이다.

예수의 이름은 이제 흔해 터져서 자기들의 이념을 치장하는 구호로 사용된다. 초강대국의 종교가 됨으로 인해 평화의 이름으로 평화를 파괴하는 선봉장이 되어 버렸다. 교회도 더 많아지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도 더 많아졌는데 과연 하나님의 뜻은 얼마나 더 이뤄진 것일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 스스로가 신이 되어버린 시대, 스스로 주인이 되어버린 시대에 예수가 오신다면 다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손에 그 누군가가 쥐어준 '부들'을 쥐고, 두 주먹 부들부들 떨면서 말이다.

a 잠자리가 쉬어가기 좋은 곳, 갈대보다 줄기가 질겨 돗자리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잠자리가 쉬어가기 좋은 곳, 갈대보다 줄기가 질겨 돗자리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 김민수

부들은 아주 단순하게 생겼다. 이파리와 기다란 줄기를 쑥 내밀고 소시지 같은 꽃 같지도 않은 꽃을 피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꽂이의 소재로 많이 사용된다. 간결하고 시원하게 생긴 모양새가 다른 꽃들과는 달라 전체적인 미(美)를 조화롭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한 것(simple), 그것은 '텅 빈 충만'과 닮았다. 거추장스럽게 자기를 치장하지 않고도 넉넉하게 살아가는 것, 단순한 삶이지만 그 안에는 심연을 알 수 없는 깊이 있는 의미가 있는것, 그것이 예수의 삶이요 그의 설교였다. 그런데 신학자들은 수없이 많은 교리들로 치장을 해서 그 당시 어린아이부터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들조차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던 예수의 메시지를 신학자들조차도 알지 못할 말로 바꿔버렸다.


단순한 것을 복잡한 것으로 바꿔가면서 미궁에 빠진 것이다. 예수가 이 땅 어느 교회에 가서 고개를 끄덕이며 설교를 들을 수 있을까? 이젠 예수 없는 교회, 예수 없는 설교만 남은 것은 아닌가? 삶과 괴리된 설교, 삶이 없는 성서중심, 그것은 이미 예수의 이 땅에 오심의 의미와는 너무 먼 길에 서있는 것이다.

a 부들의 이삭을 말려 불을 붙여 양초나 횃불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부들의 이삭을 말려 불을 붙여 양초나 횃불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 김민수

당신의 오심을 기뻐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날 당신이 오셨을 때,
당신을 맞이할 목자는 있는 것인지요,
당신을 경배할 동방박사는 있는 것인지요?
기뻐하는 그 자리에 당신은 없고,
축하하는 그 자리에 당신이 없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 없어 우는 이들,
저 그늘진 곳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곳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곳에서 조차도 초대하지 않는 이들,
그 곳에서 당신은 그들과 함께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는 당신은 이단자입니다.
곧 십자가형을 당해야할 이단자입니다.

- 자작시 '서울 예수'


a 추운 겨울에도 꼿꼿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나 부활의 계절, 봄이 오면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추운 겨울에도 꼿꼿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나 부활의 계절, 봄이 오면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 김민수

그 해 겨울, 제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물게 해안가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그때까지도 부들은 꼿꼿하게 서서 내리는 눈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눈이 내리고 어느 날,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흙으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른 봄 다시 부활하듯 그들은 새록새록 이파리를 내고, 줄기를 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새들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는 깃든 새들을 다 받아들이고도 넉넉하게 살아갔다.

어떤 상징과 연관되어 연상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부들, 그렇게 예쁘지 않은 꽃이지만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는 예수를 생각하게 되고, 그런 고난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이들에 의해 더렵혀지는 예수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도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이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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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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