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끄레믈로 들어가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13] 모스크바 2

등록 2006.12.15 10:00수정 2006.12.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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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끄레믈의 입구인 삼위일체 탑

끄레믈의 입구인 삼위일체 탑 ⓒ 강병구

도착 다음날인 5월 6일 본격적인 모스크바 여행을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전승기념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수선한 모스크바 상황에 나의 안전을 걱정하던 최 선생님이 동행해주셨다.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도착한 곳은 끄레믈이었다. 크렘린이라는 영어식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곳은, 러시아가 생기기 이전, 12세기 모스크바 공국이 생기면서부터 만들어졌다.


끄레믈이란 말은 '성벽'이라는 뜻의 러시아 말로, 말 그대로 초기엔 습격을 막기 위해 평지에 들어선 목조의 성벽이 유래라고 한다. 이후 증개축을 거쳐 15세기 이반 뇌제 시대 이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해를 돕자면, 우리의 조선시대 성벽으로 둘러쳐진 4대문 안의 수도 한양을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사실 끄레믈은 제정 러시아의 황금기라고 할 만한 시절에는 별로 조명 받지 못한 건축물이다. 구 러시아의 황금기라 할만한 18세기 뾰뜨르 대제 이후 시기에는, 뾰뜨르 대제의 뻬쩨르부르그 천도로 모스크바는 점점 잊혀진 땅이 되었다. 더불어 끄레믈도 황제의 대관식, 장례식 정도가 열리는 별궁 정도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혁명 이후 소련의 수도가 모스크바로 정해지면서 다시 한 번 끄레믈은 주목의 대상이 된다. 냉전시절 워싱턴의 백악관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던 권력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니는 속을 모르겠다는 뜻으로 '끄레믈린 같은 녀석' 이란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 식으로도 자주 들어오던 이곳에 드디어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빨간 벽돌 벽으로 둘러싸여 속이 안 보이던 끄레믈의 입구는, 듣던 만큼이나 속이 철저히 가려진 듯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들어오던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 보다는 북적대는 관광객들로 활기찬, 혹은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특히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는데, 여기가 러시아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다.

끄레믈 안에서 본 것들


a 끄레믈 안의 여러 성당 중 하나인 성 수태고지 성당

끄레믈 안의 여러 성당 중 하나인 성 수태고지 성당 ⓒ 강병구

최 선생님과 티켓을 끊고 입구인 삼위일체 탑을 지나 들어가자 여러 성당과 건물들이 보였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여러 개의 성당이었다. 유럽이 기독교 사회이고, 러시아 역시 그렇다지만, 그래도 궁궐이라 할 만한 곳에 성당이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끄레믈 안에 있는 성모승천 성당, 성 수태고지 성당, 그리스도 성의 교회, 대천사 아르한겔 성당 등의 건물들은, 지금은 종교행사보다는 관람 목적으로 개방되고 있었다. 사실 비신자로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뭐가 특별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유명 관광지인 만큼 나도 북적대는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보았다.


성당 안은, 일부러 설치를 안 한 듯, 부족한 조명으로 컴컴했다. 성당의 벽에는 빽빽이 러시아 이꼰화(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 벽들을 감상하고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끝이었는데, 계속해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떠밀리다 보면 밖으로 나와 있는 실정이었다. 대표적인 볼거리이니 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호기심을 끄는 것은 아니었다.

a 한번도 울린 적이 없다는 종의 황제

한번도 울린 적이 없다는 종의 황제 ⓒ 강병구

끄레믈에서는 사실 이런 건물들보다 야외에 있는 것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종의 황제', '대포의 황제'라는 이름의 두 물건은, 이름에 '황제'라는 단어가 붙었듯, 어마어마한 크기로 관심을 끌었다. 6m에 이르는 '종의 황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지만, 주조한지 2년 만에 난 대화재 때, 화재로 달아오른 종에 뜨거운 물을 부어 종이 깨지는 바람에 한 번도 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약 12톤에 달한다는 깨진 파편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대포의 황제'는 무게가 40톤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대포로, 보기에도 압도적이다. 이런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이 대포를 본 적군은 상당한 공포를 느껴, 보는 것만으로 전의를 상실하곤 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무거운 포탄 때문에 단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다고 하니, 우스울 따름이다.

a 한번도 쏘아본적이 없다는 대포의 황제

한번도 쏘아본적이 없다는 대포의 황제 ⓒ 강병구

끄레믈을 좀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전승기념일 행사 준비관계로 여러 시설을 통제 하더니, 결국엔 1시쯤 사람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특히나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는 경우 극도로 관람이 제한된다는데, 행사까지 겹쳐 쫙 깔린 경찰들이 관람객들을 몰아대기에 바빴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충분한 관람을 할 수는 없었지만, 끄레믈은 어릴 적 뉴스 통해 느끼던 공포의 장소라기보다는 여느 옛 궁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만의 특징 있는 건물이나 물건들도 있었지만, 예전 소련이라는 이름과 끄레믈이라는 이름이 주던 압박감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이상스런 기대감에는 실망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러시아 미술의 정수를 보다

a 아담해 보이는 뜨레차코프 미술관 전경

아담해 보이는 뜨레차코프 미술관 전경 ⓒ 뜨레차코프 미술관 홈페이지

끄레믈이 기대에 비해 실망감을 주는 곳이었다면,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을 듬뿍 준 곳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반겨준 효승이와 가 본 이곳은, 사실 모스크바에 도착해서도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그저 효승이가 추천하는 곳으로 같이 가보자는 말에 따라 나선 곳이었다. 미술은 거의 모르고 러시아 미술이라면 더더군다나 아는 바가 없는 내가 뜨레차코프 미술관을 모르고 있었던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효승이와 함께 표를 끊고 입장한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러시아의 여느 전시관처럼 사진 찍는 것을 막았다. 기분 나쁜 일이긴 했지만,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흥미도 없고, 불쾌한 입장. 별기대가 되지 않았다.

a 이바노프의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스도>

이바노프의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스도> ⓒ http://www.abcgallery.com

하지만 작품을 하나하나 볼수록, 전시실을 한 곳씩 지날수록 대단한 곳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바노프의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스도'나 레핀의 '이반 뇌제와 아들의 비극'등의 그림은 여러모로 감동이었다.

이바노프가 20년에 걸쳐 세로 5m, 가로 7m의 본 그림과 십 여점의 부속그림으로 그린 ' 멀리서 다가오는 그리스도'는, 예술가의 위대함을 작품그대로 느끼게 했다. 제목처럼, 본 그림 오른쪽 뒤편에서 앞쪽의 사람들을 향해 걸어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우선 그 크기에 놀랄 수밖에 없다.

가까운 거리에선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크기의 본 그림은, 미술관의 한쪽 벽면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본 그림의 주변에는 십 여점의 부속 그림이 있다. 부속 그림들은 본 그림의 부분 부분을 따로 떼어내어 확대하는 식으로 그려져 있는데, 본 그림에선 너무 큰 그림의 규모로 잘 눈에 띄지 않는 각 인물들의 얼굴 표정이나, 색감이 나타나 있다.

1837년에서 1857년까지 20년 동안 그린 그림이란 점도 그렇지만, 복사기나, 컴퓨터가 있던 시절도 아닌데, 하나의 작품을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해놓은 작가의 능력이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a 페로브(V. Perov)의 <트로이카>

페로브(V. Perov)의 <트로이카> ⓒ http://www.abcgallery.com

이 외에도 마치 무대 조명을 받고 있는 듯 한 빛의 사용과 뛰어난 색감이 인상적인 레핀 - 레핀의 위대함은 상트 뻬쩨르부르그에서 더욱의 느낄 수 있었다. - 의 '이반 뇌제와 아들의 비극', 사실성이 뛰어난 페로브(Perov)의 '트로이카'나 '휴식을 취하는 사냥꾼' 같은 작품들을 보며 19세기 러시아 미술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18~19세기, 중서부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근대화를, 황제와 국가가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가며 따라잡으려했던 러시아. 이 뜨레차코프 미술관과 여기에 남은 저런 위대한 작품들은, 그런 제정 러시아 시대의 영광의 유산이었다.

a 이반 크람스코이 <황야의 그리스도>

이반 크람스코이 <황야의 그리스도> ⓒ http://www.abcgallery.com


[여행팁 10] 끄레믈과 뜨레차코프 미술관 가기

가는 법 : 모스크바의 미뜨로(지하철)는 생각보다 잘 발달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끄레믈과 뜨레차코프 미술관도 지하철을 이용하여 가면 된다. 끄레믈의 경우 알렉싼드롭스끼 삿드 역이나 바로비쯔까야 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고,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뜨레차꼽스까야 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간에 간판도 있으니 찾기 어렵지 않다. 모르겠으면 주변인들에게 물어보자. 관광객을 자주 보는 모스크비치들은 그렇게 불친절하지 않다.

입장 시 주의 점 : 먼저 입장료는 끄레믈의 경우 무기고를 보지 않는 일반 입장이 300루블인데 학생은 반값인 150루블이다. 국제학생증으로 할인이 가능했다.(2006년 5월)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140루블을 주고 입장했는데, 이게 학생 할인이 된 가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끄레믈의 경우 허름한 차림이나, 큰 가방은 절대 금물이고, 카메라 등의 간단한 수화물을 제외한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다. 특히 칼 등은 절대로 안 된다. 입장문 아래쪽에 짐 보관소가 있는데, 유료로 보관해주니, 두 번 발걸음이 싫다면 먼저 내려가서 가방을 맡기자. 검문은 총을 든 경찰이 했다. 가벼운 손가방은 소지 가능했다.

뜨레차코프 미술관도 가방은 가지고 관람할 수 없다. 짐 보관소가 입구 근처에 있으니 짐을 맡기고 관람하자. 그리고 사진 촬영은 못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메라를 아예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모스크바를 왔다면 꼭 들리게 되는 곳이 끄레믈이라면, 뜨레차코프 미술관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사람이 꼭 가 봐야하는 곳이라고 하고 싶은 곳이다.

뜨레차코프 미술관의 홈페이지는 http://www.tretyakovgallery.ru/ 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는 갤러리 서비스가 안 되고 있다.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기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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