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들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14] 모스크바 3

등록 2006.12.19 17:27수정 2006.12.2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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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양식이라고?

a 참새언덕에서 찍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우주선 모양의 엠게우 모습

참새언덕에서 찍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우주선 모양의 엠게우 모습 ⓒ 강병구

모스크바에 왔으니 모스크바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끼고 싶었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의 작품들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만의 멋진 매력이었지만, 러시아라는 이름이 풍기는, 뭔가 웅장하고 거대한 걸 보고 싶은 마음에는 좀 모자랐다. 그러던 중 가장 눈에 띤 것은 스탈린 양식이라는 독특한 모양세의 건물들이었다. 그 크기나 높이를 봐서는 분명 현대의 건물인데, 모양을 보아서는 유럽의 오래된 건물의 그것이었다. 유럽의 고성이나 탑이 부풀어 올라 고층 빌딩이 된 모습이랄까?


@BRI@ 스탈린 양식의 건물 중 처음으로 본 것은 엠게우라는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린, 국립 모스크바 대학교였다. 숙소 근처라 모스크바를 떠날 때까지 몇 번이나 봤지만, 볼수록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건물이라는 느낌이었다. 36층에 이르는 높이와 몇 만 개의 강의실 등, 방이 있다는 이 건물은 무슨 첨탑처럼 삐죽 서있었다.

이런 스탈린 양식의 건물은 엠게우 이외에도 외무성, 우크라이나 호텔, 예술인 아파트 등 모스크바에 총 7개가 있다. 모두 엠게우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이것들 역시 사람을 압도하는 건축물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딕양식을 현대 고층건물에 적용한 예라고 하는데, 그냥 보기만 해도 엄청난 공사비와 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역시나 스탈린 양식을 소개한 여행서에는 엄청난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 강제노역이 동원됐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었다. 스탈린 시대 사상검증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정치범을 노역에 동원했는데, 그래도 노동력이 모자라서 잡범까지도 정치범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역시 공짜는 없는 세상으로, 이런 엄청난 건물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뒷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며, 엠게우를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참새언덕에서 보았더니, 압도적이라기보다는 우스워 보였다. 좌우 대칭의 가운데가 뾰족하게 돌출된 모습이, 마치 공상과학만화에 나오는 우주선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좀 유치한 취향이랄까?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루고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빈정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모스크바의 대학로, 아르바트 거리


a 육중한 스탈린 양식의 건물, 우크라이나 호텔

육중한 스탈린 양식의 건물, 우크라이나 호텔 ⓒ 강병구

효승이가 안내해준 또 하나의 모스크바 모습은, 아르바트라는 이름의 거리였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을 돌아보고 나오니, 배가 출출해져서 뭔가 먹어야할 듯 했다. 효승이가 러시아식을 먹고 싶다는 내 말에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음식점을 가자고 하여 아르바트 거리로 향하게 되었다.

크레믈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르바트 거리는, 스탈린 양식의 웅장함을 자랑하는 러시아 외무성 건물을 찾으면 쉽게 갈 수 있다. 외무성 건물 옆의 크게 난 거리가 아르바트 거리로, 거리를 들어서면 근처의 맥도날드의 북적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이르쿠츠크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맥도날드를 보자 우선 반가웠다.


아르바트 거리는 서울의 대학로 거리에 비교할 만한 곳으로, 북적되는 인파들 사이에서 자리 잡고 앉아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 예술가들이 인상적이었다. 100루블을 외치는 이들 주변에는 바이올린 등의 클래식 악기부터 전자기타의 멜로디에 맞춰 메탈음악을 부르는 여러 거리음악가들이 서로 뽐내듯 음악을 하고 있었다. 또 그런가하면 여기에도 대학로의 그들처럼 장판지를 들고 나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힙합 춤을 추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학로를 옮겨 놓은 듯 한 모습의 아르바트 거리는 모스크바를 더욱 친밀하게 느끼게 했다.

아름다운 공원들

a 나무 사이로 보이는 칼로멘스코예 공원의 예쁜 러시아 성당

나무 사이로 보이는 칼로멘스코예 공원의 예쁜 러시아 성당 ⓒ 강병구

효승이 덕에 시내 구경을 잘한 만큼이나, 최 선생님 덕분에 색다른 모스크바 모습을 느낀 것도 여러 가지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아름다운 공원들을 구경한 것이다.

a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나무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나무 ⓒ 강병구

먼저 가본 곳은 칼로멘스코예 공원으로, 러시아 황제들의 목조 별장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여행자가 선뜻 나서기 힘든 위치이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 도 않고 있었는데, 최 선생님이 차로 같이 가보자고 하셔서 가족 분들과 소풍 나서는 기분으로 가보았다.

넓은 공원 부지에 숲 같은 나무들이 심어져있고, 간간히 보이는 아름다운 성당 등의 건물들과 한가롭게 쉬고 있는 모스코비치들(모스크바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이 유럽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했다.

수령이 400년이나 되었다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부터, 유서 깊은 교회와 러시아 황가의 목조건물들 등의 볼거리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도심의 북적거림을 벗어난 한가로운 모습이 가장 좋았다.

a 칼로멘스코예 공원의 한가로운 모습

칼로멘스코예 공원의 한가로운 모습 ⓒ 강병구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은 크레믈 옆에 있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공원이다. 유구한 역사적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역시 한가로움이었다. 이곳에 있는 연못에는 오리, 백조 등의 새들이 역시나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곳의 이런 모습을 보고 차이콥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내 중심가에, 도시를 벗어난 듯 한 공원의 한가로움은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그야말로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 조그마한 공터만 있으면 또 건물이 올라가는 서울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기 시작하며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1천만 대도시의 소비

a 차이콥스키가 영감을 얻었다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과 연못

차이콥스키가 영감을 얻었다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공원과 연못 ⓒ 강병구

그렇다고 모스크바가 오래되거나, 한가로움, 정신없는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인구 1천만명의 대도시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이 곳 하나뿐이다. 더구나 석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자원부국인 러시아의 주머니를 달러로 넘쳐흐르게 만들었다. 몇 해 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말이다.

여하튼 이런 러시아의 경제 상황은 개인에게로도 이어져, 급격한 외환 유입으로 인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무시할 만큼, 국민들의 폭발적 소비증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만나는 모든 한인들이 하는 말이 물가 상승으로 하루가 다르게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한국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유학생들은 몇 달 사이에 두세 배씩 뛰는 집세로, 집에 말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물가 상승에, 현지인들은 그만큼 늘어나는 급여로 점점 소비수준을 높이며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수도 모스크바는 여행객인 내 눈에도 넘쳐나는 돈으로 수많은 공사들과 도시 정비로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그런 만큼 모스크바에는 이전의 러시아 도시에서 보지 못한 대규모의 쇼핑센터와 할인점이 있었다. 모스크바 외각에 위치한 이케아와 메가라는 쇼핑센터는 창고형 할인점이 코엑스 같은 복합 쇼핑공간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거길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은 폭발하는 소비도시 모스크바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a 모스크바 외곽의 이케아와 메가 매장

모스크바 외곽의 이케아와 메가 매장 ⓒ 강병구

이케아는 한국에도 경제지를 통해 소개되었듯 스웨덴의 저가 가구 기업이다. 이 모스크바의 이케아 매장은 가구부터 팬까지 생활용품 일체가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형태였다. 옆에 위치한 메가는 스케이트장부터 영화관, 여러 외식 업체가 즐비한 푸드코트까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종합쇼핑문화공간과 비슷했다.

이곳을 소개해주시며 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가 변하고 있다는 것은 이곳을 올 때마다 느껴요. 처음 러시아에 왔을 때 만해도 이런 걸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이런 쇼핑센터가 생기기가 무섭게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것을 보면 모스크바의 발전이 하루가 다르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쇼핑센터가 모스크바의 명물이 되는 것은 뭔가 새로운 걸 바라는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한 것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엄청난 크기와 모스크바에 있다는 특별함은 있겠지만, 세계의 대도시라면 어디든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이 모스크바만의 특별함을 느끼려는 이들에게는 별로일 테니 말이다.

더불어 코엑스나, 롯데월드를 대표적인 서울의 관광지로 외국인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니, 그것이 얼마나 특색 없는 짓이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하던 그들 눈에 그것이 얼마나 특별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체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계화 시대, 어딜 가도 비슷해지는 모습을 보고 식상함을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약간은 씁쓸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a 코엑스나 롯데월드의 모습과 비슷한 메가 내부 모습

코엑스나 롯데월드의 모습과 비슷한 메가 내부 모습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12/26)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더불어 이번 일요일(24일) 결혼하시게 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이종승 사장님과 양승희 선생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두 분 항상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글 지난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다음 기사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주 화요일(12/26)에 이어지며, 저의 블로그(http://blog.naver.com/kbk8101)에 오시면 더 자세한 여행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여행클럽(http://cafe.daum.net/russiatravel)에도 연재합니다.

더불어 이번 일요일(24일) 결혼하시게 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이종승 사장님과 양승희 선생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두 분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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