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99회

등록 2006.12.22 08:33수정 2007.06.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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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말이 안 되는 소리…! 혈간의 시해에 동창이 관련되었단 말인가?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나?"

성곤이 놀라움을 표시하며 반박하자 중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도대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아무리 꿰어 맞추려 해도 앞뒤가 맞지 않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네. 매우 혼란스럽네."

@BRI@중의 역시 당혹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은 그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중의는 답답한 듯 운중보주를 향해 물었다.

"그래 아까 말하려던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 역시 지금 매우 혼란스럽다 못해 당황스럽네. 성곤 이 친구의 말대로 동림당의 잔당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네. 하지만 나타난 그대로를 본다면 동림당의 잔당들이 벌이기에는 너무 벅찬 사건들이 아닌가 하네."

"동림당의 잔당도 아니란 말이군."


성곤이 중얼거리며 운중보주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가? 중의 역시 궁금한 듯 바라보았지만 운중보주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뜸을 들였다.

"답답하군."


성곤의 말에 운중보주는 하는 수없다는 듯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벌일 곳은 오직 한곳뿐이네."

운중보주가 굳어있는 음성으로 말을 뱉었다. 그러자 중의와 성곤의 표정에 한결같이 의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가 갑자기 보주가 말한 '한 곳'이 어딘지 생각난 듯 표정이 홱 변했다. 그들의 시선이 운중보주의 얼굴 꽂혔다.

"자네는…, 그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네."

운중보주가 고개를 끄떡이자 두 사람은 놀란 기색을 띠었다.

"정말이군…. 자네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 하지만… 그건…?"

"물론 나 역시 그럴 리 없다고 수없이 부인해 보았네. 하지만 그들이 아니라면 지금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네."

그들…!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이미 운중보주는 이런 사태를 벌인 누군가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었던가?

"나는 이곳에 칩거한 이후 한번도 외부에 나간 적이 없네. 헌데 이 운중보 내 철담의 시신에서 심인검이 분명하게 나타났고 외부에 있던 혈간의 몸에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심인검의 검상이 나타났네."

"그러고 보니 혈간 그 친구의 척추를 가른 것도 뇌룡의 뇌전도가 아니라 오히려 내 벽라곤이란 생각이 드는군."

성곤 담자기 역시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자책하듯 말했다. 중의가 미간을 좁히며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구룡의 무공이 나타나고 있음은 어찌 설명할 텐가?"

"바로 그것이네. 우리는 지금까지 철담을 믿었네. 지금도 믿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네. 허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철담이 우리를 속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

"속이다니…? 그럼 철담은 구룡의 비급을 분실하지 않았단 말인가?"

"철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해는 하네. 우리를 설득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나았을 테니까…."

"철담이 우리를 속이고 스스로 그들에게 가져다주었단 말인가?"

성곤의 물음에 운중보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들었나? 나 역시 오늘 안 사실이지만 상만천의 오른팔인 용추가 옥룡의 옥음지를 익히고 있었네."

"자네가 그리 생각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군."

성곤이 고개를 끄떡였다. 상만천이 누구보다 믿는 용추가 옥음지를 익히고 있다면 구룡의 비급은 이미 그들 손에 있었다는 말이다.

"아마 구룡의 무공을 얻은 자가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 리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더 나아가 우리 모르게 그들은 또 다른 우리를 배출했을 수도 있겠군."

성곤은 얼굴을 심각하게 굳히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뜻일까? 또 다른 우리라니…? 그 말을 들은 운중보주와 중의 역시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중의는 한편으로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로 젓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러더니 성곤과 운중보주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이 지금 와서 그럴 이유가 있겠나? 우리는 지금까지 잘해왔네.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데로 움직여주지 않았나?"

"모르지. 어쩌면 우리가 부담스러워졌을 수도 있네. 철담의 노력으로 이미 중원무림은 우리 말 한마디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네. 만약 우리가 딴마음을 가진다고 생각해 보게."

"그들의 존립 자체가 큰 위기를 맞게 되겠지. 중원에는 피바람이 불 것이고…."

대답은 운중보주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지만 중의의 얼굴에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운중보주 역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표정은 중의와 마찬가지였다.

"그것이네. 그들은 지금까지 회유를 하거나 타협했고, 안되면 그와 상응하는 대가를 놓고 거래를 하는 쪽을 택했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우리마저 그들이 원하는 데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했네. 그런 그들이 지금에 와서 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지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네."

"그럴 이유가 없지. 아닐 걸세. 더구나 그들이 왜 철담을 살해하겠나? 철담은 그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였네. 아니 그들의 일부가 곧 철담이었네."

"철담이 욕심을 부렸을 수도 있네."

"무슨 뜻인가? 최근 철담에게서 다른 기미를 느낀 건가?"

"확실치는 않네. 하지만 최근 이삼 년 전부터 철담은 신경질이 부쩍 늘었네. 그저 나이가 먹어가면서 아집이 늘어 그런가 생각했지만 갑작스럽게 변한 것은 아니네."

"철담과 그들 간에 마찰이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중의가 따지듯 말했다. 이상하게도 중의는 운중 이 친구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철담은 최근까지 그들과 매우 사이가 좋았다. 비록 몸은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지만 오히려 중원 전체의 변화나 정세에 대한 안목은 자신이 더 자신 있었다.

"흐음…, 자네가 이번 회갑연을 앞두고 은퇴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매우 심각한 불안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군."

헛기침을 터트리며 성곤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성곤이 운중보주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들에게서 자네의 후계자 문제에 대해 전갈이 온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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