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실패' 발언 사수파에 득일까 실일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노 대통령, 신당파와 분명한 선긋기

등록 2006.12.22 09:44수정 2006.12.23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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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 대통령은 21일 오후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우리가 식민지, 좌우대결, 군사 독재를 겪는 동안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게 돼 버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1일 오후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우리가 식민지, 좌우대결, 군사 독재를 겪는 동안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게 돼 버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또 파문이 일고 있고, 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언론은 "갈 데까지 가버린 대통령"(<조선일보>)이라는 비판, "안타까운 자기부정"(<서울신문>)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한나라당에선 개구즉화(開口卽禍-입만 열면 화를 부른다)란 평도 나왔다.

그래도 대통령의 발언이다. 분석을 빠트릴 수 없다. 대개의 언론이 통합신당파를 노린 발언으로 해석한다. 고건 총리 기용을 "실패한 인사"로, 김근태·정동영씨 장관 기용을 "욕만 얻어먹은 포용인사"로 규정한 데 대한 분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반대하는 통합신당을 이들이 주도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 분석이다.

@BRI@반론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전 총리를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두 가지 분석을 종합하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타격을 가하려 했지만 오히려 어부지리를 선사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입을 열어 화를 부른 셈, 즉 개구즉화다.

고건 실패 발언은 개구즉화?

그럴까? 달리 볼 수도 있다. 당장은 손실을 볼지 몰라도 길게 보면 득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구도'를 주도적으로 짤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발언 시간 대부분을 외교안보 분야에 할애했다. 메시지도 뚜렷했다. 대미관계에서는 '자주', 대북관계에서는 '원칙있는 포용정책'을 주장했다. 바로 이 점이 통합신당파에 맞서는 구도 축이 될 수 있다.


통합신당파는 '평화개혁세력' 통합을 선언했지만 고민이 적잖다. 당장 고건 전 총리가 문제다. '가을 햇볕정책'을 주장한 그다. 통합신당파의 '평화' 모토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묻어둘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고건 전 총리를 떨궈낼 수도 없다. 그러면 통합신당의 동력이 반감된다.


이 지점은 통합신당파의 아킬레스건이다. 통합의 명분인 '평화'를 지키자니 동력이 반감되고, 세력을 취하자니 명분이 퇴색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이 점을 쳤다. 보수와 진보의 징검다리가 돼 달라는 뜻에서 고건 전 총리를 기용했는데 그가 양쪽을 끌어당기기는커녕 스스로 고립됐다고 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보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고건 전 총리에겐 치명타다. '가을 햇볕정책'이 보수와 진보 양쪽에 다리를 걸치는 '곁눈질 정책'으로 비판 받는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 전 총리의 통합 리더십 부재를 대놓고 비판했다. 정책도 문제려니와 정책 추진능력도 없다는 평가에 다름 아니다.

이 점을 우려한 걸까? 김근태 의장은 이미 '가을 햇볕정책'을 '안 맞는 얘기'로, 그 주창자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논쟁이 불가피하다"고 평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퇴로마저 막아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예민한 문제를 꺼냈다. 대북송금 특검 문제다. "남북 간에 대화와 교류에 있어서 국민들의 요구가 투명성이기 때문에 (대북송금 특검을)받아들여 수용했다"고 했다.

대북송금 특검 문제가 불거지는 순간 대북정책의 원칙은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입장을 밝혔으니 이제 통합신당파가 말할 차례다. 하지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먼저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계승을 주장하는 통합신당파에 맞서 '원칙있는' 또는 '투명한' 대북정책을 거론했다. 구도를 세운 것이다. 포용정책은 계승하되 혁신하는(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통합신당파의 대북정책을 '원칙없는' 것으로 폄하했다.

이렇게 가면 호남지역에서의 지지를 상실할 수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을 '지역주의 회귀'로 규정했다. 이 건 통합신당파의 또 하나의 모토, 즉 '개혁'에 대한 대항명제다.

a 지나 21일 오후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지나 21일 오후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홈페이지


결투장 형성하는 노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통합신당파의 '평화'와 '개혁' 모토를 '원칙 부재'와 '지역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즉 통합신당파와 친노파가 갈라서는 순간을 대비해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

명분을 축적할 뿐 아니라 결집하고 있다. 지지세력 결집이다. 구도가 명확해지면 편이 갈리는 법이다. 명분 또는 목표가 뚜렷하면 적극적 지지자뿐 아니라 비판적 지지자도 끌어들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울타리를 치고 있다. 결투장을 구획하는 울타리다. 이 울타리를 노무현 대통령이 선도적으로 치면 결투장은 '홈'이 된다. 나쁠 게 없다.

울타리를 완성하려면 한 항목에 대해 마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번영'이다. 하지만 이 항목은 아직 운위할 때가 아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돌파구로 삼고 있는 한미FTA도 시간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문제, '번영' 항목을 구성하는 요소가 결과를 내놓기 전에 결투가 개시될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는 내년 2월 14일로 잡혀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번영'은 승패를 가르는 중요 변수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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