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일본은 할 만큼 했다?

무라야마 담화 진정성 결여...일왕 사과와 정부재원 배상 이뤄져야

등록 2007.02.15 14:36수정 2007.02.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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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상정에 관한 가토 로죠 주미일본대사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2월 13일자 일본 <지지통신>.

미 의회 '위안부 결의안' 상정에 관한 가토 로죠 주미일본대사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2월 13일자 일본 <지지통신>. ⓒ <지지통신>

미 하원에서의 '위안부(영어 신조어는 Ianfu)' 결의안 채택 여부가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13일자 워싱턴발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지난 13일 가토 로죠 주미일본대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결의안 채택 저지' 결의를 천명하면서 결의안 상정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가토 대사는 "일본이 이미 성의 있는 대응을 했는데도, 해결된 일을 또 문제 삼으며 조건을 붙이고 있다"면서 "(이것이) 일미관계에 악영항을 미친다"라고 발언했다고 <지지통신>은 전했다.

지난 1995년 무라야마 도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담은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것과 관련하여 가토 대사는 "이미 일본이 취한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서 "(결의안) 채택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주미일본대사의 반응을 보면서 피해 당사국 국민들은 '일본은 여전히 파렴치하다'고 느낄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가토 대사는 "해결된 일을 또 문제 삼는다"면서 불쾌감을 표시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할 만큼 했나?

@BRI@그런데 여기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가해자측과 피해자측 사이에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반응은 비단 가토 대사만이 표출하는 게 아니다. 상당수 일본인들이 유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이미 할 만큼 다 했는데, 왜 주변국들은 끊임없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가?"라는 게 일본인들의 대체적인 불만이다.

그럼, 혹시라도 일본이 정말로 할 만큼 다한 것은 아닐까? 혹시 한국인들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그간 일본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가토 대사가 말한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이란 것은 1995년 8월 15일의 무라야마 담화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약칭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과 행동을 통해 일본은 성의 있게 '보상(償い)'하려 했는데, 피해국에서 '보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일본의 공식적인 반응이다.

'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무라야마 담화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라면서 "이러한 역사가 초래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바칩니다"라고 사과했다.


무라야마 담화가 '말'을 통한 사과였다면,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은 '행동'을 통한 사과라는 게 일본인들의 인식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설립취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출자금과 국내외의 모금으로 형성된 이 재단법인은 1995년 7월에 발족하여 동년 12월 총리부와 외무성의 공영법인 형식으로 설립허가를 받았다. 현재는 외무성 소관으로 변경되어 있다.

그런데 재정문제와 관련하여 아시아여성기금은 이원론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무국 운영경비는 일본 정부가 지원하지만, 위안부 '보상금'은 일반 모금을 통해 조성하는 방식이다. 즉 국내외 모금으로 조성된 자금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설립 초기에 이러한 방식이 한국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일본이 이러한 모금 방식을 취하는 데에는 중요한 현실적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도 일본 정부는 일본인 위안부·간호부나 도쿄 대공습 당시 민간인 피해자들에게 공식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자국인 피해자에게도 배상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위안부들에게 배상하기는 힘들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여성기금 "한국측의 방해로 보상 못했다"

1995년 12월 설립허가 이후 아시아여성기금은 피해국들을 상대로 '보상' 활동에 착수하였다. 아시아여성기금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사업 개요에 따르면, 이 단체는 1996년 8월 17일부터 필리핀·한국·대만·인도네시아·네덜란드를 상대로 '보상' 작업을 시작하였다.

a 일본 아시아여성기금 홈페이지에 소개된 2007년 2월 현재 사업 내역.

일본 아시아여성기금 홈페이지에 소개된 2007년 2월 현재 사업 내역. ⓒ 아시아여성기금

표에 따르면, 필리핀·한국·대만에 대해서는 '보상금' 200만엔 제공 외에도, 120~300만엔 규모의 의료·복지 지원과 함께 개별적으로 총리의 사과 편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네덜란드에 대해서는 '보상금'과 편지 전달 없이 의료복지 및 사회복지 지원만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표에 보면, 한국 난의 세 번째 칸에 "사업의 상세내역은 이쪽으로"라는 링크가 있다. 이 자료를 링크하면 한국 활동의 내용이 소개된다.

a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의 한국 활동 내역.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의 한국 활동 내역. ⓒ 아시아여성기금

이 보고서에서 아시아여성기금은 1996년 8월부터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언론·시민단체의 방해 내지는 비협조 때문에 활동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 역시 '보상금' 액수에 불만을 피력했다고 이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 "다른 많은 사람들은 보상금이 200만엔이라는 금액인 것은 성의 있는 조치라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태도였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보상금이 200만엔이라는 금액인 것은 성의 있는 조치라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태도였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 아시아 여성기금

"만나 본 피해자 중에서 김학순씨 외 2명이 기금을 거부하겠다고 언명했습니다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보상금이 200만엔이라는 금액인 것은 성의 있는 조치라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태도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아시아여성기금은 자신들의 활동이 실패한 이유가 한국 정부·언론·시민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의 금액 불만 때문이기도 하였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한국 등에서는 일본이 정부 배상도 아닌 민간 모금으로 문제를 대충 무마하려 한다는 불만이 팽배했는데, 일본에서는 그러한 한국 등의 정서를 제대로 모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한편, 아시아여성기금은 기금 수령에 동의한 7명의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고 보고했다. 다음은 이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한국인 피해자(기금 수령자)의 말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본정부로부터 이러한 총리의 사죄와 돈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시아여성기금 보고서는 이 7명에 관한 이야기를 상당히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 정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으며 그 돈이 수술비 등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점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아시아여성기금은 한국측의 비협조 때문에 '보상' 활동이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었다면서, 1999년부터 할 수 없이 의료지원 활동으로 선회했지만 그것 역시 여의치 않아서 1999년 7월부터는 한국 활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5년 1월 24일 일본 외무성은 그간 6억엔의 기금이 조성되었고 위안부 피해자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면서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을 2007년 3월에 종료한다고 발표하였다.

a 지난 2005년 1월 24일 일본 외무성은 그간 6억엔의 기금이 조성되었고 위안부 피해자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면서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을 2007년 3월에 종료한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2005년 1월 24일 일본 외무성은 그간 6억엔의 기금이 조성되었고 위안부 피해자들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면서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을 2007년 3월에 종료한다고 발표하였다. ⓒ 일본 외무성

위와 같이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이미 사과의 뜻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여성기금 활동을 통해 위안부 '보상' 활동을 성공리에 끝냈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측의 비협조와 방해 때문에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보상금'을 수령한 7명의 한국인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총리에게 감사를 표하기까지 했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일본은 '성의 있는 대응'을 하였는데,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논의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가토 로죠 주미일본대사의 신경질적 반응이다.

위와 같이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할 만큼 다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등의 배상 요구에 대해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보상' 활동을 올해 3월에 종료하는 것도 이미 할 만큼 다 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했다는 건 일본인들의 착각

피해자측의 분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는데 일본측은 이미 할 만큼 다 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일본인들의 착각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착각은 다음 3가지다.

첫째, 일본인들은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로 일본인들의 사과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과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 형식적으로 볼 때 그것은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해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그 집단의 대표자가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표자가 죽은 경우에는 그 대표자를 승계한 자가 사과를 해야 한다.

일본인들은 실권자인 총리가 사과했으니,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위안부 만행의 최고 책임자는 일본 국왕(이른바 '천황')이었다. 당시에도 총리가 있었지만, 세계 인류는 일본 국왕에게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히로히토 국왕이 이미 죽고 없다. 그렇다면, 그 히로히토의 계승자가 사과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 누가 히로히토의 계승자인가? 일본 총리는 결코 아닐 것이다. 일본 총리가 일본 국왕의 계승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계승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정치적 실권이 있느냐 여부가 아니다. 일본 국왕의 자리는 정치적 실권자에게 계승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왕실전범 제2조에 따르면, 왕위계승순위는 ①왕세자 ②왕세손 ③왕세자의 기타 자손 ④제2왕자 및 그 자손 ⑤기타 왕자 및 그 자손 ⑥왕의 형제 및 그 자손 ⑦왕의 백부·숙부와 그 자손 ⑧기타 최근친으로 되어 있다. 누가 히로히토의 계승자인가는 바로 왕실전범에서 잘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위안부 만행의 최고 책임자인 히로히토가 죽고 없다면, 그의 계승자인 일본 국왕이 사과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정치적 실권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현 국왕을 히로히토의 계승자가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민간모금 '보상' 말고 정부재원으로 '배상'해야

둘째, 일본은 개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로써 사과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써 사과가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 아시아여성기금에서는 피해 여성들을 개별적으로 방문하여 총리의 사과 편지를 읽어 주었다. 이런 형식으로 개별적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는 2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피해국 국민 전체와 개별 피해자가 모두 위안부 피해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개별 피해자에게도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국 국민 전체에게도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개별 피해자 외에도 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위안부 만행은 위안부 개인에 대한 범행인 동시에 피해국 자체에 대한 범행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일본은 한국이 아시아여성기금을 거부한 이유가 금액 때문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기금의 액수는 본질이 아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을 거부한 것은 그 액수 때문이 아니라 그 모금방식 때문이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사과를 했다고 할 수 있으려면, 일본 정부가 직접 재원을 마련하여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 모금으로 민간 법인을 만들어 배상도 아닌 보상을 하려 했기 때문에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배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일본의 태도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일본이 얼마 되지도 않는 돈으로 빈곤한 피해자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을 도리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일본 국왕과 총리가 피해국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사죄하고 피해에 상응하는 충분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해결된 문제를 또 끄집어낸다"며 짜증을 부리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으므로 피해국들은 계속 요구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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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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