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독립' 힘겨루기, 일단 중국의 판정승

대만의 애국독립운동 '2·28사건' 60주년에 부쳐

등록 2007.02.28 19:39수정 2007.03.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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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臺灣)과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로 닮은 점이 많다. 1945년 해방 직후 극심한 이념분쟁으로 동족간의 비극적 살육사건이 빈발하고 결국 분단국으로 탄생한 원죄 때문에 엄청난 국방비를 부담하며 힘겹게 현대화를 이뤄올 수밖에 없었다.

정치, 경제적으로도 장기간의 독재를 경험하며 수출 지향적 개발독재를 거친 점도 흡사하다. 통일을 민족적 염원으로 설정해 놓고 있지만 그 과정상의 난제들로 인해 통일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국론분열을 겪고 있는 것도 양국의 동병상련 부분이다. 또한 국제소식의 추악한 일면을 장식하는 국회에서의 몸싸움 등의 난동사건들도 그 발원지가 우리나라 아니면 대만일 때가 많다.

이와 같은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공유한데다가 냉전시대 자유진영의 같은 배를 탔던 우리나라와 대만은 특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에서 대만 친구들을 만나면 꼭 듣게 되는 애증이 어린 얘기가 있다. 바로 한국전쟁에 대만이 파병을 했다는 것과 1992년 8월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얼마나 냉정하고 의리 없게 대만이라는 친구를 버렸는가에 대한 서운함에 관한 것이었다.

국익을 위한 냉혹하고 비정한 선택이 외교의 현실이라지만 혈맹과도 같던 대만을 손바닥 뒤집듯이 국교를 단절한 과정상의 실책은 우리 외교사에 오래도록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아무튼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었고 그래서 필자가 고등학교, 대학교 1, 2학년 과정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는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로, 중국어 발음 표기도 지금의 영어식 한어병음방안이 아닌 주음부호를 썼었다.

a 영화 <비정성시>는 2.28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비정성시>는 2.28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 김대오

당시 적대적인 공산국가였던 중국관련 서적은 구하기도 쉽지 않았으며 내용에 대한 사전검열도 엄격하던 때였다. 자연히 관심은 대만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눈을 확 뜨게 해준 영화가 있었다. 바로 1989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허우샤오시엔(侯孝賢)감독의 <비정성시(悲情城市,비정한 도시)>였다.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겪는 한 가족사의 애환을 통해 대만현대사의 가장 민감하고 아픈 부분을 절제된 언어로, 감동적으로 그려냈던 영화 <비정성시>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1947년 2월 28일 발생한 이른바 2·28사건이다.


2·28사건은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주하면서 대만인들을 착취하고 차별하는 것에서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개가 가자, 돼지가 왔구나'는 말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자 들어온 국민당의 통치가 일본보다 더 악랄했다는 대만사람들 간의 은어로 통할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2·28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臺北)에서 부패한 정부관리인 밀매단속반원들이 담배밀매상 여인을 심하게 구타하는 것을 본 대만인이 이에 항의하다 사상당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음날 대만인들은 자치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32개조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외지인들을 공격했고 국민당은 군대를 동원하여 대만인들을 무자비하게 무력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학살된 타인완인은 3만명에 이르고 이때 발효된 계엄령은 40년이 지난 1987년에야 비로소 해제된다.


대만인들의 애국독립운동으로 평가되는 2·28사건은 대만 본성인들에게 깊은 상처와 함께 외성인들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고 외성인들에게는 씻을 수없는 원죄를 가져다주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만 총통 천쉐이삐엔(陳水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가 대만독립의 최적기라고 판단하고 대만독립을 주장해 왔으나 총선 패배로 국민투표 실시 자체가 어려워졌다.

또 중국이 2005년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하며 대만독립에 대한 무력사용을 직접적으로 천명했고 중국정부가 롄잔(連戰) 국민당 전 주석과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주석 등 최고위 정치인들을 대륙으로 초청하며 적극적으로 평화 공세에 나서자 최근에는 표면적으로 대만독립을 거론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인들의 20%만이 대만독립을 찬성하고 나머지 20%는 반대, 50%는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중국은 인민대회당에서 2·28사건 60주년 기념식을 갖고 대만독립을 포기하는 것만이 2·28사건으로 희생된 선현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이며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통한 통일을 강조했다.

대만으로서는 최대교역국이자 최대흑자국인 중국과의 경제교역에 장애가 되는 정치적인 대결구도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며 대만인들도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대만독립'을 둘러싼 양안간의 힘겨루기는 현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일단 중국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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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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