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킬리만자로, 그러나 표범은 없다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 ②]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등록 2007.06.06 10:49수정 2007.06.07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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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산장에서 바라본 키보봉. 구름에 가려져 정상을 볼 수 없었다. ⓒ 조수영


여행 4일(1월 5일)째,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국경도시 나망가(Namanga)를 통과하는 나망가 루트이다. 많은 버스 회사가 나이로비에서 나망가를 거쳐 아루샤(Arusha)·모시(Moshi)까지 가는 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니 안내원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개인별로 콜라나 환타를 한 병씩 나누어 준다. 그것도 뚜껑을 따고 빨대까지 꽂아서 말이다. 서비스인 것 같은데 한 병을 다 마시라니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다.

시내를 벗어나니 곧바로 초원이 펼쳐져 있다. 붉은 망토를 입은 마사이족 사람들이 도로 옆을 지나간다. 부근에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마사이족은 하루에 몇십㎞를 걸어다닌다고 하더니 탄자니아 국경까지 걸어가려는 것일까?

나이로비에서 출발한 버스는 3시간을 달려 나망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우선 케냐의 이민국에서 출국 수속을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으니 이번에는 탄자니아 이민국이 있다. 버스 단위로 우루루 내려서 수속하는 모습이 마치 단체 관광객 같다.

만년설이 빛나는 산, 킬리만자로

탄자니아 이민국에서 한국인 일행을 만났다. 모두들 얼굴이 까맣게 타고 코끝이 벗겨졌다. 킬리만자로 등반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첫 번째 산장까지만 갈 것이라는 소박한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정상에서의 들뜬 기분을 이야기해주며 4박5일의 등반을 꼭 해보라고 권한다.

나이로비를 떠난 지 7시간 반이 지나서야 아루샤에 도착했다. 아루샤는 세렝게티와 킬리만자로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에 숙소를 잡는다. 우리도 원래는 아루샤에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강도나 도난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고 킬리만자로에 더 가까운 모시로 옮기기로 했다.

아루샤에서 모시로 가는 길에는 왼쪽으로 메루산(4566m)이, 전방으로는 구름으로 정상을 가린 킬리만자로가 보였다. 뾰족한 산이 아니라 거대한 절벽을 펼쳐진 모양이다. 이렇게 멀리서도 보이니 굉장한 크기다. 킬리만자로 등반의 거점도시인 모시는 시내 중심의 시계탑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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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와 탄자니아 국경.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국경도시 나망가(Namanga)를 통과하는 나망가 루트이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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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시내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 ⓒ 조수영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위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동남쪽으로 길고 넓게 타원형으로 자리 잡은 화산은 서쪽부터 시라봉(Shira, 3962m), 키보봉(Kibo, 5895m), 마웬지봉(Mawenzi, 5149m)의 세봉우리가 있다. 그 중 만년설로 덮여 있는 키보봉이 가장 높은데 그 정상을 우후루(Uhuru) 피크라 부른다.

세 개의 봉우리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키보와 마웬지라는 형제가 있었다. 게으른 마웬지는 늘 형인 키보에게 와서 불씨를 빌려달라고 했다. 어느 날 마웬지가 하루에 세 번씩이나 불을 꺼뜨리고 불씨를 빌리러 왔다. 화가 난 키보가 마웬지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이유로 지금처럼 마웬지의 정상이 찌그러졌다는 이야기다.

킬리만자로는 1848년 독일 선교사 레프만(Rebmann)과 크라프(Krapf)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처음에 유럽 사람들은 적도가 있는 아프리카에 만년설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1889년, 독일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ans Meyer)와 오스트리아 등산가 푸르트쉘러(Purtscheller)가 만년설이 있는 정상까지 등정함으로써 증명이 되었다. 마웬지봉은 1912년 독일 지리학자 클루테(Klute)에 의해 처음으로 등정되었다. 킬리만자로로 들어서는 마랑구게이트에는 그들에 대한 기록이 써있는 비석이 있다.

영국여왕, 조카 생일선물로 킬리만자로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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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루트는 가장 일반적인 마랑구 루트를 포함하여 모두 6개의 루트가 있다. 완만한 '마랑구 루트', 오르기 힘들지만 경치가 좋은 '움브웨 루트'와 '시라 루트', 빠른 고도 상승으로 고소적응이 힘든 '마차메 루트', 산을 가로지르는 '므웨카 루트', 그리고 '롱가이 루트'가 있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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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족 여인. 멀리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보인다. ⓒ 조수영

원래 킬리만자로는 케냐의 땅이었다. 당시 케냐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와 두 번째인 케냐산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케냐는 영국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탕카니카(지금의 탄자니아)는 그녀의 조카인 독일 황제가 지배를 하고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조카는 숙모에게 둘 중 하나만 달라고 졸랐다. 조카를 사랑하는 영국 여왕은 킬리만자로가 탕가니카로 들어가도록 지도에 자를 대고 국경을 주욱 그었다. 이로써 아프리카의 왕관 킬리만자로는 조카의 생일선물로 탕카니카에 넘어가 버렸다. 또한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도 이 일로 결정지어 졌다.

"킬리만자로의 정상 부근에는 말라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하나 있다.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레고리 팩 주연의 영화로 더욱 알려진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사냥 여행을 나섰다가 킬리만자로 기슭에서 패혈증이 원인이 되어 죽음의 고비에 이른다. 삶의 극한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비로소 인생에 눈을 뜬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소설보다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더 유명하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방황과 꿈, 희망을 대변하는 듯한 긴 독백이 이어진다. 이 곡은 작가 양인자씨가 신춘문예에 낙방하고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 당선되는 날 당선소감으로 미리 쓴 것에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씨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라고 한다.

썩은 고기같은 비교적 쉬운 먹이감만 찾으려 하는 하이에나처럼 현실의 이익만을 쫓지 많고 삶의 목적과 자신의 꿈을 찾아가야겠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또한 설사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정상에서 죽은 표범처럼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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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산장으로 오르는 길에는 열대우림이 이어진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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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6시간 동행의 대가는 1만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터는 그 절반 수준이라 하니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가이드들의 대부분은 차카족(Cagga)인데 그들은 킬리만자로와 모시 부근에서 살고 있다. ⓒ 조수영

사냥을 마친 표범은 먹이를 도둑맞지 않기 위해 일단 높은 나뭇가지 위에 숨긴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둔다. 표범이 바로 사냥한 먹이를 먹지 않는 것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고기는 너무 질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와인에 재워놓은 삼겹살을 좋아하듯이 고기를 숙성시키는 것이다. 고기가 연해질 때까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한숨 자고 나면 연하고 맛있는 먹이가 된다.

그러나 표범은 킬리만자로 정상과 같은 자연환경에서는 살지 않는다. 숨을 만한 숲이나 나무 그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표범이 화산탄과 바위로 이어지는 기나긴 길을 4박5일이나 걸려서 갈 이유가 없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등산객 중에 정상에서 표범을 보았다는 사람을 아무도 없다.

헤밍웨이는 표범을 통해 죽는 순간까지 이상향을 쫓았다는 것은 말하고 싶었겠지만 여러 모로 맞지 않다.

생뚱맞은 나의 생각으론 필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표범이거나 왕따를 당해서 집단에서 쫓겨난 표범일 것이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가서 기대한 것이 없었다면 내려오면 될 것이지 굳이 정상에서 죽을 이유는 없다. 혹시 적에게 쫓기다 이 곳까지 왔는데 너무 급히 산을 올라서 고산증세로 죽었을 가능성은 있다.

이러한 나의 해석에 일행들은 모두 비난을 퍼부었다.

킬리만자로에 모여있는 원시림·사막·빙하

킬리만자로는 높이만큼이나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마랑구 게이트(입산신고소, 1980m)에서 만다라 산장(2700m)까지는 원시림 지대, 만다라 산장에서 호롬보 산장(3700m)까지는 관목 지대, 호롬보 산장에서 키보 산장(4700m)까지는 고산성 사막 지대이다. 그리고 키보 산장부터 길만 포인트(5685m)까지는 화산재로 이루어진 45~50도의 경사 지대이며, 길만스 포인트에서 우후루 피크(5895m)까지는 빙하로 덮인 용암 지대이다.

등반루트는 가장 일반적인 마랑구 루트를 포함하여 모두 6개의 루트가 있다. 완만한 '마랑구 루트', 오르기 힘들지만 경치가 좋은 '움브웨 루트'와 '시라 루트', 빠른 고도 상승으로 고소적응이 힘든 '마차메 루트', 산을 가로지르는 '므웨카 루트', 그리고 '롱가이 루트'가 있다.

우리는 코스가 완만하고 가장 쉬운 '마랑구 루트'로 가기로 했다. 일명 '코카콜라 루트'로 불릴 정도로 가장 쉬운 코스라 하지만, 산에 오르는 걸 죽어라고 싫어하는 나에게는 충분히 힘든 코스이다. 정상까지는 보통 4박5일이 걸리고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도 오를 수 있는 루트이지만 3000m가 넘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산증세로 도중에 포기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산, 킬리만자로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전날부터 긴장이 된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이 곳 맥주 '킬리만자로'를 보고도 참았다. 모시 시내에서 킬리만자로 등반의 출발점인 마랑구 게이트까지 가는 동안 황토빛 대지와 초목이 펼쳐 있다.

마랑구 게이트(1829m)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 공원사무소에서 입산등록을 하고 요금을 지불한다. 수속을 끝내고 울창한 아열대 우림 지역을 따라 오른다.

경로의 절반 정도는 완만한 비탈길로 되어 있었다. 삼나무와 향나무, 올리브 나무들 사이에 덩굴식물과 이끼들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길은 촉촉하게 젖어 있고 숲은 더욱 깊어만 간다.

울창한 정글이라서 직사광선을 피할 수는 있으나 공기는 습해서 훅훅 달아오른다. 비가 자주 내리는 지대라서 비가 내린 흑토는 미끄러지기 쉽다.

산을 오르면서 조용필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라는 부분만 계속 중얼거릴 뿐, 노래 부분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래방에 가서 연습이나 한번 하고 올 것을….

'뽈레뽈레' 오른 만다라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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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m에 자리 잡은 만다라 산장. 정상으로 가는 사람들은 이 곳에 있는 A자 모양의 통나무집에서 하루를 머문다. ⓒ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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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를 내려오는 길에 만난 차카족 소년. 차카족은 킬리만자로 부근에서 커피를 재배하며 사는 부족이다. ⓒ 조수영

산행은 상상했던 것보다 힘들지 않았다. 자만심에 좀 앞서 걸었더니 가이드가 "뽈레뽈레"를 외친다. '천천히'라는 뜻이다. 급격한 고도의 차이는 없지만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오르는 것이 고산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빈 몸에 카메라만 달랑 들었는데도 헉헉 거리고 있지만, 가이드와 도시락을 든 포터는 가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을 뿐이다. 중간중간 쉬는 동안에 우리에게 과일과 물도 건네준다.

가이드의 동행의 대가는 1만원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지불한 돈의 대부분은 여행사 사장의 몫이다. 안타깝지만 허가받은 사업자만이 가이드를 고용하고 안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터는 그 절반 수준이라 하니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가이드들의 대부분은 차카족(Cagga)인데, 그들은 킬리만자로와 모시 부근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일찍이 킬리만자로의 눈이 녹은 물을 이용하여 이 곳에서 커피 농사를 지으며 산 사람들이다.

정글을 벗어나 전망이 트이기 시작하는 장소에 만다라 산장(해발 2700m)이 있다. 등반을 시작한 지 4시간 쯤 된 것 같다. 언덕에 A자형 통나무집들이 줄지어 있다.

포터들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샌드위치 두 조각과 바나나, 음료수, 닭다리 한 개. 투어 가격을 싸게 흥정해서 좋아라 했는데 도시락은 영 부실하다.

산장을 조금 지나면 마운디 분화구(2800m)가 있다. 식사 후 마운디 분화구에 올랐다.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이다. 원래 키보와 마웬지의 정상까지 볼 수 있다는 데 구름에 가려서 마웬지는 보이지 않았다.

막상 이 곳까지 오르니 구름 뒤의 정상까지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하산을 서둘렀다.

'킬리만자로' 맥주 마시며 산행 성공파티

내려오는 길에 차카족 소년들을 만났다. 약간 둥근 코와 중간 두께의 입술의 아이들은 이름처럼 정말 착하게 생겼다. 어린 아이들이 산에서 자신의 덩치만한 나무를 해서는 머리에 이고 내려오고 있었다.

가방에 있던 선물을 꺼내어 건네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청했다. 거절도 그렇다고 승낙도 못하고 어찌할 바 모르는 이 아이들의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오르는 길은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길은 훨씬 가볍다. 햇빛이 비치는 방향이 변해서 인지 올랐던 길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정상까지 등산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우습겠지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서 나름 성공적인 산행을 축하하는 파티를 했다. 어젯밤 마시지 못한 이 곳의 맥주 '킬리만자로'로 말이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매년 그 크기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킬리만자로산 정상부의 얼음은 지난 80년간 82%가 사라졌다고 한다.

지난해 유엔환경계획(UNEP)는 아프리카의 삼림 축소와 산업 공해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산과 두 번째로 높은 케냐산(5199m) 꼭대기를 덮고 있는 얼음이 앞으로 25~5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단 킬리만자로의 만년설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온난화와 기상이변에 인류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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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와 향나무, 올리브 나무들 사이에 덩굴식물과 이끼들이 치렁치렁 매달려 있다. ⓒ 조수영

덧붙이는 글 |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

덧붙이는 글 <생뚱맞은 과학선생의 아프리카 여행>는 3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이다. 케냐- 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를 거쳐 6개국을 2006년 1월 2일부터 1월 31일까지 여행했다.
#킬리만자로 #키보 #마웬지 #나망가 #아루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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