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강화도, 수오멘린나 섬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24] 핀란드 헬싱키 2

등록 2007.03.19 11:17수정 2007.03.2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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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전의 우중충한 날씨가 정오가 되며 개다.

오전의 우중충한 날씨가 정오가 되며 개다. ⓒ 강병구

로바니에미에서 헬싱키로 돌아와 겪은 몇 가지 일들은 더 이상 핀란드에 있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원래는 헬싱키에서 이틀 정도를 더 머물며 좀 더 둘러볼 요량이었지만, 도착 이후부터 겪게 된 일들은 마치 더 이상 나의 헬싱키, 핀란드 여행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먼저 17일 오전, 다시 도착한 헬싱키는 떠났을 때의 날씨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추워져 있었다. 마치 추운 로바니에미의 날씨가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헬싱키로 온 듯했다. '헬싱키에 가면 다시 따뜻해지겠지'란 내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더구나 짐이 무거워 겨울옷을 로바니에미로 출발하기 전 한국으로 보냈기에 추워도 더 입을 게 없었다.


두 번째로 정선님에게 소개받은 한국인 민박에서 얽힌 일이 더해졌다. 러시아를 떠나온 뒤로 줄 곳 유스호스텔만 머물다보니, 한인 민박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다 산타마을에서 만난 정선님이 헬싱키의 한인 민박을 소개해 주셔서 헬싱키에 가면 그곳에서 머물러야겠다 생각하고 헬싱키로 돌아왔다.

전화번호만 알아온 상태라 헬싱키에서 직접 전화를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중앙역에서 배를 타는 여객터미널까지, 모든 키오스크(간단한 식료품 같은 것을 파는 상점)에 전화카드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동전으로 거는 전화기를 찾아 전화를 하려하니 동전을 먹어버렸다.

더구나 우여곡절 끝에 전화를 해보니 먼저 받은 예약으로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15유로 이상을 쓰고 민박집에 통화를 해서 방이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고,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아파오니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나마 믿었던 유스호스텔도 무슨 일인지 방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런 일로 언제 다시 가보게 될지 모를 헬싱키 여행을 도중에 포기한 것이 한심하게도 생각되지만, 그땐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다음 여행지인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떠나기로 마음 먹고 배편을 구했다.

무심결에 찾아간 수오멘린나 섬


a 스톡홀름행 페리에서 본 수오멘린나 요새의 전경

스톡홀름행 페리에서 본 수오멘린나 요새의 전경 ⓒ 강병구

유레일패스로 무료이용이 가능한 스톡홀름행 실자라인을 예약하고 여객터미널에서 나오니 낮12시 정도가 되었다. 출발이 오후 5시이니 대여섯 시간이 남은 셈이었다. 더불어 무슨 조화인지 헬싱키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나니, 비는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쨍했다. 어이가 없었다. 누굴 놀리려는 속셈인지 참….

아무튼 이렇게 되고 나니 어딘가를 가서 시간을 때워야 할 필요도 생겼고, 이대로 떠나기에는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여행서를 뒤적거리다 발견한 가볼 만한 곳이 수오멘린나 섬이었다.


여객터미널을 나와 조금 걸어가면 마켓광장이 나오는데, 그 근처에 수오멘린나 섬행 여객선을 타는 승선장이 있다. 3.80유로를 주고 왕복 티켓을 끊었다. 배를 타고 15분 정도를 가니 섬이 나온다. 조그마한 부두에 내려 섬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헬싱키의 마지막 관광을 시작했다.

a 수오멘린나 섬의 별모양 요새

수오멘린나 섬의 별모양 요새 ⓒ 강병구

수오멘린나 섬은 항구 도시인 헬싱키의 해양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요새라고 한다. 18세기 핀란드가 스웨덴의 점령지였던 시절, 당시 스웨덴은 자국과 함께 북구의 패권을 다투던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헬싱키에 요새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조선소까지 갖춘 대단한 요새가 완성되었지만, 결국 19세기 초 러시아 표트르 대제의 공격으로 점령되어 러시아령으로 바뀌었다. 러시아의 보호 아래 차치라는 형식으로 핀란드의 지위가 바뀌었지만, 수오멘린나 섬은 스웨덴 군 주둔에서 러시아 군 주둔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후 크림전쟁 등을 겪으며 방어 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a 요새 안쪽에 보존 되어 있는 포대

요새 안쪽에 보존 되어 있는 포대 ⓒ 강병구

하지만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같은 해 12월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 요새의 이름도 핀란드어로 '무장해제'를 뜻하는 수오멘린나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니 강화도가 생각났다. 비록 점령군에 의해 만들어진 점이나, 짧은 역사, 크기 등은 강화도와 전혀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 역사적 격동기 변화의 시발점이었던 점 등은 강화도를 떠올릴 만한 이유였다.

수오멘린나 섬의 기본적인 볼거리는 당시의 군사 시설물들이다. 대포와 성곽,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참호, 무기를 저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창고 등이 볼거리이다. 하긴 이런 역사적 유물들이 그렇듯 배경을 모르고 차이를 모른다면 특별히 눈에 들어올 게 있지는 않다.

비슷한 류의 구경 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문화 수준이 높다는 북구 핀란드임에도, 시설물들에 낙서가 되어 있고 포대 안에 쓰레기가 차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일까?

a 핀란드에도 오래된 포에 낙서와 쓰레기가 있다.

핀란드에도 오래된 포에 낙서와 쓰레기가 있다. ⓒ 강병구

하지만 수오멘린나 섬의 매력은 잘 보존된 역사적인 것들과 함께, 붐비지 않는 휴식처로서의 매력에 있었다. 바다가 가까운 헬싱키지만, 그중에서도 수오멘린나 섬은 해수욕장까지 갖춘 바다 접근이 용이한 곳이다. 더불어 녹색의 들판과 한가로운 풍경은 대도시와 15분 밖에 차이나지 않는 곳으로선 대단한 호사란 생각이 들었다.

수오멘린나 섬에는 있지만, 강화도에는 없다

a 복원, 보존 사업이 한창인 수오멘린나의 모습

복원, 보존 사업이 한창인 수오멘린나의 모습 ⓒ 강병구

강화도와 수오멘린나 섬을 같이 생각하며 돌아보다보니, 이런 저런 차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관광객의 구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핀란드 현지인 보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 그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인들과 독일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옛 점령지를 돌아본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일까? 하지만 수오멘린나 섬 관광안내소를 보니 영어는 물론 러시아어, 독일어 심지어 일본어로 된 안내책자와 지도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특별히 핀란드 인들과 이야기 해보지 않았기에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과거의 상처를 숨기려기보다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느낌이 충분히 들었다.

강화도 수난의 역사를 우리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1000여 년 전 고려시대의 이야기부터 배운다. 몽골의 친입으로 인한 강화도 천도, 근래에 들어서는 미국 등의 해상 수난과, 결국 나라를 잃어버리는 치욕으로 이어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은 좋던 싫던 우리의 역사이다.

이런 것을 몽고인과 미국인, 일본인에게 관광 상품으로 판다고 생각하면 내가 치부를 들어내면서까지 돈을 갈구하는 황금만능에 빠진 사람일까? 그렇게 생각된다면 핀란드 사람들의 수오멘린나 관광 상품화는 어떻게 봐야할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a 수오멘린나 섬 안쪽의 성곽 모습

수오멘린나 섬 안쪽의 성곽 모습 ⓒ 강병구

이외에도 고인돌 등의 매력적인 문화유산을 우리끼리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외국인들에게는 더구나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냥 답답하단 생각이 들었다. 강화도에 비하자면 고작 작은 요새일 뿐인 수오멘린나 섬이 세계인의 마음속의 문화적 크기로는 강화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씁쓸해졌다.

이래저래 씁쓸한 헬싱키의 마지막 날이었다.

[여행팁 17] 헬싱키에서 2

▲ 마켓광장에서 본 우스펜스키 사원
ⓒ강병구
휘바 민박 : 필자가 가보지 못한 관계로 시설의 상태를 확인해 줄 수는 없지만, 헬싱키에도 한인 민박이 있다는 걸 알려둔다는 점에서 소개한다. 주로 비즈니스맨들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 시설을 나쁠 것 같지 않다. 연락처 : http://blog.naver.com/helsinkistay

이외의 볼 것들 : 이번 여행기 처음에도 이야기했지만, 필자와 헬싱키, 핀란드와의 여행궁합문제로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 만하다. 하지만 헬싱키가 볼 것이 없는 곳은 아니다.

항구 마켓광장의 포장마차에서 신선한 해산물, 과일 등의 먹거리를 사거나, 기념품을 사는 재미도 괜찮은 여행코스이고, 건물이 인상적인 우스펜스키 사원, 헬싱키 대성당을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특히 돌로된 동굴 속에 만들어진 듯한 템필리아우키오 교회나 너무나 한가로운 시벨리우스 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큰 재미이다.

스톨홀름 가기 : 핀란드 이웃국가인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지도를 보면 철도로도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상 배편으로 가는 방법뿐이 없다.

돌아가는 거리상의 문제나, 여행의 시간적 제약을 생각한다면, 기차를 타고 스톨홀름으로 가는 일은 여행객에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여유를 갖고 북유럽을 샅샅이 둘러볼 요량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배로 가는 방법은 다음 여행기에 자세히 소개하겠다.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3월 26일(월요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3월 26일(월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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