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를 찾아 라플란드로

[무작정 떠난 러시아-유럽여행 23] 핀란드 로바니에미

등록 2007.03.12 11:04수정 2007.03.1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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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로 달린 13시간

a 로바니에미로 가는 기차에서 찍은 핀란드의 들판 모습

로바니에미로 가는 기차에서 찍은 핀란드의 들판 모습 ⓒ 강병구

헬싱키의 짧은 인상을 뒤로하고 15일 저녁 기차를 타고 로바니에미로 출발했다. 러시아에서도 그랬지만, 백야가 시작된 북국의 밤은 밤이 아니다. 저녁 7시에 기차를 타고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기차. 시간이 지나가지만 하늘은 밤이 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내가 탄 칸에는 핀란드 아저씨 한 분과 젊은 군인 한 명이 탔다. 핀란드에서 군인이라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일리톨과 함께 조용함과 평화로움만 생각되는 핀란드이기에 군인은 왠지 낯설었다.

낯선 동양인을 보아서인지 잠시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무뚝뚝한 표정이 익숙한 북구의 사람이랄까? 몇 마디 인사와 소개를 하고는 당연하다는 듯 시트를 깔고 자리에들 눕는다. 여하튼 그런 사람들과 함께 밤이 되는 법도 잊어버린, 별도 안 보이는 밤하늘을 보며 잠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보니 아침 7시다. 도착하기에는 30여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같이 탔던 아저씨는 이미 내렸고, 낯설기 만한 핀란드 군인이 기상준비 중이다. 멀대 같이 큰 키에 벗었던 옷들을 하나씩 주섬주섬 입고, 양말과 군화를 신는 모습이 왠지 재미있어 보인다(러시아에서도 그랬지만, 기차에 같이 탄 많은 북구 남자들은 잠을 잘 때 옷들을 홀딱 벗고 잤다 ^^;).

내가 쳐다보는 것이 신경 쓰였는지 슬쩍 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는다. 19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체구와는 잘 안 맞는 듯하지만, 웃는 얼굴에 웃음으로 답해야하지 않나.

이런 기차여행이 끝나고 내린 로바니에미 역은 잘 꾸며진 시골 간이역 같은 느낌이다. 충분한 락커와 어김없는 유료화장실, 대형 PDP로 보이는 상황판 등 갖출 것은 다 갖췄지만, 너무 아담하다.


a 로바니에미 시내 모습

로바니에미 시내 모습 ⓒ 강병구

락커에 커다란 본 배낭을 넣고 책가방 크기의 당일용 배낭을 메고 역을 나왔다. 역을 나와 바로 느낀 것은 영하의 추위. 북극권이 시작되는 도시이고, 아침 이른 시간이기라고는 하나, 5월 초에 영하의 날씨를 겪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겨울 옷을 버릴까, 한국으로 부칠까 생각했던 점을 떠올리면 더더욱 당황스러운 일이다.

너무 이른 아침인 것인지 버스도 제대로 다니지 않아, 산타마을로 갈 버스 편을 알아보기 위해 관광안내소에 도착할 때까지 덜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길을 잘못 들고 하는 우여곡절 끝 30여분 만에 관광안내소에 도착했다.


막 문을 연 관광안내소에서 산타마을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곤, 그 버스를 탈 시간까지 눈치가 보이지만 그곳에서 기다렸다. 누구라도 왔으면 좋겠는데, 비수기라서인지 나 혼자만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내 처지를 이해한 걸까? 안내소 아가씨는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라며 나에게 편히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알려줄 테니 나가보라고 한다. 여행지에서 이렇게 대해주는 한 명의 친절이 정말 절실하게 고맙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산타마을에서 만난 산타와 한국인 요정 김정선님

a 산타마을을 가로지르는 북극선(Arctic Circle Line)

산타마을을 가로지르는 북극선(Arctic Circle Line) ⓒ 강병구

로바니에미 여행 안내소에서 안내 받은 8번 버스를 타고 산타마을로 간다. 사실 로바니에미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산타마을이 있다는 이야기에 와 보았을 뿐이다.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핀란드 산다는 산타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나오는데, 그곳이 이곳이다.

산타클로스의 바탕이라 할 만한 성 니콜라스가 핀란드 사람도 아니고, 산타클로스의 흰 수염과 빨간 복장이 20세기 초반 코카콜라사의 마케팅으로 생긴 것을 알고 있다면, 핀란드에서 산타마을을 찾는 게 바보 같이 생각될지도 모른다.

a 산타마을에서 산 북극권도착 증서

산타마을에서 산 북극권도착 증서 ⓒ 강병구

하지만 루돌프와 북극, 눈이라는 이미지가 산타와 뗄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면, 그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이곳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일일 것이다. 더구나 수많은 나라 어린이들이 오늘도 핀란드의 산타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 사실과 정말 동화 같은 이곳의 산타마을 탄생비화를 생각한다면, 한 번쯤 속아줄 수도 있는 일이다.

도착한 산타마을은 우리의 무슨 무슨 테마파크처럼 화려한 곳이 아니었다. 더구나 비수기여서인지 사람도 뜸 했고, 이런 곳이 관광명소일까? 라는 의문이 들 만큼 한가한 곳이었다.

마을 가운데의 북극권을 뜻하는 북극선(Arctic Circle Line)을 밟으며 첫 번째 과제를 하러 갔다. 과제는 다름 아니라 이곳에 있다는 북극권 도착확인증을 받는 것이었다. 썰렁한 매점 건물 한 귀퉁이에 혼자 앉아 있던 아주머니에게 말을 했더니, 꽤 소란스레 응대를 해주며 확인증을 건네주었다. 물론 돈을 받고 말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산타가 있다는 산타 오피스였다. 마을의 한가운데 있는 이곳은, 문으로 들어가 약간의 미로형 구조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산타가 있는 방이 나온다. 방과 건물 안에선 절대사진 촬영금지라는 표시가 쏠쏠한 돈 냄새를 풍겼다. 이런 모습에 빈정이 상할 수도 있었지만, 산타의 친절한 응대가 내 짐작을 벗어나게 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신라호텔과 인사동 등을 말하는 모습이 반가운 친구를 맞는 모습이다. 바쁘지 않은 시간 때문인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는 산타의 응대가 반갑기도 하다. 비록 같이 사진을 찍고 돈이 없다는 핑계로 비싼 사진을 뽑지 않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다.

a 산타가 있는 산타오피스

산타가 있는 산타오피스 ⓒ 강병구

하지만 여기까지 이러려고 왔나하고 드는 마음은, 다음으로 들어간 산타우체국에서 다 풀어졌다. 우선 산타 우체국에 간 이유는 이곳에서 마지막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부탁 겸 주문을 받아온 산타 도장이 찍힌 엽서와 카드를 보내는 것이 그것이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맞춰 도착하는 엽서는 아이를 둔 주변인들에게 꽤 많이 주문을 받아왔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그곳에는 너무나 반가운 한국인의 얼굴이 있었다. 물론 서로 한국 사람이란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내 우편물 보낼 주소를 보곤 "한국인이세요?" 하며 반갑게 알아보게 되었다.

로바니에미에 사는 유일한 한국인이시라는 '김정선'님은 산타우체국에서 일을 하는 분이셨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사람이 서로 반가워서였는지 업무도 뒤로 하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나 역시 엽서 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즐거운 이야기를 했다.

a 산타우체국에서 만난 김정선님과 동료들

산타우체국에서 만난 김정선님과 동료들 ⓒ 강병구

로바니에미에서 볼 것, 즐길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한국 사람으로서 이곳에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어려움 등도 말씀해주셨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여행에 대한 조언까지, 객지에서 만난 친누나 마냥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정선님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정선님의 말에 따르면 로바니에미는 겨울에 와야 제 맛이란다. 질리도록 탈 수 있는 스키와 오로라 구경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절정을 이루는 산타마을의 모습들은 정말 대단한 즐거움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꼭 겨울에 와서 신세지고 가겠다는 말을 하고 산타마을을 나섰다. 정선님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도와줄 테니 다음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주셨다.

북극권에선 5월에도 눈이 내린다

a 점점 우중충한 구름이 다가오는 날씨

점점 우중충한 구름이 다가오는 날씨 ⓒ 강병구

여행 안내소에서도 정선님도 말씀해 주셨지만, 이날의 날씨는 이곳에서도 기상이변이라고 했다. 2주 전까지도 눈이 쌓여있던 이곳이 갑작스레 더워져 눈이 한꺼번에 다 녹더니, 며칠 사이에 다시 영하의 날씨로 떨어지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아직 헬싱키행 기차를 타려면 몇 시간이나 시간이 남았는데, 점점 추워지는 날씨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점점 꾸물꾸물하던 날씨는 결국 작은 우박 알갱이를 뿌리더니, 눈을 날렸다. 5월 중순의 눈이라니 아무리 북극권이라지만 정말 황당했다.

a 결국 작은 우박부터 시작하다

결국 작은 우박부터 시작하다 ⓒ 강병구

너무 쌀쌀해서 외부를 돌아다닐 수 없어 실내로 피신했다. 중심가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좀 사느라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 볼 수 있는 가게는 다 들어가 봤다. 주유소 안의 작은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기도하고, 열을 내느라 뛰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인구 3만 여의 작은 도시 로바니에미를 구석구석 다 뒤지고 다녔지만, 어째 썩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음에는 오로라와 스키를 위해 제대로 와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결국 1시간이나 먼저 역안 대합실에 기차를 기다린다.

[여행팁 16] 로바니에미에서

김정선님은 로바니에미에 딱 한 분 사시는 한국 분이시다. 로바니에미는 사전준비를 하고 간다면, 작은 규모에도 충분히 즐길 거리들이 많다. 특히 겨울이면 오로라와 스키 그리고 핀란드 사우나를 실컷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북극 라플란드의 중심도시라서 라플란드의 더 북쪽의 다른 도시들을 가고자 한다면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한다. 기차는 이곳까지이다.

정선님께서 로바니에미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니, 이곳의 여행 생각이 있다면 한 번 연락해보자.

이메일 주소 : chonjiyeon1@naver.com

산타마을로 가는 버스 - 로바니에미 시내를 돌아다니는 8번 버스를 타면 된다.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오는 이 버스는, 시즌에 따라 운행시간이 조금 달라지기도 하고, 운행요금도 바뀌니 중심가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서 미리 시간표와 요금을 알아보고 가면 무난히 탈 수 있다.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기사가 너무 많이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쩔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 기사를 쓸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정비하여 앞으로는 좀 더 충실하게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사가 올라가지 않는 동안에도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여행기는 3월 19일 월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가 너무 많이 늦어진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쩔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 기사를 쓸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정비하여 앞으로는 좀 더 충실하게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사가 올라가지 않는 동안에도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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