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새는 왜 낮게 나는 것일까?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37] 호탄에서 치에모 가는 길

등록 2007.03.21 10:53수정 2007.03.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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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호탄 박물관. 한참 공사 중이지만 개관은 했다

호탄 박물관. 한참 공사 중이지만 개관은 했다 ⓒ 오창학

호탄에서의 아침을 아픈 배로 시작한다. 어제 상점에서 산 7위안짜리 꿀을 물에 타 속을 다스려 본다. 우리 중 이제껏 가장 팔팔했던 아내조차 급기야 배앓이를 시작했다. 탈진 때문인지 오전 9시에 움직이기로 했는데 오전 8시40분이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서둘러 호탄 박물관(文物館)을 찾았다. 단출한 3층 건물인데 안마당과 2층은 공사 중인지라 1층만 개방하고 있다. 내년엔 2층도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시장이나 전시물의 규모로 보아 2층까지 개관을 해도 썩 화려한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호탄 인근의 발굴 유물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뿐.


방명록을 작성하는데 반가운 한글이 보인다.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이곳을 다녀간 한국인의 흔적들. 참 묘하지, 밖에 나오면 익숙했던 모든 게 각별하다.

미이라 2구와 호탄 왕국 시절의 집기들을 보다가 벽에 게재된 실크로드 노선도에 시선이 박힌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는 장안을 거쳐 낙양, 양주를 지나 해상로를 통해 직접 일본으로 전파된 경로만 제시되어 있다. 따통(大同)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되는 경로나 한반도에서 해상을 통해 일본으로 전파되는 경로는 전혀 표시 안 되어 있다. 동북아 고대사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으며 중국 측에 협력하는 일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기를.

연옥의 고장으로 유명한 '호탄'

a 연옥으로 유명한 호탄의 강에서 옥을 줍는 현지인들. 옥으로 만든 소소한 장신구를 판매하는 일도 이들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연옥으로 유명한 호탄의 강에서 옥을 줍는 현지인들. 옥으로 만든 소소한 장신구를 판매하는 일도 이들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 오창학

오전 11시, 호탄을 벗어나는 기로에서 강가로 접어들었다. 옥의 본고장 호탄에 와서 그냥 갈 수야 있겠는가. 강은 연장 하나에 의지해 옥을 뒤지는 현지인들로 붐빈다.

과거 우기국이라 불렸던 호탄은 본시 연옥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쿤룬산에서 발원한 백옥강과 흑옥강 사이에서 나는 연옥이 풍부한데, 우리가 거쳐온 위먼관(玉門關)은 바로 이 호탄의 옥이 드나드는 관문이었다.


'완벽(完璧)'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게 한 중국사 최고의 보물 화씨벽(和氏璧)도 이 호탄의 산물이다. 보물 중에서도 옥에 대한 집착은 참 유별난 면이 있는데 후한 대의 <설문해자>를 보면 옥이 지닌 다섯 가지 미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광택이 있고 밝고 온화함은 인(仁)
2.속의 빛깔과 결을 그대로 비치는 투명함은 진(眞)
3.두드릴 때 나는 소리와 순수함과 낭랑함은 지(智)
4.깨지더라도 굽혀지지 않는 것은 의(義)
5.각은 예리하나 어떤 것도 다치지 않게 하는 미덕은 공정(公正)



한낱 미려한 돌에 이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식견이 부럽다. 그러나 이런 언어의 치장에도 불구하고 옥의 가치는 '비싸지 않은 물건은 아름답지 않다'는 베블런 효과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유한 계급에게는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의 가격이 더 문제인 것이다.

중산왕 유승(劉勝)의 무덤에서 발견된 옥수의는 2498개의 옥조각을 무게 11kg 분량의 금실로 연결하여 지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시신을 잘 보존하면 영혼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영혼을 부르고 시신의 부패를 막는다는 옥으로 수의를 만들어 시신에 입힌 것이지만 망자의 몸에 옥을 두르게 한 건 옥의 기능이 아니라 옥의 가치일 뿐이다. 비싸지 않은 옥이 과연 옥일 수 있을까?

a 옥 줍기에 여념이 없는 교수님(좌,상) 꽤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우,상) 옥 장신구를 파는 아이들에게 포위 당한 철봉씨(좌,하) 내게 집요하게 매달리던 아이 수산(우,하)

옥 줍기에 여념이 없는 교수님(좌,상) 꽤 짭짤한 성과를 올렸다(우,상) 옥 장신구를 파는 아이들에게 포위 당한 철봉씨(좌,하) 내게 집요하게 매달리던 아이 수산(우,하) ⓒ 오창학

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탓하고 값에 비해 터무니없는 효용가치를 가진 이놈을 비난하면서도 어느새 몸뚱이는 강으로 내려서고 있다. 운이 따르면 옥이라도 한 덩이 건질지 모를 일. 호탄을 벗어나는 기로의 강가에서 옥 찾기 체험 한 판이 벌어진다. 그런데 공짜로 옥을 얻는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달려들 억척스러운 여인이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깔아져 있다. 아프긴 어지간히 아픈가 보다. 은근한 걱정이 일어 차 주위를 맴돌며 캠코더에 풍경이나 담는다.

교수님은 벌써 자리를 잡으시고 옥 찾기에 여념이 없다. 참 매사에 진지하신 분. 새 연구 주제를 잡고 매진하실 때의 교수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사내의 매력이 '몰두'에 있음을 깨닫게 한 분도 교수님이신데… 오늘은 옥 찾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철봉씨는 옥 판매상 아이들에게 포위되어 강가에 고착되었다. 악다구니같이 달려드는 아이들이 귀찮으면서도 귀여운지 쉬 자릴 뜨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위구르족 어린 아이들은 중국어가 통하니 그럴 수 있으리라. 물론 위구르족 성인이라도 이렇게 외지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이라면 거래에 필요한 기초중국어 정도는 할 줄 안다. 아쉬운 건 언제나 그들이니까.

담고 싶은 장면을 캠코더와 사진기에 담고 뒤늦게 강으로 내려섰다. 한 아이가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소년의 언행이 영락없는 장사꾼이어서 흥미롭게 지켜 본 것을 옥에 대한 관심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중국 어디서나 그랬듯 상품에 대한 무심은 급격한 가격 하락을 유발한다. 조그만 옥돌에 실을 꿴 목걸이 장식꾸러미를 들이대며 자기 혼자 묻고 흥정하는데 500위안에서 300위안까지 내려갔다. 20개짜리 꾸러미니까 개당 15위안, 우리돈 2000원 가량인 셈이니 좋은 기념품이 되겠다 싶지만… 그러나 어쩌랴, 난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는 것을.

"싼스콰이!(30위안)"
더 이상 상대해 주면 안 될 것 같아 내가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일침을 놓았다.
"엥? 첸부 싼스콰이?(뭐라고, 전부 다 해서 30위안?)"
소년의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럼 그렇지 이 방법이 효과 만점이다.
"커이!(좋아)"

이게 무슨 청천의 날벼락이람. 300위안이라 불러놓고 30위안에 살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람의 체면이라는 게 있어서 뱉은 말을 줍지 못 하겠다. 그냥 좋은 기념품 생긴 셈 치고 30위안을 쓰는 수밖에.

문제는 그때부터. 그 소년에게 물건 받는 모습을 본 후로 이젠 어른들까지 가세해 흥정을 붙여온다. 어떤 장사치는 수 천 위안짜리 돌덩이(옥이라 우기지만 분명 돌이다)를 들이민다. 견디다 못해 다시 차로 후퇴했다. 철봉씨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복귀하신 교수님의 손엔 옥돌(옥이라기엔 뭐하고 옥처럼 보이는 돌)이 가득 들려져 있다. 부럽다 나도 저런 기념품 하나 가져가야 하는데… 아내도 탐이 났던지 교수님의 옥돌에 눈독을 들인다.

"교수님, 저 이거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

자못 콧김 들어가는 소리로 아양을 떠는데도 묵묵부답. 땀의 결실로 성취한 저 결과물들을 선뜻 내 놓기 힘드신 모양이다. 그래 아직 시간은 있다. 귀국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하나 청을 넣어봐야겠다.

치에모까지 600km, 백구에 묶은 붉은 천

a 행운의 부적. 치에모를 지나 아얼진 산을 넘는 구간은 제법 험한 곳이어서 아내가 미리 백구의 현창에 붉은 손수건을 매었다. 중국인들은, 특히 변방 오지일수록 행운의 부적으로 붉은 천을 자동차에 매고 다니는데 오늘따라 저 붉은 색의 여운이 가슴을 시큰하게 한다

행운의 부적. 치에모를 지나 아얼진 산을 넘는 구간은 제법 험한 곳이어서 아내가 미리 백구의 현창에 붉은 손수건을 매었다. 중국인들은, 특히 변방 오지일수록 행운의 부적으로 붉은 천을 자동차에 매고 다니는데 오늘따라 저 붉은 색의 여운이 가슴을 시큰하게 한다 ⓒ 오창학

정오, 다시 백구에 올라 힘찬 시동을 걸고 호탄을 나선다. 오늘도 치에모(且末)까지 600km 구간이 기다린다. 이젠 간이 부었다. 500, 600km에 대한 거리 감각이 없다. 가면 그냥 가는 거지 뭐. 늘 체념과 달관의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백구의 현창에 붉은 손수건이 매어져 있다.
"이제 곧 아얼진을 넘어야 하니까…."
아내가 그런 것이란다. 중국에선, 특히 오지 변방일수록 벽사와 행운의 의미로 붉은 천을 차에 매고 다니는데 아내가 그걸 흉내 낸 것이다.

오늘까지의 치에모 여정은 순탄할 것이다. 그러나 곧 겪어야할 치에모 너머 뤄창 이후부터 아얼진 산맥을 넘은 후 시닝(西寧)에 이르기까지의 1500km 구간에 대해 길 사정을 아는 바가 없다. 그저 무사히 넘길 기대할 뿐. 앞일을 생각하니 백구 꽁무니에 매달린 저 붉은 천 한 조각에 가슴이 시큰하다. 잘… 되겠지 뭐. 또 체념과 달관 언저리쯤이다.

a 길. 길. 길 어제의 일이, 그제의 일이 금방 추억이 되어버리는 길이다

길. 길. 길 어제의 일이, 그제의 일이 금방 추억이 되어버리는 길이다 ⓒ 오창학

오후 2시. 점심은 달리는 차 안에서 낭과 복숭아로 해결(그래봐야 아픈 배로 나와 아낸 입만 대는 척 했을 뿐이지만)한다. 그리고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자는 낮잠. 차 안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한 셈이다. 차가 정차할 땐 오로지 주유와 배설을 필요로 할 때 뿐. 대개는 이 두 가지를 한 장소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해법은 주유소. 주유는 여력이 될 때마다 한다. 사막 철칙 하나. 절대 주유눈금이 중간 이하로 내려가도록 방치하지 말라.

낭을 뜯다보니 자꾸만 쿠차의 모래 바람 속 노천 음식과 카슈가르 셔만 빈관 맞은편 식당의 음식이 입에 돈다. 어제가, 그제가 금방 추억이 되어 버리는 땅. 묘한 느낌이다.

타쉬구얼간으로 떠났던 2호차 일행과 통화가 되었는데 1박 후 이동하던 길에 물이 불어 2박지의 여정을 접고 현재는 카슈가르로 돌아왔다 한다. 오늘 오후에 비행기편으로 우루무치로 이동할 예정이라 한다. 이상하다. 우리 1호차 백구 안에도 네 사람이나 타고 있는 왜 외로운 감정이 드는 것일까. 우리의 한 쪽이 다른 곳에 떨어져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a 민펑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사막의 목초지.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실재하는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실감하는 계기였다. 철봉씨가 ‘엽기적인 그녀 나무’라 명명한 나무 아래서 달콤한 수박 시식

민펑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사막의 목초지.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실재하는 세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실감하는 계기였다. 철봉씨가 ‘엽기적인 그녀 나무’라 명명한 나무 아래서 달콤한 수박 시식 ⓒ 오창학

오후 3시 25분. 드디어 민펑(民豊)을 지난다. 600km 구간 중 정확히 반을 온 셈이다. 민펑 시가지를 지나자마자 그림 같은 목초지가 펼쳐진다. 일시에 나오는 탄성. 어떻게 사막 복판에 저런 녹지대가 있을까? 목초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쳤건만 구태여 차를 돌려 진입했다.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간만에 접하는 푸르름 속에서 수박이나 한 쪽 쪼개먹자(비상식량처럼 항상 두어 통의 수박을 싣고 다니며 먹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실재하는 세상은 얼마나 다르던가. 푸른 목초지에 소와 양이 한가로이 풀 뜯던 그곳은 실은 녹색가시의 밭이었다. 멀리선 그냥 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샌들을 신고서는 밟을 수 없는 날카로운 가시풀이다. 사막의 양과 소들은 이걸 먹고 사나보다.

그 가시풀들 사이엔 어김없이 염소와 소의 배설물이 가득하다. 말랐으니 밟는 것이야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사방 천지에 부유하는 똥 내음 때문에 어디서 수박을 풀어야 하는지 생각나질 않았다.

그 중에 철봉씨가 '엽기적인 그녀 나무'라 명명한 (조선족 철봉씨는 한국영화 마니아다. 내가 미쳐 챙겨보지 못한 것까지 모두 섭렵했다. 특히 임창정 영화를 좋아한다) 나무 밑은 그늘도 있고 냄새도 덜하다. 수박을 쪼개 먹는데 먼 곳에 있던 소들이 슬금슬금 근처로 다가와 눈치를 본다. 아마도 수박의 수분 냄새를 맡았나 보다. 물과 먹이 모두에 주린 듯 몰골이 앙상하다. 한참 경계하는 눈치를 보이면서도 버려진 수박껍질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선다. 그리고는 맛있게 시식. 그래 언제 이렇게 물 많은 과일을 접할 수 있었겠나. 수박껍질을 남김없이 던져주고 녹지대를 벗어났다.

타클라마칸에서 주의해야 할 것, 낮게 나는 새

a 치에모 297km. 민펑 목초지 앞에서 만난 위구르인

치에모 297km. 민펑 목초지 앞에서 만난 위구르인 ⓒ 오창학

민펑의 녹지대에서 치에모까지 297km. 오늘 진행 성적이 좋다. 겨우 4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300km 남짓 주파한 셈이다.

이 좁은 차 안에서 우리 네 사람이 부대낀 지 이제 30일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아직도 차에만 오르면 쏟아지는 무수한 이야기들. 오늘의 주제는 '사막의 새는 왜 낮게 날까?'다.

일찍이 쿠차에서 카슈가르 오는 길에 차 앞 유리에 새의 선혈을 뿌린 이후 새가 도로 위를 낮게 날 때마다 공포감 비슷한 감정이 엄습한다. 아, 운전 중 '쿵' 소리와 함께 앞 유리에 새의 피가 낭자하게 될 때의 공포란… 크든 작든 생명체를 해했다는 자책과 충돌 순간 움찔하게 되면 자칫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섬뜩함. 다시 유리에 낭자한 새의 피를 볼 것만 같은… 실제로 어제 오늘 사이 주행하며 부딪힐 '뻔'한 경우가 정말 30번은 될 것이다. 여기 사막의 새는 왜 낮게 나는 것일까?

먼저 철봉씨의 순박한 생각. 생존본능 때문이라 한다. 포수의 저격을 피해 저공비행을 하는 것이라는데 그럼 낮게 날다 차에 부딪쳐 죽으면서도 생존본능을 변화시키지 않는 건 왜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내 생각. 비 오기 전 제비가 낮게 나는 원리와 비슷하다는 설. 즉 저기압에 의해 새의 먹이가 될만한 것들이 낮게 깔리니 새 또한 낮게 날듯이 여기도 평지이기는 하나 해발 1000m가 넘는 곳의 연속이니 기압이 떨어져 같은 현상이 생기리라는 것. 그런데 이 사막 지대가 저기압지대인 건 맞나?

여하튼 타클라마칸의 도로에선 이상하게 새조심. 군데군데 도로에 껌처럼 달라붙은 새들의 흔적을 보면 주행 중에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하나 둘은 아닌가보다.

민펑에서 치에모까지의 길은 모래산의 연속

a 타클라마칸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 ⓒ 오창학

오후 4시. 길 양편으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고운 모래의 사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러 날 모래의 세상인 타클라마칸을 맴돌면서도 사막의 냄새를 덜 느낀 건 포장된 도로와 평평한 모래사막 때문이었을 것이다.

끝없는 새끼 밍사산(鳴砂山) 연속. 이제 좀 진짜 사막에 온 느낌이 든다. 너무도 고운 모래의 천지여서 차로는 더 이상 불가한 고로 도보로 사막에 스며든다. 기껏 50m 높이 되는 모래봉우리 하나를 오르는데 숨이 가쁘다. 무엇보다도 괴로운 건 모래의 열기. 이제 태양의 열기가 한 풀 꺾인 시간이어서 방심한 채 샌들을 신고 덤볐는데 발에 화상을 입을 것 같다. 열 걸음 걷고는 엉덩이로 주저앉고 다시 열걸음 걷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면서도 드디어 정상에 섰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래의 바다. 굳어버린 파도의 흔적들. 이곳에선 세상이 온통 모래와 바람, 이 두 가지 원소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느껴진다. 가득 찬 듯 비어 있어 아름다운 곳 사막.

a 사막에서 놀기. 아내(좌상), 필자(우상), 철봉씨(좌하), 교수님(우하)

사막에서 놀기. 아내(좌상), 필자(우상), 철봉씨(좌하), 교수님(우하) ⓒ 오창학

사막을 꿈꾸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고등학교 무렵?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 저 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학력고사를 위해 유치환의 시를 배우다 접한 사막. 정말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내 본연의 자아인 '백골'과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눌 수 있을 듯싶었다. 살면서 독한 회의가 들 때나, 애증을 다 짐지지 못 할 것 같은 때, 그 때마다 사막이 어른거렸다.

이제 됐다. 일렁이다 굳어진 모래의 파도와 끝없는 모래의 바다를 보았으니 이제 사막에 대한 기대와 환상으로 달뜨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가슴에 품어 그리울 때 마다 기억 한 줌씩을 퍼 올리면 된다. 이젠 사막을 나가도 좋으리라.

룬타이에서 민펑으로 이어지는 사막공로를 가로지르지 않는 이상 사막의 외곽으로만 도니 모래 사구를 만날 일이 흔치 않지만 민펑에서 치에모에 이르는 길은 모래산의 연속이다.

a 치에모의 밤. 치에모로 가까워진 길은 노면 상태도 주변 경관도 좋다.

치에모의 밤. 치에모로 가까워진 길은 노면 상태도 주변 경관도 좋다. ⓒ 오창학

오후 6시 40분, 호탄을 떠난 지 464km 지점. 길이 양호하고 주변 경관이 좋다. 현재 1시간 40분째 우릴 추월하거나 뒤따르는 차가 없다. 마주오는 차도 보질 못 했다.

오후 8시 치에모 도착. 604km 주행. 고작 8시간이 걸렸다. 무스타크 호텔에 짐 풀고 인근 식당에서 죽과 감자튀김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어렵게 도착한 타클라마칸의 남동쪽 요지 치에모를 만끽했다. 밤 9시 30분인데 벌써 해가 진다. 카슈가르와의 거리 1100km. 이 정도면 1시간 시차가 생길만도 하다. 계속되는 동쪽으로의 행진. 이제 조금씩 시간을 덜어내며 운전해야 할 상황이다. 그만큼 일몰 이전에 다음 목적지에 닿는 일은 어려워 질 것이란 이야기.

치에모 밤거리를 걷다가 철봉씨가 수박 두 통을 샀다. 그도 동투르키스탄 지역을 벗어나는 느낌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수박을 한 입 베어 물다 하늘을 보니 서역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고향만큼이나 크고 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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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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