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선거에 '올인'한 DJ, 단지 아버지 마음일까

[정치 톺아보기 153] 김홍업씨 당선과 범여권 통합

등록 2007.04.26 10:58수정 2007.04.2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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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5일 밤 당선이 유력한 김홍업 후보가 지지자들로 부터 받은 축하 꽃다발을 목에 걸고 이낙당선이 유력한 김홍업 후보가 지지자들로 부터 받은 축하 꽃다발을 목에 걸고 이낙연 의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전병헌 의원 등과 함께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25일 밤 당선이 유력한 김홍업 후보가 지지자들로 부터 받은 축하 꽃다발을 목에 걸고 이낙당선이 유력한 김홍업 후보가 지지자들로 부터 받은 축하 꽃다발을 목에 걸고 이낙연 의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전병헌 의원 등과 함께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 차광석


전남 무안·신안 지역 주민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57·민주당)를 지역대표로 뽑았다. 이로써 한국 정치에서는 보기 드물게 '3부자 국회의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국 의정사에서 3부자 국회의원은 조순형 민주당 의원(부 조병옥, 형 조윤형)과 김태환 한나라당 의원(부 김동석, 형 김윤환) 정도가 꼽힐 뿐이다. 그런데 조순형·김태환 의원 집안은 선친과 형들이 모두 작고한 데 비해, 김홍업 당선자는 부친과 형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점이 다르다.

김홍업씨는 선거 초반에 '정치 세습' 논란과 소지역주의 때문에 고전했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결국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선택했다. "나로서는 자중하고 안 나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평생을 고생하다 기회를 얻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걸 꼭 막을 수만은 없었다"는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차마 저버리지 못한 것이다.

김홍업, 유리한 '출발선'에서 '운'까지 업고 뛰었다

a 지난 3월 김홍업씨가 국회에서 무안·신안 보궐선거 민주당 공천장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김홍업씨가 국회에서 무안·신안 보궐선거 민주당 공천장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운'도 따랐다.

이번 선거는 무안 출신의 강력한 경쟁자인 이재현 후보(71·무소속)와 신안 출신의 강성만 후보(46·한나라당), 그리고 역시 신안 출신인 김홍업 후보의 3파전이었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정당 지지도는 50%를 넘나든다. 뒤늦은 '전략 공천'과 일부 당원들의 반발로 공천 효과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지역에서 민주당 공천은 '출발선'부터가 다른 후보보다 유리함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쉽게 민주당 후보로 나선 김홍업씨에게 마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될성 부른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그래도 DJ 아들이 낫지 않냐'는 것이 많은 이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일부에서는 홍업씨가 비리에 연루되었다고 비판했지만, 이재현 후보 또한 군수 시절 공무원 승진과 관련 뇌물죄로 처벌받은 비리 전력이 있다는 점이 오히려 '심리적 위안거리'였다. 어차피 똑같은 비리 연루자라면 그래도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 이 지역 주민들의 정서였다.


물론 김홍업씨보다 더 젊고 참신한 후보(강성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당선이 되기에는 아직 그가 입은 '옷(한나라당)' 색깔이 유권자들의 마음에 걸렸다. 애당초 당선이 목표는 아니었던 만큼, 한나라당 후보가 두 자릿수 지지를 기록한 것만으로도 이 지역 주민들이 한나라당에 마음의 문을 연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으로서도 이 지역에서 '심리적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선거 기간에 만난 김영준씨(강성만 후보 선대본부장)씨는 "한나라당이 과거에는 독립운동 하듯이 숨어서 선거운동을 했던 이 지역 정서를 감안하면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면서 다음 선거에 기대감을 피력했다.

김홍업 캠프의 한 관계자는 "신안보다 유권자 수가 1만명 이상 더 많은 무안 출신의 젊고 참신한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섰더라면 이번 선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고 토로했다.

김홍업 "저희 집을 정치 명문가로 만들어주세요"

a 이재현 후보의 유세차량으로 쓰인 대형버스.

이재현 후보의 유세차량으로 쓰인 대형버스. ⓒ 오마이뉴스 김당

강성만·이재현 후보가 지역 발전과 새 정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선거를 일관한 것도 유권자에게는 식상함과 더불어 오히려 김홍업씨에 대한 '짠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재현 후보가 내건 슬로건은 '준비된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측은 '준비된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기보다는 김홍업 후보의 '후광'을 비판하는 데 더 몰두한 것처럼 보였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무안 일대에서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권은 벼슬이 아닙니다"라고 적힌 이 후보 측의 대형 버스가 돌아다녔다.

그러나 김홍업 후보는 '부자 세습정치'라는 비난에 오히려 정공법으로 맞섰다.

"미국 부시 대통령도 아버지와 아들이 대통령 했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지만 지금 대통령이 되려고 합니다. 조순형 의원의 아버지 조병옥 박사와 형님 조윤형 의원도 모두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겠습니다. 여러 분이 저희 집을 정치 명문가로 만들어주십시오."

또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지역일꾼 인물론'과 '통합 역할론'으로 밀고 나갔다.

"심부름은 제가 잘합니다. 아버지 심부름만 30년을 했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중앙에 아는 사람도 많고 장관들과도 지역발전 문제를 쉽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뽑고 세계적 인물로 키워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나라 발전을 해냈다면 저는 아버지가 못한 지역발전을 위해 출마했습니다. 지역발전 만큼은 아버지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제가 당선되면 범여권통합에서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갑니다. 아버님은 모두가 힘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김홍업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범여권을 통합시킬 것입니다. 12일 개소식 때 민주당, 열린우리당, 탈당 의원들 모두 모이는 것 보지 않았습니까."


'상인의 현실감각'이 작동한 DJ의 '마지막 승부수'

a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는 3일째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에서 유세에 나서  "김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발전 위해 아버지(DJ)도 힘쓸 것"이라고 호소했다.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씨는 3일째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장터에서 유세에 나서 "김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발전 위해 아버지(DJ)도 힘쓸 것"이라고 호소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이런 언설이 얼마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또 이번 선거에서 이 지역에서의 민주당의 지지도만큼 성적은 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제 남은 관심은 그가 내세웠던 바대로, 과연 정치 명문가로서 아버지가 못한 지역발전과 범여권 통합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모아진다.

김홍업씨가 출마를 결심했을 때 그의 출마를 말리지 못한 DJ의 심경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내세운 명제는 '정치인 김대중과 아버지 김대중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또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며, 회갑을 바라보는 김홍업씨는 대통령의 아들이기 이전에 두 아들의 아버지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DJ 주변에서조차도 90을 바라보는 노모가 세 번씩이나 내려가 한 표를 호소하고 DJ의 분신으로 통하는 박지원 비서실장이 보름 넘게 고향 진도에 머물며 목포·무안으로 출퇴근 선거지원을 할 만큼 '올인(다 걸기)' 하는 것을 부정(父情)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DJ의 한 측근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이 정치를 하면서 평생 강조해온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다"면서 "그런 김 전 대통령이 아들 선거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서생적 문제의식'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95년 정계복귀 반대여론을 정면 돌파해 96년 총선에서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고 97년 선거에서 마침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DJ가 이번에도 그때처럼 '상인의 현실감각'이 작동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양당 구도와 선후보 단일화는 '신DJP연합'의 다른 말

a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목포 항동 여객터미널 앞의 김홍업 신안선거사무소에서 만난 박지원 실장은 보름 넘게 돌아본 이 지역 민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호남 사람들은 대통령을 두 번 배출했고 역대 선거에 지원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대통합을 이뤄서 대한민국이 바른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정치에 대한 말할 자격이 없어서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정치인만 모르는 것을 국민들은 더 현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범여권은 여권대로 큰 통합을 해서 선의의 경쟁을 벌여라, 그럼 국민이 선택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굉장히 강하게 들리더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쪼개진 여권이 통합을 이루고, 한국 정치가 양당 구도로 가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무안·신안과 함께 한나라당 '불패 신화'와 관련 최대의 관심지역인 대전 서을에서의 한나라당 패배는 이른바 '서부연합'을 근거지로 한 범여권 대통합이 이뤄지면 올해 대선에서도 만만치 않은 힘을 발휘할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두 대선 후보의 지지율 합이 70%에 이르는 '빅2'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이틀이 멀다하고 경쟁적으로 지원유세전을 펼쳤음에도 심대평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거의 더블 스코어 차이로 따돌린 것은 '정운찬 카드'의 잠재력 또한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당선이 확정된 뒤에 나온 김홍업 후보의 첫 일성도 "이번 선거결과를 이 땅의 모든 민주평화세력이 다시 하나로 통합하라는 뜻으로 알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DJ가 말한 양당 구도와 선후보 단일화는 '신DJP연합'의 다른 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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