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같은 가수, 덩리쥔을 아시나요?

부드럽고 여성스런 노래로 아시아인 어루만지다 42세에 요절

등록 2007.05.15 11:29수정 2007.05.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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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이 어버이날인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5월의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母親節)로,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날(父親節)로 따로 기념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5월 8일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군가와 혁명가요의 투박함을 눈처럼 녹이던,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다정하던, 아시아인의 추억으로 자리 잡은 가수 덩리쥔(鄧麗君)의 추모일로 기억되고 있다.

a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는 사망 12주년을 맞아 덩리쥔 추모열기가 뜨겁다.

중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는 사망 12주년을 맞아 덩리쥔 추모열기가 뜨겁다. ⓒ 김대오

1970년대 이미 아시아를 넘어서 80, 9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에까지 진출했던 가수 덩리쥔은 가장 이른 시기에 아시아의 문화시장을 선점했던, 가장 강력한 문화콘텐츠의 주인공이었으며 그녀의 노래는 시공을 뛰어 넘는 이월적 가치를 지니고서 지금도 중국, 대만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끊임없이 리메이크 되면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특히 덩리쥔의 노래는 영화 <첨밀밀(甛密密, 1997년작)>을 통해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아 왔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여소군과 이교는 함께 덩리쥔의 불법테이프를 팔면서 사랑을 키워가다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덩리쥔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덩리쥔의 사망소식이 흘러나오는 뉴욕의 어느 쇼윈도우 앞에서 10년 만에 재회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덩리쥔의 노래 “달이 내 마음을 말 해주네(月亮代表我的心)”와 “첨밀밀”이 흘러나오며 기구한 삶의 과정에서 끊어질 듯 빗나가는 두 사람의 인연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덩리쥔은 1953년 1월 29일, 대만 바오중시앙(褒忠鄕)에서 태어났다. 1963년 처음 가요제에서 입상한 이래 14살 때인 1967년, 공식앨범을 내며 본격적인 직업가수의 길에 들어선다. 1969년부터는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게 되는데 1970년 홍콩영화에 출연함으로써 홍콩 연예계에 발을 내딛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대만, 홍콩, 베트남, 일본 등지를 오가며 폭넓은 가수활동을 한다.

특히 덩리쥔은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하는 즈음에 중국대륙에도 음반을 발매하면서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지금도 덩리쥔을 좋아하는 중국인들 중에는 그녀의 노래 속에 개혁개방이 초창기의 그 변화하는 시대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더욱 애틋하고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1980년 대만 최고가수의 영예를 차지한 덩리쥔은 눈을 해외로 돌려 아시아 각국의 시장을 공략하는데 1985년에는 일본에서 최고 가수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하며 90년대에는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도 활약한다.

그러나 1995년 5월 8일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던 태국의 한 호텔에서 천식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 42살이었다.


덩리쥔 사망 12주년을 맞는 올해 중국에서는 5개월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덩리쥔의 한 열성팬이 그녀의 노래로 음악치료를 하여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덩리쥔의 대만 고향엔 그녀를 그리워하는 세계 각국의 추모객들이 몰려들고 대만과 중국에서는 ‘덩리쥔가요제’가 개최되는가 하면 홍콩에서는 그녀의 노래인생을 담은 뮤지컬이 공연되고 올해는 특히 일본에서 ‘덩리쥔전기’가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6월부터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 최고의 대중가수인 왕페이(王菲)는 그가 16살 때인 1987년 덩리쥔이 부르던 <첨밀밀>을 따라 부르다가 음악적인 소질을 인정받아 가수에 입문하게 됐다고 소개한다.

혁명을 선동하는 군가와 노동가요가 중심을 이루던 80년 초 멜로디를 중시하며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덩리쥔의 노래가 중국 음악계에 준 영향은 그야말로 충격적이고 지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덩리쥔은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은 영원히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오래오래 울려 퍼질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덩리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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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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