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년 동안 썩지 않은 마왕퇴의 귀부인

중국의 귀신이야기

등록 2007.07.31 17:31수정 2007.07.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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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시리즈와 같은 현실을 뛰어넘는 기발한 상상력의 명작들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허구 맹랑해 보이는 초현실의 환타지 세계는 출판, 영화, 다양한 콘텐츠사업에서 수 십 조원에 달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서양에서 환타지 상상력의 출발점을 흔히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찾는다면 동양적 환타지 세계의 출발은 과연 어디일까?

비가 오는 을씨년스런 날이면 학생들은 교실 불을 끄며 중국 귀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댄다. 그럴 때 들려주는 이야기가 <천녀유혼> 정도이다. 한 사연 많은 아름다운 귀신과 선량한 한 인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는 <천녀유혼>은 서극감독의 동양적 환타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의 원작소설이 바로 중국의 귀신이야기 497편을 총망라해 놓은 청대 초기의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이 쓴 <요재지이(聊齋志異)>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의 중국 4대 기서에 더해져 유림외사(儒林外事), 홍루몽(紅樓夢), 금고기관(今古奇觀)과 함께 8대 기서로 꼽히는 <요재지이>는 명, 청대의 설화, 민담, 일화 등을 수집하여 집대성한 민간 전래의 기이한 귀신들의 이야기집인 셈이다.

중국어로 귀신을 '꿰이(鬼)'라고 한다. 상형문자인 이 글자의 윗부분은 '해골'을, 아랫부분은 '사람(人)'을 나타낸다. 인간이 죽으면 골육은 흙으로, 영혼은 하늘로 날아간다고 하는데 어떤 원한에 사무쳐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지상을 떠도는 영혼들을 '꿰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을 섬길 수 없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리오?',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현세적인 측면에서 말하고 있지만 한대 이후에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귀신이야기가 생겨났다. 특히 대규모 토목사업과 전쟁으로 무고한 민초들의 억울한 죽음과 봉건적 전통 하에서의 억압과 착취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과 덧없는 죽음은 사후세계에 대한 동경과 경외로 이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귀신에 대한 경배를 심화시켰다.

고향을 떠나 객지의 전쟁터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다수의 병사들을 부적을 붙여 고향으로 데리고 가는데 관절을 움직일 수 없어 깡충깡충 뛰어간다는 강시, 여성들을 성적 노리개로 여겼던 봉건적 폐단의 아픔을 담고 있는 여우귀신 산호와 처녀귀신들, 굶어 죽은 원한을 가진 아귀, 백성들을 짐승 취급하며 피를 착취하던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뱀, 동물 형상의 육어, 이매 등 그야말로 다양한 귀신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a 국내에 번역된 <마왕퇴의 귀부인> 표지 사진

국내에 번역된 <마왕퇴의 귀부인> 표지 사진 ⓒ 일빛출판사


육신이 썩지 않고 미이라로 남아 있는 경우, 형태가 없는 귀신보다도 더 큰 신비와 공포감을 주는데 중국에서는 2100년이 넘도록 썩지않은 육신이 발굴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때는 1969년의 국경분쟁으로 중소간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는 불안하던 그 시절, 린뱌오(林彪, 1907∼1971)가 이끄는 한 부대가 '방공호를 깊게 파고, 식량을 비축하고, 패권주의에 반대한다'는 구호에 맞춰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방공포를 파던 중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든, 중대한 발견이 이뤄지니 그것이 바로 전한(前漢)시대 초기의 마왕퇴(馬王堆)묘 발굴이었다.


1972년 7월 30일 발굴된 이 무덤에서 2100년 전 매장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시신이 발견되어 전 세계를 경악케 하였다. 국내에 번역된 <마왕퇴의 귀부인(원제-西漢亡魂)>에는 발굴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a <마왕퇴의 귀부인> 책에 소개된, 발굴 당시 귀부인의 모습이다.

<마왕퇴의 귀부인> 책에 소개된, 발굴 당시 귀부인의 모습이다. ⓒ 일빛출판사


"여자 시신의 외형은 완전했고, 얼굴색은 살아 있는 듯했으며, 온몸은 부드럽고 윤이 났고, 피부는 엷은 황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방금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중략) 고고학자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와 가슴과 팔 부위를 눌렀다 놓자, 凹자형으로 쑥 들어갔던 살과 피부가 금방 다시 탄력있게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다. 또 팔과 다리를 움직이자 관절이 모두 자유롭게 굽어지고 펴졌다."


'네 가지 옛 것을 파괴하고 네 가지 새 것을 세우자(破四舊, 立四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땅 속에 묻힌 역사의 유적을 발굴하는 일은 헌신짝 취급을 당했으며 발굴을 위해 호미 60개, 필름 20개를 달라는 요구조차 거부당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세계고고학사에 길이 남을 이 역사적 발굴이 이뤄졌다고 하니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귀신이야기는 어쩌면 힘든 현실을 감내해내며 내세의 평온을 바라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소망이거나 한 맺힌 원한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래서 허구적 상상일지도 모르는 귀신이야기는 그 시대상의 또 다른 반영인 것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가 귀신처럼 10년 동안 떠돌며 중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에 비하면 어쩌면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 맺힌 민초들의 원한과 아픔들이 녹아 있는 중국의 귀신이야기들은 어쩌면 너무 순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왕퇴 #귀부인 #중국 귀신 #마왕퇴의 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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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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