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다시 태어난 날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4] 생장피드포르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등록 2007.11.12 17:43수정 2007.11.21 14:38
0
원고료로 응원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내가 아뢰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 <예레미야서 1장 5-9절>

2007년 6월 23일 토요일,
총 27km, 8시간, 3.5km/h 정도.



어제 만난 일본에서 온 S씨와 함께 걷기로 약속한 날, 오전 7시 즈음에 숙소를 나서 첫 발자국을 떼었다. 어젯밤 순례자들 사이에서 과연 이 동네 유일의 빵집이 몇 시에 문을 여는가가 화두였는데, 오전 7시 30분이 공식적인 영업개시 시간이지만 오전 7시에도 연다더라 하는 얘기가 나돌았다.

오전 7시에 빵집을 지나가며, 오늘은 조금 일찍 열어 갓나온 뜨끈한 빵을 하나 가방에 넣어갔으면 싶었지만…. 빵집은 문을 굳게 닫은 채였다. 그래도 가방 안에는 어제 산 음식이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SJPP에서 받은 구간별 고도표에 의하면, 첫날의 가파름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밑바닥에서 1200m를 넘기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또 주르륵 하산. S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분명 혼자 올라갔다면, 엄청나게 힘들었을 구간이다.

걷기 시작하고 한 시간 채 되지 않아, 어느새 우리 두 사람 옆에 한 남자가 함께 하고 있다. 스페인 아저씨 B, 장대 같은 키에 비쩍 마른, 귀의 피어싱이 인상적이었던 사람. 영어도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해 가면서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다. 아마도 아시아 여자 둘이 걷고 있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아니면 그저 자기가 심심해서였는지, 자진해서 길안내를 해 주겠다고 나섰다. B 아저씨의 떠벌떠벌 수다에 시달리며 세 사람이 걸었던 길이 바로 구간 초반의 최급 경사, '오리손Orisson' 숙소까지 이르는 구간이었다.

시작할 때부터 S씨의 배낭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어제 우체국을 찾지 못해 모든 짐을 짊어진 채 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12kg 정도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뒤에서 걷는 내가 보기엔 그 이상이었다. 작은 체구의 그녀 몸의 두 배는 될 듯한 배낭을 바라보며, 자꾸 걱정이 되었다.


S씨는 1시간을 걷고 15분을 휴식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숙련된 여행경험 가운데 자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사실 워낙 빠른 걸음을 가진 분이어서, 쉬지 않으면 그런 빠른 걸음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이제 처음 걸어보는 것이었고, 어떤 규칙 같은 것도 없었다. 첫날 어렴풋한 느낌은 한 번 가방을 내려놓아 버리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 그게 바로 내 스타일이었다.

초반에는 그녀를 따라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한 10분 정도를 함께 쉬었지만 갈수록 이런 잦은 멈춤이 나를 더 끌어내린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순간, '먼저 천천히 가겠습니다. 따라잡아 주세요!'하고는 걸음을 이어갔다.


a 피레네산맥을 따라 운무가 자욱한 길

피레네산맥을 따라 운무가 자욱한 길 ⓒ JH


그렇게 혼자 걷기 시작했다. 태양을 등지고선 내 눈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길었다. 산 아래로 모자이크 같은 들판을 보았다. 그리고 초원의 풀을 뜯는 양떼를 보았다. 그네들은 만화에서 그려지듯, TV에서 보듯 복실복실하고 뽀얗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자근자근 풀을 뜯는 모습은 신경질적이기까지 했다. 또 아름다운 꽃들을, 피레네의 산맥을 보았다. 그 '맥'의 흐름을 눈으로 더듬었다.

a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여기서부터 스페인 'Navarra'지역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여기서부터 스페인 'Navarra'지역 ⓒ JH


그리고 어느새 내 두 발은 스페인 땅에 닿아 있었다.

가장 높은 산꼭대기 정상에서, 한국에서 고이 가져간 노란 쌀자루 포대를 돗자리 삼아 뜨끈한 햇빛을 받으며 사과를 먹고 글을 끼적였다. 그리고 순례자들을 위한 우물가를 만났다. 그 물맛!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였다. 걷는 중에는 그저 좋았다.

a 론세스바예스에서 순례자숙소의 모습

론세스바예스에서 순례자숙소의 모습 ⓒ JH


숙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반 즈음, 개장은 오후 4시.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이 배낭으로 만들어놓은 대기 줄에 가방을 세워놓고 고개를 들자 또 다른 한국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살고 계시는 모녀 순례자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나에게 이 길이 가톨릭의 3대 순례지라는 것과 이 길을 걷는 것이 죄의 감면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실 분,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될 분.

어머님의 설명으로 이 동네에서 유명한 식당에 8유로짜리 순례자 저녁을 예약했다. 그리고 숙소가 열리자마자 1층 침대로 뛰어들어가 짐을 풀고, 한 칸만 쓸 수 있는 샤워실에서 일곱 명을 기다려 따가운 눈치 속에서 단 5분만에 샤워를 마쳤다. 빨래를 하고 바지런히 첫날의 일들을 마쳤다. 조금 늦게 도착하신 S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토요일 6시 순례자 미사에 가 있겠습니다'는 쪽지를 남기고 성당으로 향했다.

순례자 미사를 마치고, 오늘 하루 제대로 먹은 게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위장의 신호에 괴로워하며 저녁 8시 즈음의 저녁식사를 기다렸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식당은 커다란 원탁 위에 흰 천이 곱게 깔려 있었다. 족히 10명 이상이 한 식탁을 함께 썼다. 진짜 순례자 가족이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시장이 반찬, 팥죽 같은 모양새의 짠 수프와 통으로 튀긴 생선 한 마리에 감자튀김, 그리고 빵과 스페인 와인, '비노Vino'. 나는 열심히 먹고 마시고 또 함께 앉은 S씨와 오늘의 수훈을 서로 치하하며 거나하게 취해서는 즐겁게 머리 위로 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아- 비노! 이 날부터 내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밤마다 비노 혹은 맥주를 기울이는 일종의 알코올 의존(?)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a 론세스바예스 순례자 숙소 오늘밤은 130여명의 순례자와 함께

론세스바예스 순례자 숙소 오늘밤은 130여명의 순례자와 함께 ⓒ JH


120명이 한 공간을 나눠 쓰는 거대한 숙소, 론세스바예스. 그 거친 돌벽과 쩌렁쩌렁 울리던 코 고는 소리, 아직 빨래를 어떻게 말려야 할지를 몰라 속옷이며 겉옷이며 모두 침대 주변에 치렁치렁 걸어놓고 아침까지 마르기만을 노심초사하며 잠들었던 그날 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어, 그리고- 참 좋았어♬ 내일의 걸음이 기대되는 밤이었다.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