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이 해질녘이었으면"

'자율'이라는 말의 타락과 오용에 대하여

등록 2008.04.20 12:31수정 2008.04.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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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국을 떠났다가 최근에 귀국한 사람이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접한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학교 자율화 발표가 난 오늘,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매번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을 쓴 이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리라. 헌데 이상하지 않은가? 학교 자율화라면 누구보다도 아이들이 바라는 일일 터인데 학교 자율화 발표가 있던 날,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니?

그 이유인 즉은, 결국 정부가 말하는 학교 자율화란 학생들의 자율화하고는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최소한의 자율마저도 철저하게 억압하거나 해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교사로서의 경험적 판단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은 정부의 학원자율화 조치를 반대하고 나선 청소년 연대 기자단들도 마찬가지인 듯싶은데, 선전 플래카드에 새겨진 다음 문구가 좀 아리송하다. 

‘학원자율화 반대 청소년 연대 기자회견’

문자적으로만 보자면 청소년들이 학원자율화를 반대하는 꼴이다. 물론 여기서 ‘학원자율화’란 이명박 정부의 ‘학원 자율화 조치’를 두고 한 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면 그런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초중고교의 자율성 확대를 명분으로 29개 금지 지침을 폐지한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 조치에 대해 청소년운동단체들이 적극적 대응을 결의하고 나섰다.’

요즘 인터넷에 접속하여 교육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거나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 가령, 이런 대목에서다.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대해 "학생들의 다양성 다 죽이고, 창조적 가능성을 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학교 자율화가 학생들의 다양성을 다 죽이다니? 물론 이명박 정부의 ‘학원 자율화 조치’에 대한 내용을 환히 알고 있는 나로서 뭔가 이해가 불충분하여 고개를 갸우뚱했을 리는 없다. 다만,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그동안에도 ‘자율’이라는 말의 타락이랄까, 오용이랄까 하는 것으로 꽤 마음을 상해온 나로서 조금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강제적 자율학습’이란 말이 있다. 자율학습이란 학생들이 스스로 하는 공부를 말한다. 그런데 강제적이라니?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형용모순의 어법이 버젓이 존재한다. 이런 언어의 타락과 오용으로 인한 최종 피해자는 물론 학생들이다.      

‘제가 지금 인문계 고2여서 새로 불어 닥치는 교육정책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새롭게 시행되는 게 많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헷갈립니다. 뭐 0교시 부활이나 우열반 같은 건 원래 있었으니 상관 안하는데요. 제가 제일 관심이 가는 건 자율학습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전 이것만 어떻게 되면 학교생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이 해질녘이었음 좋겠어요. 무슨 집은 자러 가고 학교는 사는 데고. 잘 모르겠어서요. 아시면 좀 알려주세요!’

학생은 자율학습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지를 누군가에게 묻고 있다. 사실 이것은 질문으로서 적절하지 않다. 동어반복이라고나 할까. 가령,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럼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거지요?”라고 묻는 격이다. 이에 대한 한 네티즌의 답변은 얄미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번 자율화 조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 또는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 재단, 등등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강제 야간 자습은 금지였으나 그렇게 금지하는 규정 자체를 없애서 학교에서 자체 규정으로 야간 자습을 의무화해도 상관없게 되어버린 것이죠.’

이렇듯이 국민들은 다들 알고 있는데, 정작 나라의 교육을 책임 맡고 계시는 분은 이번 학원 자율화 조치로 ‘전 국민이 환영하고 좋아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 실린 그늘 없는 환한 얼굴 표정을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듯하다. 혹시 자율이라는 말을 어떤 상황적인 맥락을 무시한 채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식의 ‘언어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보인다. 한참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을 입시지옥의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고교평준화 정책도 자율이란 이름 앞에서는 꼼짝없이 단죄의 대상이 된다. 앞뒤 재고 말 것도 없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제약하거나 무시한 처사라고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학생들의 자율권을 염려하는 지각 있는 어른들이 많은데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인권적 실상은 나아지기는커녕 여전히 악화일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해질녘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 아이의 염원이 너무 과한 것일까?  

교육의 꽃은 아이들이다. 이번 정부의 학원 자율화 조치가 최종적으로 학생들의 자율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위요, 기만일 뿐이다. 해질녘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의 소원은 꼭 이루어져야한다. 아니, 그것이 아이의 소원이 될 수밖에 없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하루빨리 끝장내야한다.

집으로 돌아가 깨끗이 몸을 씻고,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대화의 꽃을 피우며 저녁을 함께 먹고 난 뒤에는 남은 시간에 대한 주권을 마땅히 그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자율의 모습이요, 학원 자율화 조치의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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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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